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은 예수님이 산 위에서 하신 설교, 즉 산상수훈입니다.
산상수훈은 ‘기독교의 대헌장’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곧 사람의 됨됨이, 사람의 도리,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가장 완벽한 윤리원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그 중 41절의 말씀을 주제로 삼고자합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마5:41).
첫째, 이 말씀은 ‘의무 이상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보수를 위하여 일하지 말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어진 의무도 못하는 사람이고, 둘째는 주어진 의무만큼만 일하는 사람이며, 셋째는 주어진 의무 이상을 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당신이 회사의 사장이라면, 임원이라면 이 중 어떤 사람을 쓰겠습니까? 말하나마나 세 번째 사람일 것입니다.
정신계몽가인 나폴레옹 힐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오리보다 십리를 걸어라’는 말은 성공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삶의 원리이다.”
미국의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는 직원을 승진시킬 때 학력이나 인물을 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오리보다 십리를 걷는 자’를 승진시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명 ‘플러스 알파법칙’입니다. 이 ‘플러스 알파법칙’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찰스 스웹이었습니다. 일찍 출근했던 카네기보다 찰스 스웹은 항상 먼저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직원이 퇴근한 후에도 항상 일터에 남아 뒷정리를 다했습니다.
그런 그를 카네기는 눈 여겨 보았습니다. 드디어 회사에서 보너스가 지급되던 날, 찰스 스웹은 100만 불이라는 거액을 보너스로 받았습니다. 찰스 스웹 뿐만이 아니라 동료들도 놀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카네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월급은 회사와 맺은 약속의 시간만큼 일한 것에 대한 대가이며, 100만 불은 주어진 의무보다 더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입니다.”
후에 찰스 스웹은 노무자에서 일약 미국 최고의 철강회사인 유나이트 스틸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일용잡부였지만 ‘오리보다 십리를 걷는 태도’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인생이 바뀐 것입니다.
6시 ‘땡’ 치면 퇴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키는 일 이상은 절대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어느 상사가 좋아하겠고, 그 사람에게 누가 큰일을 맡기겠습니까? 다섯 번 돌아볼 것 열 번 돌아보는 사람, 다섯 번 연구할 것 열 번 연구한 사람이 승진하고, 그런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의무+α’, 이것이 성공으로 가는 삶입니다.
둘째, 다섯 번 공부할 것 열 번 공부하는 ‘노력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배우가 욕을 많이 하는 역을 맡았는데, 그는 욕이 입에 밸 때까지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봤습니다. 명배우가 괜히 되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차사순 할머니가 960여 회의 도전으로 운전면허증을 딴 사건이 세계적인 일화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 번해서 안 되면 두 번 하면 되고, 다섯 번 해서 잘 안 되면 열 번 하면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계속 노력하면 뭐든 다 된다는 말입니다. 즉 5시간 공부할 것을 10시간 공부하면 우등생이 되고, 5일 일할 것을 10일 일한다는 생각으로 하면 일이 쉽고, 그 일에 성취 뿐 아니라 달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 5시간 훈련할 것을 10시간 하자하면 금메달을 못 딸 리 없고, 열 길의 땅을 팔 것을 스무 길 파면 건수대신 생수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즉 영적인 문제든, 혼적인 문제든, 육적인 문제든 배 노력하고, 배 훈련하고, 배 연구하고, 배 두드리고, 배 찾는 자는 남들보다 배나 잘 살고, 배나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제가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배나 기도했고, 배나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입니다.
한 젊은 화가가 자신이 그린 그림이 팔리지 않자 피카소를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왜 제 그림이 안 팔리는 건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의 그림은 그리기가 무섭게 팔려나가는데 말입니다. 그 비법 좀 가르쳐주시겠어요?”
그러자 피카소가 젊은 화가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그림을 완성하는데 얼마나 걸리나? 한 작품을 얼마동안 그리느냐 물었네.” “대체로 3일 정도 걸립니다.” “그런가? 나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3년 정도 걸린다네. 자네도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3년 이상 몰입해보게. 그러면 그리는 즉시 다 팔리게 될 걸세. 3일 걸린 작품은 3년이 되어도 안 팔리지. 명작은 노력을 먹고 탄생되는 거라네.”
거목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은 대기만성(大器晩成)형입니다. 셋째, 다섯 번 생각할 것 열 번 생각하는 ‘신중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섯 번 점검할 것 열 번 점검하면 실패하지 않고, 실수하지 않고, 불량품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즉답을 피합니다. 왜냐하면 즉답은 다분히 감정적이어서 오류와 실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 다섯 번 생각할 거 열 번 생각합니다. 하나의 예로 지금 사는 집도 10번 이상을 보고나서야 샀습니다. 물론 제가 처음부터 진중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 성격이 워낙 총 나간다 칼 나간다 하는 터라 생각하기 전에 약속부터하고, 생각보다 말과 행동이 먼저여서 실수도 많이 했고, 손해도 많이 봤습니다. 값비싼 수험료를 내고 얻은 귀한 교훈입니다.
사업을 앞두고 다섯 번 생각할 거 열 번 생각하면 절대 망하지 않고, 결혼을 앞두고도 생각하고 생각하면 발등 찍히는 일 없고, 어떤 말을 하려고 할 때도 한 번 더 생각하면 실언하지 않고, 무언가를 살 때도 한 번 더 생각하면 낭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심정으로 조급하지 않고 만사 심사숙고하면 인생에서 실수하지 않게 됩니다.
넷째, 다섯 개 준비할 것 열 개 준비하는 ‘여유 있는 삶’을 말씀하십니다. 즉 1억짜리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2억을 준비해놓으면 걱정 없이 더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고, 김장 5포기할 것을 10포기 하면 남에게 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것에 여유분을 준비하면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이나 경제공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산상집회에도 저는 성도들이 넉넉히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이 성도들을 먹일 수 있는 것입니다. 부족하면 인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색한 자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인색한 자식은 부모도 싫어하지만, 반대로 인색한 부모도 자식이 싫어하는 법입니다.
다섯 째, 다섯 개 줄 것 열 개 주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40절 말씀,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와 동일한 말씀입니다. 남들이 하는 만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6장에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도 아니다. 죄인들도 그런다’는 말씀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함에 있어서는 남들이 주는 다섯 개 사랑이 아닌 그 이상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까지 버렸던 것처럼, 우리도 내가 베풀 수 있는 사랑, 그 이상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이 말씀을 잡고 내 삶에 접목시킨다면 반드시 영·혼·육의 성공이 따라올 것입니다. 배움의 끝은 실천입니다. 할렐루야!
매사 주인의식으로 의무 이상을 하라
거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