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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쓰는 방법
한국 칼럼은 재미가 없다. 일본 칼럼은 더 재미없다. 필자가 신문을 안읽어서 요즘 어떻게들 쓰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20년 전에 그랬다. 외국 칼럼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유독 한국과 일본만 이상하다. 도무지 기본이 안 되어 있잖아. 이것들이 연구도 안하나?
칼럼이라는 것이 건물의 기둥인데 가로쓰기 하는 신문에 세로 기둥을 친 것은 신문사의 편집방향과 관계없는 외부 필진의 기고라는 말이다. 즉 칼럼은 맥락없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반 도입부가 중요하다. 특별한 기술이 들어가주는 거다.
영화를 보더라도 초반 5분에 임팩트를 던져야 한다. 헐리우드는 특별한 기교를 쓴다. 초반에 주인공이 빌런을 퇴치하는 멋진 액션을 보여준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서 빌드업을 다시 한다. 초반 5분은 관객을 긴장시키는 의도적인 장치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좋은 칼럼의 방법
1. 첫 문단에 어떤 완결된 사건을 투척한다. 정 할 이야기가 없으면 삼국지 한 장면을 긁어와도 된다.
2. 그 다음은 신문기사를 긁어온다. 이때 장소와 시간과 숫자와 이름이 들어간다. 이 부분은 지루하다.
3. 올고 그르고 간에 분명한 가치판단을 하고 의사결정을 한다. 공간적으로 방향전환을 해야만 한다.
4. 결정된 것을 현실에 접목시켜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분석해준다. 이는 시간적으로 풀어주는 거다.
5. 종합하여 결론을 내리고 구체적인 액션을 찍어준다. 닥치고 이재명 찍어!
나쁜 칼럼의 방법
1. 첫 문단에 신문기사를 긁어와서 주소, 숫자, 이름 따위 딱딱한 것을 쓴다.
2. 초반부터 서론, 본론, 결론을 요약해서 자기 할 말을 다 해버린다.
3. 2번에 데이터를 추가하여 분량을 늘리고 했던 이야기 또한다.
4. 3번에 빠진 것을 추가하여 분량 늘리고 했던 이야기 또한다.
오마이뉴스 기술
1. 조중동 신문기사를 긁어온다.
2. 밑줄 그어가며 한줄씩 일일이 반박한다.
3. 좌파의 강령에 맞추어 데이터를 왜곡한다.
4. 미리 정해져 있는 좌파 진영논리 집단사고를 복붙한다.
5. 지도부에서 정해준 아전인수 모범답안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 첫 문단에 할말 다 해놓고 했던 이야기 또하며 데이터를 추가해서 분량 늘리기를 한다. 이러니 재미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입장이 진영논리에 아전인수로 정해져 있다. 의외성은 없다. 궁금증을 유발하지 않는다.
글을 꼭 잘써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글에 구조가 있다는게 중요하다. 구조로 독자들을 긴장시켜야 한다. 어순만 바꾸어도 독자가 긴장한다. 문장을 짧게 끊어주는 것도 긴장유발에 중요하다. 앞에 나왔던 단어가 반복해서 나오면 안 된다. 접속사를 많이 써도 피곤하다.
이름이 '삼천갑자동방삭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인 사람이 있었다. '삼천갑자동방삭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가 어느날 길을 가다가 '홍길동치치카포사리사리센터세브리깡무두셀라'를 만났다. '삼천갑자동방삭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가 '홍길동치치카포사리사리센터세브리깡무두셀라'에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되면 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이름이 짧지만 아랍 왕자를 만나버리면 그야말로 뭣되는 거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가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얀'을 만났는데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가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얀'에게 말했다.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얀아 네 동생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요즘 잘 있다냐? 이름 쓰다가 신문사 망한다.
특히 일본넘들은 이름을 자꾸 바꿔서 사람 헷갈리게 만든다. 히요시마루, 기노시타 토키치로, 하시바 히데요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죄다 같은 사람이다. 도대체 우리가 이걸 왜 일일이 외어야 되지? 이것들은 서비스 정신이 없다고. 이거 외는 재주로 설대 붙겠다.
최충헌 관직명 '벽상삼한삼중대광개부의동삼사수태사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상장군상주국병부어사대판사태자태사'로 받아쳐버려? 최충헌이 거쳐간 관직명을 모두 쓰시오. 주관식 문제다. 이건 사망이다.
