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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터 보나티는 현대적 등반도구를 엄격히 배제하고 능력의 한계를 늘 새로 규정하는 극한등반을 펼쳤으며 모던 알피니즘을 배격하고 전통적인 알피니즘을 추구함 - 보나티에게 등반은 자신의 한계를 추구하고, 산과 자신이 하나임을 우선으로 여겼으며, 산과 화해하려면 자기자신에 대해 바로 서고 성실해야 한다고 말함. - 보나티는 "고집쟁이 산악인"이었다. 그에게 등산이란, "신비스럽고 미지의 것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자신의 몸과 최소한의 장비 그리고 상상력/관찰력/판단력으로 헤쳐나가는 것이었다. 그는 1930년대 무르익은 고전적 알피니즘의 선봉자였다. * 목 차 제1장 처음에(1948년) 18세 제11장 론도이 북벽 등정(1961년) 제2장 브레갈리아 3대 북벽(1949년) 제12장 몽블랑 프레니 중앙릉 대참사(1961년) 제3장 그랑 카퓌셍 동벽 초등(1951년) 제13장 몽블랑 퓨트리 대암릉 초등(1962년) 제4장 리바레도 북벽 동계 초등(1953년) 제14장 그랑드 조라스 북벽 동계 초등(1963년) 제5장 이탈리아 K2 원정(1954년) 제15장 눈보라와,, 그랑드 조라스 윔퍼릉(1964년) 제6장 프티 두류 남서벽 초등(1955년) 제16장 마터호른 북벽 동계 단독초등(1965년) 제7장 크리스마스를 몽블랑에서(1956년) 제17장 알피니즘이여 안녕!(1965년) 제8장 세로토레-사라진 꿈(1958년) 제18장 몽블랑에 끌려 돌아가다(1984년) 제9장 가셔브롬 4봉 초등(1958년) 제19장 나의 마지막 모험 파타고니아(1989년) 제10장 몽블랑 브루이야르 붉은 암릉(1959년) 제20장 알피니즘에 대한 고찰(1989년) * 발터 보나티,, 이 글을 쓰며 - 산은 나에게 처음부터 자아를 실현하는 최고의 장소였다. 등반계획을 하나 하나 쌓아 나갈때 나는 언제나 생기 발랄하고 더욱 자유로이 진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것은 자아실현이었다. - 산악인 시절이 내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한계경험으로 장식한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16년이상 극한에 까지 도전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높은 산위에서 많은 시간을 갖가지 상황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을 체험했다. 그 것은 무엇보다도 고양된 환희의 세계였다. * 알피니즘(Alpinism) - 단순히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 나가면서 미지의 곳,, 높은 산으로 끊임없이 향해 가는 산악운동이며 등산을 위한 등산, 등산이 주는 기쁨외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는 산에 오르는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 어떠한 의도를 갖지 않는 육체적 정신적 스포츠이다. 하이커나 일반 유산객과의 구별을 위해서 라도 올바른 자세로 산을 대해야 한다. |
ㅇ 특이사항
▣ 1장. 처음에(1848년)
- 18세때,, 동네 친구들과 첫 암벽등반
▣ 2장. 브레갈리아 3대 북벽(1949년)
ㅇ 바딜레 서북벽,, 높이 600m의 거대한 화강암벽
- 낙하하는 바위 덩어리들,, 주변에 부서진 낙석들과 타는 듯한 냄새, 그 충격으로 1시간동안 움직이지 못함
- 오버행 밑에서 비박
- 날씨,,, 눈이 내리고 싸락눈이 쏟아지며, 홍수같은 비,,, 그리고 따뜻한 햇볕이 비치는 정상
▣ 3장. 그랑 카퓌셍 동벽 초등(1951년)
ㅇ 놀라울 정도로 멋진 붉은 암봉 하나가,, 유난히 주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것은 눈을 현혹시켰다. 그야말로
수직이고 저기에 들러 붙는다는 생각만해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ㅇ 1차 실패(1950. 8. 13)
- 등반 4일째,,, 더블 오버행, 직벽,, 밤새 폭설과 차가운 눈과 안개같은 눈보라 악천후로
- 코스 2/3 지점에서,, 자일 속까지 젖어 빳빳하게 얼어버린 대마자일로 현수하강하며 후퇴
ㅇ 2차 도전, 초등 성공(1951. 7.20)
- 등반 4일만에 초등완료(정상 등정)
- 3일째 밤은 눈보라 날씨 가운대,,, 수직벽의 하켄에 의지하며 비박
- 매달린 슬링이 다리를 파고들어 감각을 잃었고, 허리에 감은 자일이 몸을 두 동강으로 내는 듯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윘으며 몸은 점점 더 추워지고 있었다.
