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20.
부동산 정책 실패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면서 집 없는 보통 사람의 실망과 좌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 가진 이도 불로소득이 판치는 세상에서 일할 맛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대체 집권 3년 만에 아파트 중윗값 52% 상승이란 게 말이 되나. 국회의장의 아파트는 지난 4년 만에 23억원이나 올랐다. 형편이 이런데도 폭동이 나지 않는 건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이다.
정부는 그동안 세금·금융·청약 제도 조정을 통해 부동산 시장을 관리해 왔다. 그러나 시장은 정부 정책이 바뀔 때마다 역반응을 보여 매물이 줄고 가격만 폭등했다. 오죽하면 집권당 국회의원마저 정부 조치에도 불구하고 ‘집값 하락은 어렵다’고 말할까.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 장관의 용퇴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장관은 책임지고 물러나는 게 순리다. 그러나 장관을 바꾼다고 폭등하는 집값이 잡히는 건 아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기본 인식 틀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시장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22번의 부동산 정책 수정이 있었지만, 정책의 기본 프레임 자체를 바꿔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런 안일한 대응이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내성만 키웠다. 이는 전 정부에서도 같았다.
집값 폭등 지역의 아파트는 주거시설 이상의 의미를 가진지 오래다. 사회적 신분을 표출하는 상징물이기도 하고, 자녀 대학 진학을 위한 편의시설로 여겨지기도 한다. 주변에 좋은 고교나 대입 학원이 밀집한 까닭이다. 강남에 각종 문화·교통·편의 시설을 집중하면서 그 지역 집값이 내리길 바라는 건 가당찮다.
대표적 사례가 현대자동차그룹의 신사옥 건립이다. 지구경영센터(GBC)만 해도 업무, 관광·숙박, 문화 및 집회(공연장·집회장·전시장), 관광 휴게, 판매시설이 어우러진 대규모 복합시설이다. 인근에는 현대차가 제공하는 1조7400여억원의 공공기여금으로 영동대로 지하 공간 복합 개발, 잠실종합운동장 리모델링 등 9개 사업이 함께 진행된다. 이런 대형 개발 프로젝트로 강남의 지형과 중심축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이런 GBC 건립을 위해 용적률을 높이는 특혜까지 베풀었다. 이러고도 이 지역 집값이 내리기를 바란다면 바보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 폭등에는 복합적 요인이 연동돼 있다. 주택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오른다는 식의 고식적 인식의 틀로만 접근해서는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국토부나 기획재정부 차원의 협소한 시각에서 대응할 과제가 아닌 까닭에 전 정부 부처에 걸쳐 연계 대응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정부에는 집값 앙등에 대처하는 상시적이고 범정부적 종합 대응 체계가 제도화돼 있지 않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체계적으로 협력하는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강남이 부동산 불패 신화를 쌓기 시작한 것은 좋은 학군이 몰리면서였다. 그러니 이런 수요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다른 조치들과 함께 동원돼야 한다. 그런 방안의 하나로 교육부는 수도권 외곽에 학교 마을(캠퍼스 타운)을 여럿 조성하여 집값 폭등 지역의 명문고와 서울 시내 대학 등을 그곳으로 이전하고 대입 학원 운영을 제한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일이다. 비대면 시대에 맞게 산업자원부·중소기업부·정보통신부·행정안전부가 기업·정부의 재택근무 촉진 정책을 추진할 경우 승수효과도 기대된다.
이런 노력은 인구의 수도권 집중을 완화할 뿐 아니라 내수 경기가 어려운 이때 건설 경기 부양에도 기여한다. 서울시의 대규모 개발 사업은 부동산 가격 상승과 연계시켜 관리하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부에 집값 폭등 억지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박재창 / 한국외대 석좌교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