글은 함부로 쓰는게 아니다. 긴장을 유지하는게 중요하다. 대칭구조를 넣어야 한다. 자문자답하면 된다. 글쓰기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다시 트집을 잡아 문제를 제기하고 다시 해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연쇄고리를 만들어 사슬을 이어가는 것이다.
연역적인 글쓰기라야 한다. 그래야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연역적인 글쓰기는 형을 따라가는 것이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초반에 어떤 사건의 덩어리가 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망치와 모루를 준비하고 난도질을 치는 것이다. 모루는 역설에 의해 인간의 의도와 반대로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긴장이 유지된다. 뻔한 이야기 하면 안 된다.
칼럼이 망하는 이유는 남의 견해를 긁어와서 진영논리, 아전인수, 모범답안, 데이터 왜곡, 받아치기, 밑줄긋기, 인상비평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남이 빨갛다고 하면 나는 파랗다로 받아치는게 최악이다. 그런데 다들 그런다. 초딩 반사놀이에 본부놀이. 유치찬란.
유시민이 말했다. 박근혜는 단독범이고 윤석열은 공범이 있다고. 이건 다른 시각을 제시한 것이다. 자기를 조금 더 높은 위치에 두어야 이런 형이 보인다. 그냥 받아치려고 궁리하면 이재명이 칼 맞았다 > 긁혔다. 데이터 왜곡에 아전인수다.
김두관, 유승민, 김부겸, 박용진, 이낙연, 김동연 등은 레토릭이 죄다 아전인수다. 룰을 내게 유리하게 바꿔달라는 거다. 어린아이 떼쓰기. 지도자의 관점을 보여준 적이 없다. 신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김갑수가 간 큰 짓을 하다가 박살이 났는데 어쨌든 신의 관점이다. 김갑수는 신의 신까지 못갔지만 신 흉내를 낸 것이다. 신은 인간이 복종하며 책임을 신에게 떠넘겨도 피곤하고 인간들이 리버럴해서 기어올라도 피곤하다.
우파는 신에게 매달려서 신을 곤란하게 하고 좌파는 까져서 신에게 대든다. 그러므로 신은 중립기어를 박고 김새론 편이나 김수현 편을 들지 않는다. 내막을 알아보지도 않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움직인다. 김갑수는 그걸 들킨 거다.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고 무조건 인간들이 좀 치고받고 사고도 좀 치고 너저분하게 놀아야 신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지. 이러는 거다.
칼뱅의 예정설.. 신은 인간의 선악에 관심없다. 자신의 계획을 따른다. 그 계획은 인간이 서로 싸우다가 똑똑해지는 것이다. 다만 선한 인간이 주변과 잘 협력하므로 더 똑똑할 확률이 높다.
자신을 초월자 포지션에 두면 많은 것이 보인다. 그게 연역적 사고다. 어느 쪽이 옳다고 판정하는게 아니라 여야가 서로 싸워야 흥행이 된다는 거다. 서로 박더치게 싸우라고 억지로 유도하면 김갑수 된다. 주최측의 개입은 약자를 밀어주는 플러스 개입이 아니라 강자의 흐름을 끊는 마이너스 개입이라야 한다.
실패하는 개입 - 약자에게 무임승차권 제공
성공하는 개입 - 강자아게 규칙과 도덕 준수 요구
국가도 이와 유사한게 있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 1조는 신의 눈높이에서 정해졌다. 일본의 덴노는 신이다. 신은 인간의 구심점인데 구심점을 만들려면 인간이 적당히 흩어져 있어야 한다. 도덕국가로 모이면 사회주의로 치달아 폭주한다. 인간들이 말을 안듣는다.
1. 미국이 유독 성문제에 관대한 것은 연방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결과다. 사회의 분위기가 엄격해지면 연방탈퇴 압력이 증대된다. 바이블 벨트가 어떤 짓을 하는지 보면 안다. 유럽은 그 자체로 일종의 연방이다.
2. 일본은 왕이 300여 개의 다이묘 소국으로 분열된 열도를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왕실의 의미를 강조하려고 3S작전을 쓴 결과가 빠찡코, 프로야구, 섹스중독이다. 정치무관심 원심력을 생산한다.
신은, 엘리트는, 왕은 사회의 다양성을 원한다. 인간이 흩어져야 자신이 구심점이 된다. 노론이 독점하면 왕권이 약화된다. 선비가 독재하면 왕권이 약화된다. 그러므로 왕은 탕평책으로 신하들을 경쟁시키고 종교도 경쟁시킨다. 특정 종교의 독점은 위태롭다. 그런 눈높이의 차이에서 좋은 칼럼이 만들어진다.