- 프리 클라이밍,,, 앞의 루트를 알수없는 오버행코스
▣ 4장. 라바레도 북벽 동계초등(1953년)
ㅇ 군복무,,, 차량부대 배속에 반항하자,,, 산에서도 아주 산속에 있는 제6산악연대에 배치되었다.
15개월은 내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시기가 되었다.
- 군 복무 기간동안 이탈리아쪽 알프스를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산을 따라 돌로미테에서 티톨 산악지대, 오르톨러에서 몽블랑까지,,,
- 그리고 많은 등산훈련으로 산에서는 어떤 어려움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ㅇ 1953. 2,12(2박 3일)
- 사전훈련,,, 비박훈련, 새벽 암벽연습, 추운날씨(영하 20~30℃) 적응으로 장비를 하나씩 줄어 감
- 통바위 구간(90m 횡단),,, 넘어 서면 뒤에서 문이 잠겨버리는 코스,, 무려 27개팀의 꿈이 산산조각 난 곳
그래서 더욱 초등에 성공한 명예는 대단했다.
- 첫피치,,, 크랙하나 없는 오버행 기미의 슬랩 30m(18년전 카신이 여기를 초등했을때 하켄한나 박느라
4시간을 애셨으며, 세번이나 추락한 후 통과하였다는 코스)
▣ 5장. 이탈리아 K2 (8,611m, 세계 제2 고봉)원정(1954년)
ㅇ 1955년 등산 가이드 자격증 취득
ㅇ 8,100m 지점에서 비박,,,
- 정상 공격조를 위한 산소통(20㎏) 지원시,, 텐트로 귀한하지 못하고/ 정상공격조로 부터 버림을 받고
- 극한의 눈보라와 졸음 및 잠과의 싸움,,,
체온 유지를 위해 피켈로 얼음을 파내고 발의 감각 유지를 위해 피켈로 발이 아풀때까지 때림
- 캔디 세개가 나왔다. 식량의 전부였다. 입에 넣자마자 뱉어 버렸다. 침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 옆에서 짖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바람소리가 아니고 분명 사람의 울부짖는 소리였다.
그 그림자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사면으로 떨어지려는 동료 "마디"를 붇들었다.
- 동이 훤히트며 바람이 잦는듯했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러나 추위가 살을 에는 듯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는 것이다. 손발의 감각이 없고 다리가 빳빳해서 디디고 선 것 같지 않았으며, 두 팔은 자꾸 떨었다.
그런데 생각만은 여전히 밝고 확실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비박 동료 마디는 스카르두 병원에서 손가락과 발가락 몇개를 잘랐다.
ㅇ 이탈리아 팀은 정상공격으로 K2 등정에 성공 함.
▣ 6장. 프티 드류 남서벽 초등정(1955년)
- K2 원정 이후,, 심한 정신적 갈등속에서 사람들에게서 마음이 멀어지고 자신만 믿게됐다.
ㅇ 첫번째 시도(1953.8.15)
- 1,000m되는 암벽,,, 거대한 바위이빨은 해가 떠오르기전 잿빛 여명속에 겨울잠을 자고있는 괴물같았다.
공기는 살을 에는 듯하고 온 천하가 고요했다.
- 등반 3일째,, 폭우, 폭설, 눈보라로 붉은 슬램에서 현수하강으로 하산
(현수하강,, 일본어, 고정된 로프를 이용하여 하강하는 방법이다. 압자일렌)
ㅇ 두번째 시도(1955.7.24)
- 비와 눈 그리고 낙석과 낙빙,, 큰바위가 붕괴되는 사태 발생
- 등반 3일째,, 폭설로 하산, 큰바위 사태로 첫날 비박장소는 없어져 있었다.
ㅇ 단독등반(1955.8.11)
- 5일분 식량과 장비( , , , ) 30㎏ 이상되며
- 쿨와르 구간에서는 7시간 동안,, 150m 정도밖에 오르지 못했다.
