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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어휘 연구] 63. 거룩함(Holy)의 의미와 피조물 감정 | 남대극 교수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다시 '에스라넷 나무 강단' 성경 어휘 연구를 계속하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어휘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어휘를 연구하는 목적은 올바른 신학을 수립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학은 모두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단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신학의 기초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 어휘가 지닌 의미를 하나씩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경 어휘 연구 63번째 시간으로 '거룩함'의 의미를 함께 살펴봅니다.
'거룩함'은 아주 중요한 개념인데, 이 거룩함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는 성경을 우리가 깊이 연구하지 않고는 그냥 쉽게 알아맞힐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거룩함에 대해 우리가 개별적으로 연구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독일의 한 학자가 거룩함에 대하여 남다른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했습니다. 그는 비단 성경 종교뿐만 아니라 여타의 다른 종교에서도 이 거룩함이 지닌 의미를 파악하고, 성경 종교와의 공통점을 아주 깊이 연구하여 명확히 밝혀낸 책을 냈습니다. 그 저자와 책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분야를 연구한 학자는 바로 '루돌프 오토(Rudolf Otto)'라는 분입니다. 루돌프 오토는 독일에서 신학을 강의한 교수였는데, 1917년부터 강의를 이어오며 1910년대에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습니다. 특히 동양 종교에서 말하는 거룩함이 무엇인가를 깊이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성경 종교와의 공통점을 찾아가면서 낸 책이 바로 《다스 하일리에(Das Heilige)》라는 책입니다. 그가 독일 학자이기에 독일어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번역하면 '신적인 것에 서의 비이성적인 요소와, 그 비이성적인 요소가 지닌 이성적인 것 사이의 관계에 관한 연구'인데 표현이 좀 어렵습니다. 신적인 영역에는 인간의 합리적인 지성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초이성적인) 요소'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유한한 이성을 초월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즉, 신적인 존재와 인간적인 존재 사이에 결코 넘나들 수 없는 거대한 본질적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 특징이 바로 '거룩함'이라는 것입니다.
독일어 초판본은 1917년에 출간되었는데, 100년이 훨씬 넘은 고서라 장정이 옛 스럽습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몇 년 만에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영어 번역본의 제목은 《The Idea of the Holy(거룩함의 관념)》입니다. '거룩함이라는 사상과 관념이 무엇인가'라는 뜻입니다. 독일어판이 출판된 지 약 70년이 흐른 뒤에는 한국어 번역판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한국어판은 영어 제목의 뉘앙스를 가미하여 《성스러움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분도출판사에서 나왔으며, 길희성 교수가 번역했습니다.
이 책이 핵심적으로 다루는 바가 바로 '거룩함'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닌 공통적인 개념으로서의 성스러움이 무엇인지를 이 책에 담긴 내용을 통해 짧은 시간 동안 간추려 말씀드리고, 나아가 우리 신앙 안에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거룩함의 어원적 의미를 파외치면 '구분, 구별, 그리고 따로 떼어놓음'입니다. 여러 개의 평범한 물건들 중에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하나를 따로 딱 떼어놓는 구별 상태가 바로 거룩함입니다. 구별된 것이 곧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하게 한다(Make holy)'라는 동사적 의미에는 분리시키다(Separate), 성별하다(Consecrate)라는 뜻이 들어있어,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하여 따로 떼어놓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의미에 기초하여, 루돌프 오토가 그의 명저 《성스러움의 의미》에서 밝혀낸 거룩함의 속성을 간추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거룩함은 '누미노제(Numinose, 신령함·신성함)'입니다. '누미노제'란 우리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신령한 실재를 뜻합니다. 루돌프 오토가 동양 종교와 서양 종교를 두루 연구하며 발견한 거룩함의 첫 번째 특징이 바로 이 신령한 실재의 임재입니다. 둘째, '피조물 감정(Creature-feeling)'을 일으킵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선 피조물인 인간이 마음 깊은 곳에서 느끼는 절대적인 유한성과 종속성의 감정입니다. 거룩한 신성 앞에 섰을 때 인간은 "아, 나는 지극히 작고 기이한 피조물이구나" 하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셋째, 거룩함은 '미스테리움 트레멘둠(Mysterium Tremendum, 장엄한 신비)'이자 '파시난스(Fascinans, 매혹적인 인력)'라는 양면적 특성을 지닙니다. 이 오묘하고 장엄한 신비의 속성을 구체적으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은 구체적 요소로 나뉩니다.