역설의 극복
지식원형
지식의 첫 번째 퍼즐 조각은 힘이다. 힘을 이해했다면 주술의 세계에서 과학의 세계로 건너온 것이다. 힘은 충돌 회피다. 작용과 반작용이 충돌한다. 닫힌계 안에서 자발적 변화는 충돌의 모순을 피한다는 것이 과학의 첫 단추다. 우주의 모든 비밀을 연쇄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
힘은 파동의 동조화다. 동조화는 파동의 충돌 확률을 낮춘다. 파동의 간섭은 충돌 확률을 낮춘다. 지하철 구내에서 사람들은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들소떼의 무리 중에서 한 마리가 달리면 일제히 달리게 된다. 충돌을 피하기 때문이다. 새떼나 물고기의 이동은 충돌을 회피한다.
우주의 기본원리는 충돌의 회피다.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으로 나타난다. 열의 대류, 전도, 복사는 충돌 회피다. 열이 차가운 쪽으로 움직이는 이유는 분자의 진동이 약한 쪽이 충돌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뜨거운 공기의 상승은 충돌 회피다. 충돌하는 쪽이 지기 때문이다.
자동차 엔진의 실린더 안에서 가스가 폭발하면 피스톤을 밀어낸다. 공간을 확보하면 충돌의 확률이 낮아진다. 물체가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 것이나 새떼의 이동이나 메커니즘이 같다. 중력은 지구와 가까운 쪽이 소립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파동이 충돌할 확률을 낮추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물질은 파동이 나란하여 안정된 상태다. 우리는 그것을 원자로 규정한다. 그러나 겉으로 안정될 뿐 내부에 충돌을 간직하고 있다. 내부에서 부단히 방향전환을 하고 있다. 즉 충돌하고 있다. 겉보기로 나란한 결맞음 충돌과 불안정한 결어긋남 충돌이 있을 뿐이다.
불변과 변화가 있다. 불변은 눈으로 보면 된다. 변화는 생각을 해야 한다. 어른과 어린이, 과학과 주술, 문명과 야만, 지와 무지의 차이는 변화의 통제가능성에 있다. 무릇 안다는 것은 변화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세계다. 한 번 건너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변화를 통제하는 것은 힘이다. 과학은 힘의 이해와 힘의 장악에 의한 변화의 통제를 다룬다. 변화는 불변에 의지하여 변화한다. 변화 속에서 불변하는 것이 구조다. 변화는 방향전환이다. 모든 변화는 방향이 꺾이는 지점에서 멈춘다. 던져진 공은 포물선의 꼭지점에서 멈춘다.
하나의 사건에서 변화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다섯 번 정지하여 방향을 바꾼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모든 변화는 계 내부에서 충돌의 확률을 낮춘다. 충돌하지 않는 쪽이 충돌하는 쪽을 이긴다. 나란한 쌍과 충돌하는 쌍이 대결하면 나란한 쌍이 이긴다.
방 하나에 벽시계가 둘 이상 있으면 시계추의 움직임은 나란해진다. 지렛대의 받침점에 가까울수록 동조화 된다. 물고기가 꼬리를 치면 머리 쪽에서 동조화 된다. 어깨에서 팔꿈치를 거쳐 손목과 손가락으로 갈수록 가늘어져야 파동이 동조화 된다. 반대로 굵어지면 부러진다.
생각은 자연의 구조를 복제한다. 뇌 안에 저장된 정보들 사이에 충돌회피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자연은 나란함으로 충돌을 피하고 뇌는 패턴복제로 충돌을 피한다. 중복과 혼잡은 충돌이다. 복잡을 제거하면 남는 것이 구조다. 구조를 복제하여 충돌을 회피하는 것이 생각이다.
인간은 다 바보다. 멍청하다. 1+1은 2가 안 된다. 생각할줄 모른다.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사고가 안 된다. 그 사실을 들켰다. 생각과는 원수진듯 하다.
뉴턴은 두 물체가 서로 잡아당긴다고 했다. 이상하다. 물체가 하나라면 물체는 존재하지 않은 그 무엇을 당기고 있다는 말인가? 갑자기 하나가 더 출현하면 물체는 화들짝 놀라 그 새로운 물체를 향해 갈고리를 던져 끌어당기기를 시작하는 것인가? 뉴턴이 말도 안된는 헛소리를 했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다. 이를 증명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만 뉴턴의 권위에 눌려 비겁자의 침묵을 선택한 세월이 300년이다. 권위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일제히 바보가 된다. 300년 동안 지구에 인간 비슷한 것은 없었다.