- 불꽃바위에서 6번째 비박,, 7일째 늦은오후(4시 37분) 드류 정상 꼭대기에 섰다.
▣ 7장. 크리스마스를 몽블랑에서(1956년)
ㅇ 비극적인 이야기로,, 산행은 겨울 크리스마스에 실바노 게서와 "푸아르 루트"로 몽블랑에 오르는 것이었다.
- 폭설과 강풍, 눈사태와 짙은 안개속에서,, 2번의 비박으로 동료의 발이 동상에 걸림(지난날 K2에서,,
피켈 손잡이로 맹렬히 발을 때렸던 기억이 난다. 혈액순환이 될때까지 아무리 아파도 계속 쳤던 것이다)
- 4일째,, 산장으로 탈출하여 대피
- 6일째,, 프랑스 산악인 2명, 헬기에 구조되어 살았다고 함
- 첫 구조헬기는 추락하고 헬기조종사 2명은구조를 기다리는 1주일이상 추위와 동상 등 고통으로 사망
(프랑스헬기,, 조종사의 경험 부족과 아프리카 사막용헬기를 엄동기 몽불랑에 파견)
▣ 8장. 세레토레 - 사라진 꿈(1958년)
ㅇ 장대한 빙하로 덮인 세르토레의 서부
- 남미 최남단 남극 대륙과 거의 만나는 곳,, 파타고니아
- 당시 처녀봉인 세로토레(3,128m)는 산 대부분이 해면상의 얼음 갑옷을 쓴 보기드문 화강암봉이다.
ㅇ 세로 마리아노 모레노(3,500m)
- 35시간 등반,, 하루종일 굶주림과 강행군으로 풍설속에서 야간운행중 갑자기 뒤에서 로프가 나를 잡아챘다.
순간 동료인 "도로"가 크레바스에 빠진줄 알고 확보하는 자세를 취했다. 실은 잠을 견디지 못한 그가 눈 바닥
에 누워버린 것이다.
▣ 9장. 가셔브룸 4봉 초등(1958년)
- 이탈리아의 두번째의 원정산행
- G4(Gasherbrum 4봉),, 7.980m "빛나는 산"
▣ 10장. 보루이야르 붉은 암릉(1959년)
ㅇ 그 붉은 암릉이 그토록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줄 알았다면, 나는 결코 등반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그 암릉이 그렇게 신비스럽고 환상적이지 않았다면 절대로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ㅇ 1956.6.27,, 바위 테라스에서 비박,,,
- 어제밤 잠자리에 누웠을때 등을 찌르던 돌들이 사라지고 침대에 푹 빠지는 듯 안락한 기분이 들엇다. 뿐만
아니라 주변이 온통 같은 느낌이니 이상한 일이었다. 도대체 꿈속인가? 아니면 추위로 몸이 마비된 것인가?
무서운 생각에 침낭에서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 보았다. 우리는 완전히 눈속에 묻혀있었다.
ㅇ 폭풍과 번개속에서 탈출,,,
- 싸락눈, 강풍과 뇌성으로 푸름스름한 불이 삽시간에 어두워가는 밤하늘에 겁나게 번쩍이는 번개
- 번쩍이는 번개에 피켈을 다시 버려야 했다.
ㅇ 밖은 어두워지고 우리는 침낭속으로 들어 갔다.
- 언제나 그랬듯이 노여워 울부짖는 바람 소리가 고양된 생의 환성으로 들리는 산장의 밤이었다.
▣ 11장. 론도이 북봉등정(1961년)
ㅇ 5,820m,, 페루 안데스 산맥의 와이와시에 솟은 산이다.
- 1961.5.23,,, 4개의 거봉,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끈것은 당장이라도 무너질듯한 설릉을 가진 피라미드 얼음과
바위 봉우리 "론도이"였다.
- 1961.6.4,, 빙벽,,, 눈 동굴을 수평으로 뚫고 나갔다. 5m 통로를 파는데 1시간 30분이 결렸다.
- 1961,6.6. 오후 5시 30분,, 손을 정상에 올려 놓고 다음에 발을 내 디뎠다. 눈보라속에 한 걸음 내 디디자
앞이 허공이었다. 완전히 허공에 매달린 마지막 커니스의 끝이였던 것이다.
