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낭만의 산실, ‘세시봉’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종 희
7080세대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세시봉’. 이 대중음악 감상실이 영화화되어 아내와 함께 시사회에 참석하는 행운을 가졌다. 얼마 전, ㅅ영화관에 회원가입을 했더니 무료시사회 안내공지를 알려온 것이다. 1월 28일(수) 13:00 시사회가 있는데 11시부터 티켓을 배부한다고 했다. 우리는 08:50에 상영하는 이승기와 문채원이 주연하는 ‘오늘의 연애’를 관람하고 나와서 티켓을 받아 관람했다. 극장 안은 빈 좌석이 없었다. 영화 ‘세시봉’에 대한 관심이었을까, 아니면 공짜여서였을까? 아마 전자가 맞을 듯싶다. 그때 그곳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TV화면으로 이들 가수가 부르는 음악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6,70년대 서울의 최고 번화가인 무교동에 ‘세시봉’이란 대중음악 감상실이 있었다고 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찾아가 노래를 불러 자신의 재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감상실이었다. 이때 조영남, 이장희와 함께 영혼을 울리는 보컬리스트 송창식, 맑은 음색으로 노래하는 감동의 아티스트 윤형주도 뒤늦게 합류했지만, 진심을 담은 음악으로 노래하는 음유시인 김세환이 트리오가 되어 세시봉은 번창일로를 걸었다고 한다. 순수한 음악 감상을 벗어나 맥주를 판매하는 사업으로까지.
‘세시봉’ 사장은 무대에 나와 노래를 한 사람 중에서 그날의 최고의 가수를 선정하고 발표하여 젊은이들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음색이 맑은 윤형주가 독무대를 걷고 있었는데, 국방색 옷을 걸친 송창식이 나타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다. 겉보기에 촌스럽게 생긴 송창식을 우습게 여겼는데 노래를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송창식과 윤형주 두 사람은 라이벌이 되었다. 천재적인 소질을 지닌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이장희는 중저음을 접목하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통영 촌놈 오근태를 소개한다. 근태는 악보나 기타에 대하여 문외한(門外漢)이었다. 작곡이나 기타에 능숙한 송창식에게 기대어 살면서 하나씩 배워갔다. 음악에 대한 소질이 있어서인지 차츰 익숙해졌다.
허름한 청바지, 국방색옷을 걸치고 통기타를 둘러멘 털털한 사나이를 나는 무척 동경했다. 더구나 기타를 메고 한쪽 다리를 올린 채 앞으로 구부정한 자세로 왼손으로 키를 옮겨가며 오른손으로 긁어대는 음악소리에 친구들은 개다리 춤일망정 신나게 흔들어댔다. 나도 언제 저렇게 기타를 다룰 수 있을까 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도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는 가수들을 보면 그 분위기에 빠져들곤 한다. 내가 색소폰을 배우게 된 것도 이런 이유다.
송창식, 윤형주, 오근태 세 사람은 트리오가 된 것이다. 이들 각각의 음색이 기타 반주에 어울려 나오는 하모니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이들 트리오가 방송국에 출연하는 날 오근태가 펑크를 내고 만다. 그는 그 즈음 매력적인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을 지닌 배우 지망생 민자영과 사귀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할꼬. 자영은 배경 좋은 첫사랑 남자의 강력한 대시로 결혼하게 된다. 통영 촌놈은 허탈에 빠져 방송출연을 펑크 낸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방송은 두 사람만으로 ‘트윈 폴리오’란 이름으로 출연할 수밖에 없었으나 성공적이었다. 그 후, ‘세시봉’에 드나들던 주 멤버들은 대마초 흡연사건으로 모두 고초를 당하게 된다. 유일하게 피한 사람은 민자영뿐이었다.
오근태는 그 이후로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중에 이들보다 후배인 김세환을 합류시킨 것이리라. 세월이 흘러 미국으로 건너간 이장희는 LA방송국에서 일하면서 잘 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그리던 통영 촌놈을 만나게 되었다. 근태는 연예인들을 대마초 사건으로 몰아넣는데 이용당했음을 털어놓는다. 모두 불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인권유린시대였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근태는 친구들의 이름을 대는 조건으로 민자영 만은 빼달라고 애걸한다.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사랑했던 여자였지만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의 힘이 이렇게 클 줄이야. 근태는 역시 사나이였다. 같이 할 수는 없지만 지켜주고 싶은 사랑, 송창식이 부르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부르며 민자영에게 고백한 사랑을 지킨 것이다. 이 대목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장희의 주선으로 오근태와 민자영이 다시 만났지만, 근태는 회사를 다니는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으나 민자영은 이혼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다시 결합할 수 있는 운명도 못되고.
오근태는 가상인물이며 실제인물은 이익균이다. 현재 한국종합기술 전무이며 토목 전문가로 근무하고 있으며, ‘세시봉친구들’ 전국투어에 게스트로 출연했다고 한다.
귀동냥으로만 들었던 청년음악의 산실 ‘세시봉’이란 말은, 프랑스 샹송 중 한 곡인 ‘C'est si bon’이다. ‘아주 멋져’라는 뜻과 같이 감동적이었다. 영화는 20대 첫사랑의 기억을 들춰내고, 이제는 중년이 된 주인공들이 그 시절을 회상한다. 여기다 당시 유행했던 음악을 중심으로 최근의 복고 열풍을 이어가고 있어 중장년층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제격이었다. 시간도 지나고 세대도 뛰어넘었지만, 우리를 설레게 하는 이유는 뭘까. 화려한 조명도 무대도 아니건만. 아마 당시의 젊은이들의 음악에 대한 꿈과 낭만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에서 공유할 수 있는 패기와 공감이 아닐까.
그들이 불렀던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미국민요)’, ‘웨딩케이크(트윈 폴리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이장희)’, ‘하얀 손수건(트윈 폴리오)’이 은은하게 들려온다.
(201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