4학년 때다. 자석이 쇠를 당긴다는 말을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자석이 주변을 잘 감시하다가 쇠붙이가 나타나면 재빨리 갈고리를 던진다는 말인가? 쇠붙이가 없을 때는 허공을 당기는 것인가?
구조론의 답은 척력은 있고 인력은 없다는 것이다. 소립자의 진동이 자기장의 형태로 공간을 흔들면 파장이 작은 쪽으로 밀리는 것은 확률이다. 큰 파장이 충돌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연이지만 백 퍼센트다. 바둑 초보자와 고수가 대결하여 고수가 이길 확률은 백 퍼센트다. 밸런스 때문이다. 하수가 우연히 좋은 수를 둘 수 있지만 고수가 역시 좋은 수로 맞대응하므로 상쇄된다.
작용 반작용 법칙은 지렛대 법칙과 반대된다. 반작용은 정면으로 맞서지만 지렛대는 이쪽을 때리면 저쪽이 반응한다. 미는 힘이 인력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지렛대 법칙 때문이다.
1. 힘의 작용법칙 - 때리면 간다.
2. 반작용의 기준법칙 - 때리면 맞때린다.
3. 지렛대 공간법칙 - 빗맞으면 반대로 움직인다.
4. 관성의 시간법칙 - 빗맞아도 깔때기에 모아서 상쇄시키고 간다.
지렛대 법칙은 공간의 형태가 결정하고 관성의 법칙은 시간이 걸려야 나타난다. 힘의 법칙은 힘이 운동으로 전환되고, 반작용은 그 기준점이 유도되며, 지렛대는 공간의 형태에 따라 각운동량이 달라지고, 관성은 시간의 진행에 따라 각운동량이 수렴된다.
에너지는 깔때기 속에 지렛대가 들어있고, 지렛대 속에 도마가 있고, 도마 속에 칼이 있다. 칼은 힘의 법칙이다. 도마는 방향을 바꾼다. 지렛대는 방향전환을 조절한다. 깔때기는 모아서 다시 칼로 바꾼다.
1, 때리면 맞는다.
2, 때리면 맞때린다.
3, 상대의 약점만 골라서 때린다.
4, 때리면 맞서다가 더 맞는다.
1번과 4번은 같지만 같지 아니하다. 겉으로는 비슷하므로 초딩들에게는 1번만 알려준다. 2번과 3번은 헷갈리고 4번은 1번과 비슷해서 하나마나한 말이 된다.
1. 도둑은 나쁘다.
2. 억울한 도둑도 있다.
3. 도둑이 대들 때는 내가 빈틈을 보였을 때다.
4. 도둑이 개겨봤자 더 맞는다.
2번과 3번은 어린이들이 헷갈려 하므로 말하지 않는게 좋다. 그래서 가르치지 않았더니 불신이 쌓여서 세상이 엉망이 되었다. 언젠가는 어른들의 사정을 애들 앞에 털어놓아야 한다.
1. 물체의 정지법칙 - 나란하면 정지한다.
2. 칼의 변화 법칙 - 작용하면 변화한다.
3. 도마의 방향법칙 - 작용에 맞작용한다.
4. 지렛대의 방향전환법칙 - 각운동이 맞작용을 변화시킨다.
5. 깔때기의 닫힌계 법칙 - 각운동을 모아서 상쇄시키면 보존된다.
자연은 다섯 가지 형태가 있다. 5번은 다다익선 구조다. 상대가 반항하면 그 힘을 흡수하므로 더욱 좋다. 말을 들으면 착취해 먹고 말을 안들으면 경쟁시켜 먹는다. 하우스는 어떤 경우에도 먹는다. 국가나 은행은 이런 구조로 되어 있다. 은행이 망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즉 은행은 깔때기다.
1, 깔때기 - 상대의 힘을 상쇄시켜 흡수한다.
2, 지렛대 - 힘의 방향을 틀어 원하는 지점에 보낸다.
3, 도마 - 상대의 힘에 맞선다.
4, 칼 - 힘을 전달한다.
5, 물체 - 정지한다.
정지, 전달, 반응, 방향전환, 시간축적의 다섯가지 상태가 있다. 이들은 포개져 있다. 각운동량보존 속에 방향전환이, 방향전환 속에 반작용이, 반작용 속에 전달이, 전달 속에 정지가 있다. 수순을 알면 당장 무엇을 해야하는지가 드러난다.