▣ 12장. 몽블랑 프레니 중앙릉의 대참사(1961년)
ㅇ 1961.7.10,, 몽블랑 프레니 중앙릉 공략
- 폭풍설과 낙뢰가 콜만을 쳐서 뇌성과 섬광이 우리를 뒤덮었다. 4,500m가 넘는 지점,, 몽블랑의 피뢰침
노릇을 하는 암릉이었다.
그 순간 뇌뢰는 동료 "콜만"을 쳐서 그가 허공을 날려는 순간 "마조"가 달려들어 그를 붙잡았다.
ㅇ 공포의 4일째 비박,, 80m를 남겨 놓은 지점
- 추위, 폭설, 배고픔, 맹위를 떨치는 눈보라로,, 극도로 위험한 그뤼버 암릉을 넘어 감바산장으로 탈출 시도
- 그뤼버 암릉으로 가기전의 눈사면은 무서울 정도로 신설에 뒤덮어있어 언제 눈사태가 날지 모를 정도이다.
- 6일째 새벽 3시 감바산장에 도착,,, 일행 7명중 4명 사망
ㅇ 1961. 9.20,, 몽브랑 중앙릉 등반
- 벽 심장부에 이르렀을때,, 붉은 태양이 빠른 속도로 지평선에 모습을 나타냈다. 작열하듯 김을 뿜어내는
둥근덩어리가 마치 천지창조 직후 증기를 발산하는 듯 했다.
▣ 13장. 몽블랑 퓨트리 대암릉 초등(1962년)
ㅇ 해발 4,200m, 대빙하에서 높이 1,000m의 통바위
- 푸트리 대암릉의 정상능선은 여기저기 눈처마가 뻗은 장대한 설릉이다.
새로운 세계가 눈아래로 펼쳐지고 그 장대한 광경을 한눈으로 바라 볼 수 있었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있었으나 우리는 정상에 머물며, 이 기분 좋은 바위 테라스에서 밤이 올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밤의 추위가 퓨트리 산릉의 무른 눈을 굳게 해주고, 달 빛이 마지막 길을 비추어 주어 몽블랑 정상으로
우리를 안내하여 주기 때문이다.
▣ 14장.그랑드 조라스 북벽 동계초등(1963년)
ㅇ 알프스의 3대 북벽,,, 마터호른, 아이거, 그랑드 조라스
- 3대 북벽의 매력은 그 아름다움과 어려움,,, 그리고 알프스 등반의 역사적 상징에 있다.
아이거 북벽은 1961년 3월, 마터호른은 1962년 2월에 완등됨.
ㅇ 초등,,,
- 오르지 않은 미지의 것, 불가능한 것에 대한 매력, 나의 전 존재(생명까지,,)를 걸고 높은 것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 싸움으로서의 가치추구
ㅇ 산에서 경쟁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 가을이 되어 심신양면에 대한 훈련 시작
- 산에서의 추위, 피로, 고독에 대한 자기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훈련
- 고전적 알피니즘 스타일로 등반준비(헬기/무전기 등 사용하지 않음)
- 컨디션 조절훈련으로 겔렌데 스키훈련
ㅇ 1963.1.25,, 그랑드 조라스 북벽 등반 출발
- 겨울동안 그랑드 조라스 북벽에서 생명의 표식은 완벽하게 박탈 당한다. 이 세계에서 귀에 들리는 것은
눈보라와 눈사태의 난무 뿐이다.
- 43시간이나 같은 하켄 하나에 메달려있다. 빼낸 하켄을 정신없이 입에 물자,, 하켄이 입술에 들러붙어 피가
났다.(동계 날씨,, 영하 25℃임)
- 30m의 알랭크랙에 2시간 소요(바위가 매끈거리고 오버행 코스)
- 청빙의 긴 핏치,,, 괴로운 스탭커팅을 힘들어도 워밍업한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했다.
- "90m의 디에드르" 바위와 얼음, 얼음을 깨고 홀드와 크랙을 찾았다.
ㅇ 오후 4시(해발 3,600m 지점), 루트 중앙부가 되는 "진자횡단" 밑에 도착
- 머리위로 미끈한 통바위 오버행,, 하켄을 받고 자일을 걸어서 10m 가량 현수하강
- 자일에 메달린채 반동을 걸어 크게 진자운동을 시작했다. 수직벽을 무중력 상태로 달리는 기분이다.
좌우를 왔다 갔다하다가 조그마한 돌출부를 붙잡고 작은 테라스 위에 간신히 올라 섰다.
