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06.
얼마 전 유네스코(UNESCO)가 ‘세계 빛의 날’ 제정을 선포했다. 내년부터 매년 5월 16일을 ‘세계 빛의 날’로 기념하자는 것이다. 이는 2015년 ‘세계 빛의 해’에 대한 큰 호응의 연장선상에서 광학과 광기술의 중요성을 세계 만민들에게 인식시키는 일을 연속적으로 하기 위함이다.
‘세계 빛의 해’에는 140여 개국에서 총 1억 명에게 광학과 광기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 바 있다. 앞으로는 ‘세계 빛의 날’을 기념해 국제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광학회를 비롯한 한국광산업진흥회, 한국광학기기산업협회 등 다양한 학술 및 산업 단체와 연구소가 힘을 모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네스코가 5월 16일을 택한 이유는 이날이 물리학자 시어도어 메이먼이 최초의 레이저를 만들어 동작시킨 날이기 때문이다. 레이저의 근본 원리가 되는 ‘유도방출’이라는 현상은 아인슈타인이 1916년에 이론적으로 예측했다. 빛이 자신의 쌍둥이를 복제해 같은 진행 방향과 같은 파동 특성을 갖는 센 빛을 만들어 내는 현상이다. 현대의 광학과 광기술은 크게 레이저를 이용하는 것과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뉠 만큼 레이저의 영향은 지대하다.
광통신이란 주로 광섬유를 이용한 통신을 뜻하는데 그 광원으로는 반도체 레이저가 이용된다. 초고속 광통신은 오늘날 세상을 바꾼 인터넷을 가능하게 한 기술이다. 하나의 레이저와 변조기를 이용해 한 가닥의 광섬유로 초당 100억 개의 비트 정보를 전송할 수 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된 중력파 검출은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한 초정밀 측정을 통해 이루어진 업적이다. 홀로그래피도 레이저를 이용한 기술이다. 홀로그래피는 3D 디스플레이로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홀로그래피 현미경으로도 이용되는데 이를 이용하면 지문의 3D 정보를 비접촉·비파괴적 방법으로 측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라식과 라섹은 레이저를 이용해 각막을 깎는 시력교정기술이다.
레이저가 아닌 빛을 이용하는 기술로는 액정표시장치(LC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의 디스플레이 기술이 대표적이며 휴대전화 카메라, 태양전지, 내시경, 망막의 층구조를 실시간 측정하는 광 간섭단층촬영장치(OCT) 등이 있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축인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기가 큰 주목을 받는데, 가벼우면서도 고해상도 영상을 인터랙티브하게 제공할 수 있는 머리장착디스플레이(HMD) 개발이 한창이다. 레이저와 레이저가 아닌 두 가지 종류의 빛을 함께 사용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기술로 자율주행차가 있다. 레이저를 이용한 장치인 라이다(LIDAR)와 카메라를 이용한 영상정보처리 기술이 사용돼 차량과 물체나 보행자와의 거리를 파악한다.
광기술은 선진국만을 위한 기술이 아니다. ‘세계 빛의 날’ 추진을 시작한 사람들은 유럽과 미국의 학자이지만, 유네스코에서 그 제정을 발의한 국가는 가나, 멕시코, 뉴질랜드, 러시아였고 이를 지지한 국가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콩고, 케냐, 레바논, 수단, 나이지리아, 토고, 베트남, 우간다, 짐바브웨 등이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태양전지로 낮 동안 충전했다가 밤에 네 시간 정도 불을 켜는 전구, 재료비가 1달러인 안경 등의 적정기술이 생활 개선에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구현하는 하드웨어 기술로 광기술이 필요한 곳이 많지만 우수연구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올해 국제광공학회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광학 연구개발자의 연봉 중간값은 세계 13위, 만족도는 17위다. 미국, 중국 등에서는 메타표면 기술로 수백 나노미터의 얇은 두께를 갖는 렌즈를 만드는 연구가 활발하고, 광학시스템과 나노광학 설계에 인공지능(AI) 기법을 도입한 AI 광학이라는 학술분야도 태동하고 있다.
광기술은 그 자체로 제품을 제공하는 기술이기보다 다양한 기기에 요소기술로 이용되는 기술이어서 일반인이 그 중요성을 인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세계 빛의 날’ 제정이 앞으로 광학과 광기술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연구활성화와 인재 육성을 지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병호 / 서울대 교수 전기정보공학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