깔때기를 쪼개면 지렛대 두 개가 만들어진다. 지렛대를 쪼개면 도마 두 개가 만들어진다. 도마를 쪼개면 칼 두 개가 만들어진다. 칼을 쪼개면 물체 두 개가 만들어진다. 세상은 이런 구조로 건축되어 있다.
바둑의 초반 포석은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여 깔때기를 만든다. 바둑판에 커다란 깔때기를 만들어 상대를 가두는 것이다. 그 안에 다시 지렛대를 만들고, 다시 도마를 만들고, 칼을 휘둘러 집을 차지한다. 지렛대는 교환한다. 상대방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이쪽과 저쪽 중에 하나를 살리고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고수에게 유리해져 있다. 한쪽에 두터운 도마를 받쳐놓고 반대쪽에서 칼질하여 위협한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지금 이 다섯 단계 중에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좌표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생각은 그 다음에 하는 것이다. 핸들을 놓친 사람은 운전할 수 없다. 좌표를 놓친 사람은 생각할 수 없다. 수동적인 반응은 할 수 있어도 능동적인 생각은 할 수 없다. 소 발에 쥐잡기로 우연히 답을 찾을 수는 있어도 단계적으로 범위를 좁혀가는 체계적인 생각은 할 수 없다.
세상은 깔때기와, 지렛대와, 도마와, 칼과, 재료가 있을 뿐이다. 더 복잡한 것도 없고 더 단순한 것도 없다. 지구본, 지도, 갈림길, 길, 집이 있다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 단 집에서 길을 찾지말고 길에서 집을 찾아야 한다. 길에서 지도를 찾지말고 지도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깔때기와 지렛대는 에너지 방향이 다르다. 모르면 의도와 반대로 되는게 역설이다. 인간은 역설에 깨지고 이중의 역설에 구원받는다. 역설을 모르고 덤비는 것은 필부의 용맹이고, 역설을 알고 망설이는 것은 소인배의 비겁이다. 이중의 역설로 극복하는 것이 지사의 의리다.
깔때기를 먼저 만들어 놓고, 깔때기 내부에 지렛대를 설치하고, 지렛대에 도마를 설치하고, 칼과 재료를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계획이 없이 상대의 행동을 받아치려고 하므로 반대로 간다. 재료를 보고 칼을 꺼낸다. 칼을 휘두르다 막히면 도마를 찾는다.
수순이 틀리므로 역설에 깨진다. 칼을 휘두르다 지렛대에 깨지고 지렛대 쓰려다가 깔때기에 갇힌다. 운으로 이기려다 속임수에 당하고 속임수로 이기려다가 하우스에 당한다. 결국 돈은 게임의 주최측이 번다. 시간이 걸려도 동료와 힘을 합쳐 커다란 하우스를 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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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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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소중한 것과,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있다. 세 가지가 겹치는 것을 해야 한다. 소중한 것이 논리라면 좋아하는 것은 심리, 잘하는 것은 물리다. 처음에는 소중한 것을 하려다가, 중간에 좋아하는 것으로 빠졌다가, 막판에는 잘하는 것을 하게 된다.
1. 소중한 것은 논리.. 가치관 정립.. 좋은 팀에 들어야 한다.
2. 좋아하는 것은 심리.. 에너지 결집.. 상호작용을 증대해야 한다.
3. 잘하는 것은 물리.. 리스크 회피.. 무모한 도박을 삼가야 한다.
초딩은 논리, 중딩은 심리, 결국은 물리다. 바둑의 포석은 논리를 따르고, 중반 전투는 심리를 따르고, 막판 끝내기는 물리를 따른다. 인간은 다른 길이 막혀서 그 길로 가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말이 많지만 대개 처세술 책장사들이 독자들에게 아부하는 말이다.
초딩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피하는 법을 배우고, 중딩은 하고자 하는 일에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방법을 배우고, 막판에는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을 배운다.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자신을 보이지 않는 깔때기에 가두는 것이다. 위대한 천재들은 이 방법으로 성공했다.
소중한 것은 집단과의 연결이다. 인생은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가에서 결판난다. 그 다음은 확률의 증대다.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상호작용 증대다. 고립을 피하고, 대세의 흐름을 파악하고, 변화를 따라잡아야 한다. 그러다가 호랑이 등에 올라타서 영웅이 되거나 혹은 죽는다.