- 이렇게 횡단을 끝내고 자일을 회수했다. 중대한 순간이다. 이 지점을 넘어 섰다는 것은 이제는 후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ㅇ 6일째 밤,, 직벽에 선채로 비박
- 오후의 태양이 산군을 발갛게 물들였다가, 촛불이 서서히 꺼지듯 주위가 어두워졌다. 40m 정도 오르자 얼음
에 덮인 작은 바위선반이 나타났다, 몸시 불편하지만 선채로 벽에 기대어 하루밤을 지낼 수 밖에 없다.
ㅇ 7일째 정상등정
- 드디어 동료 "자펠로"가 눈처마 가장자리에서 얼굴을 보였다. 환회에 빛나는 그의 눈과 내눈이 부딛쳐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다. 우리 사이에 자일이 휘며 밑으로 쳐졌다. 조금전까지도 적벽에서 팽팽했었는데
이제 마법에 걸린듯 고리가 되어 발 밑으로 가로 놓였다.
▣ 15장. 눈보라와 돌 사태속의 그랑드 조라스 윔퍼릉(1964년)
ㅇ 그랑드 조라스 북벽에는 3개의 멋진 측릉으로,, 워커링, 윔퍼릉, 크로릉이 솟아있다.
- 웜퍼릉 중심부를 파고들며,, 순간 아래를 내려다 보니 얼음이 번들거리는 500m 절벽이고, 머리위 또한
200m 의 벽이 솟아 있었다. 벽의 여기저기에는 눈이 쌓여 있고 맥주 거품처럼 부플어 오른 눈은 당장 떨어질
듯 불안한 모습이었다.
- 바위 덩어리의 대붕괴로,, 불꽃(바위끼리의 충돌로,, 타는 불꽃과 화약 냄세가 진동하고 있다.)
- 낙석 하나가 얼굴을 직격함,,, 흐르는 피가 눈에 들어와 앞을 볼 수 없었다.
- 곧이어 두번째의 대붕괴,,,
▣ 16장. 마터호른 북벽,, 동계 단독초등(1965년)
- 1세기 전인 1865년 7월 17일 "에드워드 윔퍼"와 그의 동료들이 회른리능선으로 마터호른을 최초 등정하고
이틀뒤 "자안 투안느 카멜"이 리온능선으로 등정함
ㅇ 마터호른 북벽은 아이거, 그랑드 조라스와 함께 알픗의 유명한 3대 북벽이다.
ㅇ 1965.2.10,, 3인이 참여하여 "진자의 트래버스"를 넘어섬,,
- 밤중에 폭풍설,, 암벽에 매달린채 비박색으로 상반신을 감쌈,, 돌풍으로 비박색이 찢어지며 날아감.
날이 밝을 무렵,, "기압은 15밀리바"로 내려가 있어,, 기상 악화/폭풍과 폭설이 예상되어 퇴각
ㅇ1965.2.18,, 등반 시작
- 어둠속에 나타난 거대한 벽 그림자에 겁을 먹으며, 한잠도 자지 못한채 밤을 지샜다. 아침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추웠다. 비박색에서 나오는 순간 몸 전체가 얼렸다. 올라갈까 아니면 체르마트로 내려 갈까? 그러나
각오는 돼 있었다. 벽을 보고 한걸음 내디뎠다. 이것이 자기와의 싸움이다.
- 암벽에서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전진했다. 우선 배낭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켄에 매단다. 그리고 자일 길이
대로 20m 가량 오른다. 이렇게해서 한피치 오르면 자일 한쪽 끝을 하켄에 고정시킨다.
그리고 배낭이 있는 곳으로 다시 내려와서 배낭을 지고 앞서 오른곳까지 올라간다. 물론 도중에 하켄을
박고 그 것을 후에 회수한다. 시간이 걸리고 피료도 상당하다. 사실 이런 식으로 정상까지 간다면,,,
나는 마터호른을 두번 오르고 한번 하산한다는 계산이 된다.
ㅇ 2박,,, 비박에 들어가자 무섭게 돌풍이 불었다.
-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 등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러면서 나는 깊은 고독감에 잠겼다.
ㅇ 3박,,, 스토브를 꺼내 물을 만드는 일이다.
- 나는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옆에 아무도 없는데 혼자 큰소리로 떠들었다. 이런 일이 밤마다 있었다. 어두워
지면서 많은 생각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규모가 큰 단독등반을 하노라면 이런일이 자주 일어난다.