두려움을 자아내는 장엄한 요소(Mysterium Tremendum): 거룩함은 인간을 압도하는 절대적인 장엄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 거룩한 신성과 마주할 때, 경외심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인류가 신성 앞에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입니다.
압도적인 위엄과 권능: 지체 높은 존재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인간은 스스로 왜소해짐을 느끼며 그 절대적인 위엄에 압도당합니다.
거룩한 긴박감(에너지): 신성의 임재는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영적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과거 모세가 호렙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를 보았을 때, 불꽃이 활활 타오르나 떨기나무가 타서 사라지지 않는 신비로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모세는 그 타오르는 신성의 에너지에 압도되어 "저것이 무엇인가" 하는 강한 영적 긴박감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고 엄숙히 명하셨습니다. 신성의 임재가 자아내는 영적 긴박감입니다.
전적 타자(Wholly Other)로서의 신비: 거룩함은 인간의 영역과 완벽히 구별되는 '전적 타자'의 느낌을 줍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본질적으로 완벽히 다르신 분입니다. 우리가 인종이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사람 앞에 서면 눈, 코, 입이 있는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분이심을 직감하며 엄숙한 신비를 느끼게 됩니다.
매혹적인 인력(Fascinans): 거룩함은 인간에게 거룩한 두려움을 자아내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아 끌어당기는 거부할 수 없는 '신비로운 매력과 영적 인력'을 발산합니다.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온전히 이끌리는 매혹의 속성입니다.
신령한 가치로서의 성스러움: 인간의 가치를 초월하는 영원하고 고상한 신령한 가치가 거룩함 속에 들어있습니다.
루돌프 오토는 거룩함이 지닌 이러한 다채로운 특성들을 책에 아주 명쾌하게 정립해 두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연구입니다. 우리는 그가 평생 연구해 놓은 위대한 학문적 결과물을 손쉽게 누리는 특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상의 거룩함에 대한 속성들을 한마디로 종합하여 요약하자면, 거룩함이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피조물 감정의 총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그분은 창조주이시기에, 그 절대적인 신성 앞에서 위엄에 압도되기도 하고, 동시에 강렬한 매력을 느끼며 거룩한 긴박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거룩함'은 본래 창조주 하나님만이 지니고 계시는 고유한 본질적 특질이며, 피조물인 인간은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고 오직 창조주로부터 그 거룩함을 나누어(분여) 받을 때만 제한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특성입니다. 인간에게는 스스로 우러나오는 거룩함이 전혀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모세의 출애굽기 3장 사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임재가 임했기에 그 땅이 거룩해진 것입니다. 불꽃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 앞에 다가올 때 왜 신을 벗으라고 하셨을까요? 인간이 신고 다니는 신발은 세상의 온갖 더러운 때와 먼지가 묻어있는 세속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속되고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함부로 나아갈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교훈하신 대목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을 살피고 더러움과 죄악을 씻어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 즉 하나님의 면전(Before God)은 지극히 거룩한 성소(Sanctuary)입니다. 세상의 위대하고 높은 왕이나 존귀한 자 앞에 섰을 때 우리가 "왕의 전전(殿前)에 섰다"고 경외심을 표현하듯,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 앞에서는 마땅히 발에서 신을 벗어 우리 심성을 깨끗하게 성별해야 합니다. 여기서 신을 벗으라는 영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세속적 더러움을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지상 생애를 살아가며 우리 영혼과 육신에 묻은 '물리적·영적 때와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내라는 뜻입니다.