변화 거부는 반역이다. 고립되므로 변화를 거부하게 되고 변화를 거부하므로 고립된다. 소중한 것을 잃는다. 밑바닥 경험을 쌓고 올라가야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 시험 한 번 잘 쳐서 낙하산 타고 떨어지므로 집단의 중심과 연결이 끊어져 타락한다. 엘리트가 민중과 단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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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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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역설이다. 의도와 반대로 된다. 역설이 인간을 당황하게 한다. 좌절하여 타락하게 된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다. 얻으면 잃고 잃으면 얻는다. 살면 죽고 죽으면 산다. 도덕경을 잘못 배우면 허무주의에 빠진다.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나아가지 못한다.
극복할 수 있다. 역설은 지렛대다. 지렛대는 반대로 움직인다. 그러나 인간은 지렛대를 장악할 수 있다. 지렛대는 반대로 움직이지만 가위는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렛대 두 개를 대칭시킨 것이 가위다. 놀부처럼 반대로 움직이지만 두 명을 경쟁시키면 된다.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지만 오류시정으로 거듭날 수 있다. 역설의 극복은 지렛대 구조를 가위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유체를 닫힌계에 가두고 압박하면 강체가 된다. 경쟁자를 붙여서 지들끼리 싸우게 만들면 얌전해진다.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다.
역설에 당황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고 허무주의와 회의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지렛대를 빼앗기면 당연히 의심해야 한다. 내가 지렛대를 장악하면 믿을 수 있다. 인간들이 다투는 일이 목적달성이 아니라 지렛대 싸움이라는 본질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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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왓장을 때리면 손만 아프다. 그러나 세게 때리면 기왓장이 깨진다. 노자의 도덕경은 뭐든 반대로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하라고만 말했을 뿐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역설을 어설프게 알면 위태롭다는 것이 역설의 역설이다.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돌려대라. 예수의 역설이다. 역설을 실천한 사람은 예수, 오자, 소진, 장의, 한비자, 마키아벨리다. 모두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말로가 좋지 못했다. 자객에 맞아죽고 임금한테 배반당했다. 도덕경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역설은 도구다. 도구로 문제를 해결하면 또다른 문제를 만든다. 조금 알면서 아는 척 하면 큰 코를 다친다. 역설의 역설까지 나아가야 한다. 역시 망치와 모루다. 지혜가 망치라면 세력은 모루다. 개인의 지혜만으로 안 되고 세력의 힘이 뒤를 받쳐야 성공한다.
역설은 지렛대다. 지렛대는 도구다. 도구로 이기면 상대가 승복하지 않는다. 속임수를 썼다며 반발한다. 총을 쏘면 화를 낸다. 숨어서 총질하다니 비겁하다. 사나이답게 들판에서 칼로 용맹을 겨루자. 총을 대량생산해야 총의 시대가 왔음을 깨닫고 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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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사상, 주역사상, 법가주의, 마키아벨리즘이 모두 위험하다. 바보의 손에 들어가면 의도와 반대로 된다. 지휘관은 당연히 병법을 구사해야 하지만 말단 병사가 제갈량의 꾀를 내면 피곤하다. 노자 도덕경은 원래 제왕을 위한 통치술이다. 바보한테는 해롭다.
뭐든 안전장치가 필요하고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밑밥을 뿌리고 미끼를 던져야 한다. 내가 먼저 요충지를 차지하고 교두보를 확보하고 안전판을 마련하면 된다. 망치를 휘두르기 앞서 모루를 받쳐놓으면 된다. 고백하기에 앞서 경쟁자를 붙여 격동시키면 된다.
병법이 기사도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 모두가 병법을 쓰게 된다. 병법이 대세가 되고 규칙이 된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춘추시절만 해도 전쟁의 규모가 수천 단위로 작았기에 송양지인의 삽질이 등장한 것이다.
역설의 파훼법은 반대편에 먼저 조치하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핸들 꺾으려면 왼쪽 깜박이를 넣어야 한다. 망치를 휘두르기 전에 모루를 먼저 받치는 것이다. 지렛대 두 개를 사용하여 양쪽에서 압박하면 된다. 양면전쟁과 같다. 양쪽에서 걸어잠으면 닫힌계다.
양쪽에서 협공하면 상대의 의사결정을 방해하므로 두 배가 아니라 열 배의 힘이 있다. 한신이 정형전투에서 3만의 적은 병력으로 진여의 20만 대군을 칠 때 늙은 병사들로 배수진을 쳐서 적을 유인하고 한편으로는 날랜 기병을 보내 본진을 습격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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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을 극복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어설프게 도구를 쓰다가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 도구로 흥하고 도구로 망한다. 일회성의 도구가 아닌 시스템으로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총을 한 방 쏘면 자객의 살인도구이지만 만 방을 쏘면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역설을 실천했던 예수, 오자, 소진, 장의, 한비자, 마키아벨리는 대부분 말로가 아름답지 못했는데 사후에 재평가를 받았다. 그들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졌다.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닫힌사회에서 열린사회로 바뀌었다. 작은 사회는 역설이 먹히지 않는다.
