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차 속에서 석양을 찍다
석양을 보면 괜히 슬퍼진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시끄럽던 하루가 다하고 저녁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석양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하루를 지배하던 일상의 소음과 떠들썩했던 사건들이 오롯이 묻히는 시간이 바로 이 석양 무렵이다.
그래서 이 무렵만 되면 세상은 고요하다. 무한정 푸르름을 적시며 봄날을 만끽하던 숲도 가라않고 제 몸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활활 불타오르던 꽃들도 차분히 잠자리에 든다. 그러면서 하루를 반성한다. 뒤 돌아보면 죄 지은 일이 많기에, 막 지려는 해가 흘리는 눈물로 벌겋게 하늘이 물든다. 그래서 산 능선은 붉은 기운이 감돈다.
말하자면 석양은 패망을 뜻하고 죽음을 뜻한다.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석양을 보며 흘러간 날을 후회하곤 한다. 석양을 바라보며 흘리는 통한의 눈물도 제각각 다르다. 문인들은 시를 통해서 국가의 패망을 노래했고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서 세속의 타락을 표현했다.
나는 이런 모습의 석양을 몇 해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 곧장 시선을 뻗으면 바로 한눈에 들어오던 월유봉 돌산, 그 돌산 위를 벌겋게 물들이던 석양을 잊을 수가 없다. 진달래 꽃잎이 붉게 물들어 산자락을 적시고 지치지도 않고 울어대던 뻐꾸기 소리가 하루를 마감하던 날이었다. 석양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나는 아직도 내 마음 속에 꽉 찍힌 벌건 불도장을 잊을 수 없었다.
ⓒ2005 유진택
그때는 다만 철없던 시절이라 나는 석양을 그냥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다. 슬프다고 느낀 감정은 철이 들어서 알았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몇 해가 지나도 석양을 볼 수 없었다. 아마 하늘을 보며 사는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남들은 수백 번도 더 봤을 그 석양을 나는 왜 여태까지 보지 못하며 살았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하루를 아주 바쁘게 뛰어다녀야만 했던 시절이라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하여튼 오늘 보았던 석양은 내가 그 옛날 마음 속에 찍어두었던 불도장 하나를 꺼내보는 것과 똑같은 그런 기분이 들게 했다. 산과 하늘의 경계를 붉게 물들인 석양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나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석양을 그냥 마음 속에 묻어버릴 뻔했다.
ⓒ2005 유진택
가족과 함께 처가를 다녀오던 도로에서였다. 나는 가끔 처가에 가지만 오늘은 부모님 산소를 들러 풀도 뽑고 자투리 시간이 남아 인근 마을에 있는 처가에 잠깐 들르게 된 것이다. 산소가 있는 고향에서 처가까지는 차로 20분쯤 되는 거리에 있다.
요즘은 전국에서 포장이 안 된 도로가 없을 정도로 처가까지 연결된 도로도 산뜻하게 포장이 되어 있어 마음놓고 달리면 그 시간에 닿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나는 처가에 도착해서도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부모님 산소에서 풀꽃을 찍어대던 버릇이 남아있던 탓일까. 처가에 가서도 그 버릇을 못 버리고 디지탈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다.
처가 주변에는 카메라로 찍을 풍경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처가에서 몇 발짝 나가면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냇물이 보였고 둑에는 한껏 푸르름에 취한 풀들이 꽃망울을 터뜨린 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천덕산 방향에서 흘러 내려오는 냇물에 섞인 바람 탓도 아니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놀란 풀들이 냇가의 둑을 무너뜨릴 듯 온몸을 파르르 떨었던 것이다. 그리고 까치도 놀라 달아났는지 빈 까치집만 휑하니 남아 있는 느티나무도 결국은 카메라에 잡히고 말았다.
이렇게 바람난 사내처럼 둑을 헤매다 대전으로 출발한 시간은 오후 6시경, 아내를 옆에 태우고 딸을 뒷좌석에 태운 채 국도를 달렸다. 한참 달리던 차가 심천 부근까지 왔을 때였다. 멀리 보이는 산 하나가 내 앞을 서서히 가로막으며 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때였다. 나는 그 순간 산 능선을 붉게 물들인 석양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분명히 석양이었다.
산능선을 간신히 가린 해는 산 너머로 곧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바로 눈앞으로 굽어도는 오른쪽 방향으로 차가 서서히 꺾인다면 붉은 해는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옆에 앉은 아내에게 소리치며 말했다.
"야, 빨리 찍어. 신문기사감이다"
아내는 엉겁결에 카메라를 집어들어 조수석 창문을 통해 앵글을 맞췄다. 그 순간 달려가던 차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눈앞으로 바싹 밀려온 산은 보기 좋게 해를 감추고 말았다. 나는 아쉬움에 젖어 아내에게 장난삼아 말했다.
"그것도 못 찍냐?"
"그럼 낼 다시 여기로 와."
ⓒ2005 유진택
아내도 지지 않고 대꾸를 했다. 아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내일 다시 이곳으로 와도 된다. 그러나 내일은 출근이라 시간도 없을 뿐더러 만약 다시 이곳에 온다고 해도 오늘처럼 똑같은 석양이 나타날 리 만무했다. 계속 달리던 차가 심천교 까지 왔을 때였다. 사라졌던 해가 다시 나타났다.
"어, 또 나타났다. 다시 찍어."
아내는 다시 잽싸게 카메라를 들어 산 능선에 걸린 해를 찍었다. 한 번 찍은 사진이 실패할까봐 세 번을 찍었다. 차가 심천교를 넘어서자 나는 빈 공터에 차를 세우고 아내가 방금 찍은 사진을 되돌려보았다. 노을에 반쯤 잠긴 해가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야. 성공이다. 됐다. 됐어."
나는 어린이처럼 싱글거리며 차를 몰아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대전으로 돌아오다 우연히 마주친 석양이 내 생애 처음으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