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뭔 생각으로 그랬대요
“한반도의 비핵화를 자주적으로 실현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북의 호응으로 큰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제시하며 당시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을 고르라는 문제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돼 논란이 일었습니다.(2020.12)
이 문제의 정답으로 제시된 5개의 보기는 ① 당백전 발행 ② 도병마사 설치 ③ 노비안검법 시행 ④ 대마도 정벌 ⑤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등입니다. 누가 봐도 ⑤번이 정답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윤희숙 국회의원이 문제의 출제 의도를 따져 물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냐?”
시험은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시험을 보는 목적은 수험생들의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에 공적인 시험 문제는 난이도가 너무 가볍거나 장난 같아서는 결코 안 됩니다. 수험생들의 미래가 달린 중차대한 문제이기에 매우 신중해야 하며, 과할 정도로 공정ㅎ야 합니다.
공적 영역의 시험은 단순 흥미 위주의 문제와는 달라야 합니다. 어느 방송국에서 애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만든 퀴즈입니다. ‘누이’, ‘나침반’, ‘다함께 차차차’를 부른 가수는 누구일까요? ① 추자도 ② 제주도 ③ 울릉도 ④ 설운도.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애초부터 재미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의 문제는 어떨까요? 사슴의 뿔로써 보혈작용이 있는 약재는? ① 녹용 ②인삼 ③ 대추 ④ 생강. 이 문제 역시 해답이 너무 뻔히 보입니다. 하지만 방송국이 낸 문제처럼 단순히 웃고 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2006년에 기성 약사들을 대상으로 한 한약조제약사시험이라는 공적 영역의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수험생들은 시험성적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고생하는 이유는 단 한 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그 단 하나의 문제가 삶의 희비를 가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험문제 출제자는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 지를 잊어선 안 됩니다.
문제 같지 않은 문제로 절실한 마음의 수험생을 우롱하는 것은 출제자 스스로 기본 책무를 내팽개치는 무책임한 형태입니다. 변별력 검증이라는 시험 본연의 목적을 외면한 채 수험생들의 노고를 희화화하는 일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어처구니없는 문제로 환자들의 질병 상태를 평가한 정신병원의 시험과는 분명 달라야 합니다.
정신병원에 수감 중인 환자 세 명이 퇴원 여부가 달린 실기 시험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만약에 이번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향후 3년 간 병원에 더 입원해야만 합니다. 이들의 담당 의사가 시험 문제를 냈습니다. 문제는 물이 전혀 차 있지 않는 수영장의 높은 다이빙보드에서 과감하게 뛰어 내리라는 지시였습니다.
첫 번째 환자는 출제자의 지시에 따라 용감하게 뛰어 내렸으나 양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두 번째 환자도 눈을 질끈 감고 과감하게 뛰어 내렸지만 그 대가로 두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환자는 뛰어 내리기를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외쳤습니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이제부터 자유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왜 뛰어 내리지 않았나요?” 환자가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수영할 줄 모르는데요!”
시험이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을 다 거는 일입니다.
세상을 비틀어보는 75가지 질문
Chapter 5. 윗물이 탁해도 아랫물이 맑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