춘추시절에는 기사도가 중요했는데 전쟁이 십만명 단위로 커지자 너죽고 나죽기로 되어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황이 되어 재평가 받은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시골 동네에서 먹히지 않는데 로마제국으로 판이 커지자 가르침이 먹혔다.
1. 작은 사회(정설) - 열린 사회(역설) - 더 큰 닫힌사회(역설의 역설)
2. 단기전은 선빵이 이긴다(정설) - 장기전은 공세종말점에서 막힌다(역설) - 더 큰 장기전은 외교술로 미국을 끌어들이면 이긴다.(역설의 역설)
당나라가 힘으로 이기는게 정설이다. 고구려의 청야작전에 막히는건 역설이다. 중간 보급기지를 만들고 신라를 끌어들여 협공하는게 역설의 역설이다. 임진왜란도 양차 세계대전도 전쟁이 장기화 되어 외교로 승부가 났다. 판이 커지면 이길 나라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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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 이용당한다. 영리한 자는 세력있는 자에 당한다. 종횡가의 소진과 장의는 군주 한 사람을 설득했기 때문에 말로가 좋지 못했다. 마키아벨리와 한비자도 마찬가지다. 천하를 설득해야 한다. 이들이 재평가 받은 이유는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지렛대의 지렛대다. 사람은 지렛대를 이용하지만 천하는 그 사람을 지렛대로 이용한다. 지렛대로 약자를 이길 수 있지만 강자 앞에서는 역효과가 난다. 약자를 속여 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강자를 속여봤자 신용을 잃을 뿐이다. 패러다임이라야 한다.
역설을 알면 한 몸을 지킬 수 있다. 패러다임을 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논리는 한 명을 설득하는 기술이다. 심리는 집단을 움직이는 지렛대를 만드는 기술이다. 물리로 완전해진다. 칼은 지렛대다. 무른 것을 쉽게 자르지만 굳센 것을 베려다가 손을 다친다.
칼에 칼을 더하면 가위다. 작두나 펜치는 날이 두 개인 점에서 가위와 같다. 작두는 굳센 것을 자르고 펜치는 철사도 자른다. 손을 다치지 않는다. 도구에 도구를 설치하여 역설의 리스크를 극복헤야 한다. 한 번 때리면 역효과 나지만 두 번 때리면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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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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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은 시행착오를 일으킨다. 오류시정으로 해결한다.
지렛대는 반대로 움직인다. 지렛대 둘을 연결하여 가위로 만들면 해결된다.
역설은 의도와 반대로 된다. 반대쪽에 미리 조치하면 해결된다.
역설은 반대로 된다. 늑대 한 마리가 반대쪽으로 돌아가서 길목을 지키면 해결된다.
역설은 반대로 된다. 군대를 둘로 나누어 망치와 모루 작전으로 양면전쟁을 만들면 해결된다.
역설은 반대로 된다. 유체를 닫힌계에 가두고 압박하여 강체로 만들면 해결된다.
역설은 반대로 된다. 극단의 법칙을 써서 천하대란을 일으키고 갈데까지 가면 해결된다.
역설은 반대로 된다. 청야작전을 써서 공세종말점까지 적을 달고 오면 해결된다.
연인의 마음은 뜻대로 안 된다. 경쟁자를 붙여서 격동시키면 해결된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은 유체다. 닫힌계에 가둬 강체로 바꾸면 해결된다.
반대로 되는 것은 부분이다. 부분을 연결하여 패러다임을 만들면 극복된다. 악은 잘게 쪼개서 부분을 이겨먹는다. 국지전, 제한전, 단기전을 시도한다. 선은 부분을 연결하여 전체를 완성하는 방법으로 이기지만 많은 시간이 걸린다. 장기전, 전면전, 무제한전으로 이겨야 한다.
세상은 뜻대로 안 되지만 뜻대로 되게 만들 수 있다. 단 장기전, 전면전, 무제한전을 해야 한다. 고수들은 안다. 미리 길목을 차지하고 함정을 파고 유인하여 뜻을 이룬다. 하수는 자신이 원해서 그 길로 간다고 믿지만 미끼를 물었다. 반대쪽을 틀어막고 이쪽을 열어두면 낚인다.