ㅇ 4박,,, 또 밤이 되었다. 기진맥진했다.
- 입안이 칼칼하고 쓴맛이 났다. 어떻게해서 비박지까지 왔는지 몰랐다. 오늘밤도 끝없이 망령과 바람과 얼음
과 망상의 운무가 시작하려는 것이다. 어제밤도 너무 30㎝의 바위선반에 앉은채 한잠도 자지 못하였다.
수직벽에 몸을 기대고 다리는 공중에 뜬 자세로 가슴과 무릎주위를 슬링 2개로 둘러 벽에 고정시킨 것이
전부였다. 새벽 6시반 가슴에 매단 온도계는 영하 30℃를 가르키고 있다.
▣ 17장. 알피니즘이여 안녕(1965년)
ㅇ 사람에게는 언젠가 자기 일생을 총괄하여 좋은 일이건, 나뿐 일이건 한번 청산해야 할때가 온다.
- 살아 온 인생 전체에 대한 자기 검증,, 올 바르게 자기를 평가하려면 잘한 것/못한 것,, 장점/약점 등
양 극단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평한 눈으로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한다.
ㅇ 알프스라는 자연의 미와 도전 정신, 그리고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 나는 산에 끌려 산을 사랑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받아 들었다. 그랑 카퓌생 동벽이나,, 미등의 K2에서
감투를 벌인 8,100m 폭풍속의 비박 그리고 드류 남서릉의 단독 등반,,, 등등
- 어디를 가든 산을 오르던 때와 같은 정신,, 인간의 한계를 응시하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 18장. 몽블랑에 끌려 돌아오다(1984년)
ㅇ 말잔등같은 능선이 다가오고 길게 가늘게 뻗은 부드러운 얼음능선이 바로 몽블랑이다.
- 뚜렷한 실루엣을 보이고 있는 것이 "마터호른"과 "몬테로자"이다.
해가 떠오르는 찰나의 빛을 받고 빨갛게 타고 있다. 여명에 물든 푸른계곡이 아직 밤의 어둠에 잠겨 있다.
ㅇ 해가 떠오르자 바람이 잦고 고요가 지배하는 백색세계에는 햇빛으로 가득하다.
- 정상과 산릉을 비치는 따뜻한 햇살이 빤빤한 벽에서 바위 협곡으로 만화경과 같은 빛과 대비의 변화로
밑으로 내려온다.
ㅇ 발 밑에 뻗어있는 눈처마가 붉게 타오르고 공중에 분설의 불꽃을 뿌리며
- 주위 설면에는 얼음 결정체들이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하늘은 더욱 푸르고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정경은
온갖 것을 지배하고 있다.
ㅇ 첩첩이 이어진 산들은 한데로 융합하는듯이 보이다가도 다시금 따로 떨어져 마치 경합하는 양 빛을 발하고
있다. 멀리 그 밑으로 거친 크레바스가 여기저기 입을 벌린 빙하가 거무스름한 호수면 처럼 잿빛을 띠고있다.
▣ 19장. 나의 마지막 모험 파타고니아(1986년)
ㅇ 1,800㎞의 거대한 파타고니아의 내륙 빙하지대
- 자기 발로 탐방,,, 무엇이나 자기가 등에 지고 갈 수 있는 것만 가지고 가기로 했다.
- 무게는 70파운드로 약 35㎏
ㅇ 여기는 정상,,, 이엘로 컨티넨탈
- 주위는 온통 눈과 얼음이다. 여기서 빛나는 산과 산, 거대한 봉우리와 칼날능선, 바위로 된 성채, 깍아지른
절벽, 그리고 허공에 매달린 빙괴 등 이 모든 것이 산이 제공하는 최고 최상의 산물이다.
- 가장 감동적인 것은 무한한 백색 세계인 설원으로, 그것은 사방으로 그 세계를 뻗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끝내는 진주빛 하늘속에 그대로 녹아들고 광대한 빙하의 모습으로 바다의 피오르드로 흘려 들어간다.
▣ 20장. 알피니즘에 대한 고찰(1989년)
ㅇ 알피니즘의 개념은 무엇인가?
ㅇ 알피니즘을 실현하려면 어떻게해야 하는가?
ㅇ 알피니스트로서 자기 자신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