영웅은 막힌 쪽을 뚫고, 종심을 타격하고, 사방을 에워싸서 압도적으로 이긴다. 하수는 강으로 약을 치지만 고수는 약으로 위장한 유로 고립된 강을 쳐서 이긴다. 테베가 스파르타를 깬 레욱트라 전투가 유명하다. 일점을 돌파하여 부분적인 우위를 달성하고 이를 전면화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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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있는데 별도로 지혜가 필요한 이유는 인생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의도와 반대로 된다. 공은 발로 차면 되는데 길고양이는 붙잡아놓고 치료해야 한다. 붙잡지 않고 건드리므로 역설에 깨진다. 샅바도 안 잡고 씨름을 이기려고 한다.
아는 것은 지식이고 행하는 것은 지혜다. 행하기 앞서 먼저 판을 고르고 그라운드를 점검해야 한다. 이 부분은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해결해야 하므로 지식으로 주입하기 어렵다. 아는 것은 도구다. 도구의 운전기술이 지혜다. 지식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지식은 공간이고 지혜는 시간이다. 시간은 단계적 접근이다. 바둑이라면 수순이다. 포석, 행마, 끝내기의 3단계가 있다. 포석은 미리 요충지를 차지하고, 행마는 적을 달고 가면서 키워서 먹고, 끝내기는 방해자를 제거한다. 장기전, 무제한전, 전면전에 승리한다.
포석 - 미리 요충지를 차지한다.
행마 - 장기전으로 몰고가서 적을 키워서 먹는다.
끝내기 - 방해자를 제거하여 리스크를 감소시키는 마이너스를 구사한다.
단번에 이기면 적이 승복하지 않아 전쟁이 재발하므로 장기전에서 확실히 이겨야 한다. 단기전의 승리에 취해 만만한 곳만 때리다가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진다. 포석과 행마는 이득을 얻는 플러스지만 끝내기는 리스크를 줄이는 마이너스라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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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하나만 잡으면 적이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고 반대로 불씨가 하나만 살아있어도 산불이 재발할 수 있다. 공격하려면 패러다임을 뒤집어야 하고 반대로 방어하려면 패러다임으로 막아야 한다. 전부 연결하여 한 덩어리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적은 전부 이기지 못하므로 포기한다.
뜻대로 된다고 믿는 사람은 초딩이다. 초딩은 선이 악을 이긴다고 믿는다. 사실이지 초딩에게 역설을 가르치기는 어렵다. 그냥 착한 아이한테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준다고 말하는게 맞다. 아기는 가족이라는 집단을 믿고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은 집단이다. 집단이 개인에 앞선다.
중딩이 되면 까져서 반항한다. 이때 역설을 경험하게 된다. 재미들려서 나쁜 짓을 한다. 악이 승리하는 장면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악은 권력이다. 권력은 집단을 장악한다. 집단을 장악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이 없으므로 집단을 잘게 쪼개서 장악하려는 행동이 악행이다.
악은 쪼개서 이긴다. 패러다임은 쪼개지 못하게 전부 연결한다. 전체가 부분을 이긴다. 이겨도 패러다임으로 이겨야 결과에 승복한다. 항우가 전투에 이겼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지 못하고 봉건제로 돌아갔다. 유방이 뛰어난 외교술로 군국제라는 패러다임을 만들어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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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을 맞는 것은 선이다. 70퍼센트가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집단면역에 도달하므로 백신을 안 맞아도 된다. 백신을 안 맞고 버틴 자가 이긴다. 반칙하는 자가 이긴다. 얌체가 이기는 것을 봤으므로 이제는 모두가 백신을 안맞고 버틴다. 그 사회는 멸망한다.
백신을 안 맞는 부작위 방법으로 작위하여 집단에 리스크를 부담시킨 얌체들에게는 불이익을 줘야 한다. 의도적인 부작위는 작위다. 작위에 대해서는 응징이 따라야 한다. 사회에는 언제나 얌체가 있고 건강한 사회는 얌체를 손보는 시스템을 가져야 한다.
역사가 직선으로 가지 않고 갈짓자로 가는 이유다. 얌체를 손 보고 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얌체짓을 드러내는 언어가 없는게 문제다. 무임승차, 모럴 해저드, 공유지의 비극, 책임전가, 기회주의 등이 알려져 있지만 애매한 말이라서 타격감이 약하다.
보수주의는 얌체주의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무리한 도박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후과에 대해서는 나몰라라다. 청구서는 뒤늦게 날아온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알고 삽질을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