마음에 가득 찬 탐욕과 정욕이라는 '세속적 욕망의 티끌과 지내(塵埃)'를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전전 앞에서 나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게 만드는 '교만의 티끌'을 내버리고 온전히 겸손하라는 뜻입니다.
이기주의와 물질주의의 먼지로 오염된 '영적 안목'을 청결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신발로 상징되는 이 모든 티끌과 먼지를 다 제거하고 정결하게 정돈하여 주님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세척과 세독이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갈 때 단지 외형적인 의복만 깨끗하게 입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보혈의 은혜로 마음의 신발을 벗어 심령을 깨끗하게 성별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경 원어인 헬라어나 영어로 이 대목을 읽어보면 "Take off your shoes(네 신들을 벗어라)"고 하여 명백한 복수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말은 단수와 복수의 구분이 다소 모호하지만, 성경은 명확히 양쪽 발의 신발을 '모두 다' 벗으라고 명합니다. 한쪽 신발만 벗고 한쪽은 걸치고 있어서는 안 되며, 온전히 다 벗어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전공했던 독일 문학의 한 교과서에 나오는 재미있으면서도 깊은 영적 교훈을 주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과거 영국의 한 작은 도시에 목조 구조로 지어진 2층짜리 연립 주택이 있었습니다. 1층에도 세입자가 살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2층에도 한 세대가 살고 있었습니다. 2층에 살던 남자는 건축 공사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막노동꾼이었습니다. 그는 저녁마다 작업을 마친 뒤 동료들과 함께 "오늘 고생했다, 시원하게 한잔하자"며 매일 술집에 가서 진탕 술을 마셨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삼켜 버리듯, 그는 매일 밤 11시쯤 곤드레만드레 취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에게는 이웃들을 무척 괴롭히는 고약한 습관이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목조 주택 계단을 올라올 때 조용히 걸어오지 않고, 그 무겁고 두꺼운 구둣발로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계단을 밟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올라왔습니다. 밤 11시면 1층 주민들이 다 잠자리에 들어 깊은 잠을 청할 시간인데, 매일 밤 이 남자가 쿵쾅거리며 올라오는 통에 온 이웃이 잠에서 깨기 일쑤였습니다. 더욱이 이 남자는 자기 집 문 앞에 다다르면, 그 흙 묻은 무겁고 두터운 군화 구두를 벗어서 문 옆의 목조 벽을 향해 쾅 던졌습니다. 그러면 벽을 타고 "쾅!" 하는 굉음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반대쪽 신발도 벗어 던지며 "쾅!" 하고 또 한 번 소리를 냈습니다.
1층에 살던 이웃들은 매일 밤 이 남자가 계단을 올라와 구두를 벽에 던지는 "쾅! 쾅!" 하는 두 번의 소리를 들은 후에야, '아, 이제 구두를 다 던졌으니 상황이 끝났구나' 하고 비로소 안심하며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고약한 소동이 매일 반복되자 참다못한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반상회를 열었습니다. "2층 양반 때문에 매일 밤 잠을 설쳐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 대책을 세우자" 하여, 다음 날 아침 공동체 대표가 그 남자를 찾아가 강력한 경고장을 전달했습니다. "당신이 매일 밤 술 취해 들어와 무거운 신발을 벽에 쾅쾅 던지는 통에 온 이웃이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오. 내일부터 한 번만 더 밤에 신발 던지는 소리를 내면 이 주택에서 강제로 쫓아낼 줄 아시오."
아침에 깨어 경고장을 받은 남자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아, 내가 이웃들에게 큰 민폐를 끼쳤구나. 오늘은 절대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계단도 살금살금 걷고 절대로 다른 사람의 잠을 깨우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하루 종일 조심스럽게 일을 했습니다. 저녁에 일을 마친 후 동료들이 또 한잔하러 가자고 유혹했지만, 남자는 "나 오늘 술 마시면 집에서 쫓겨난다"며 거절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끌려가 자리에 앉게 되었고, 한잔 두 잔 받아 마시다 보니 아침의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또다시 만취해 버렸습니다.
밤 12시가 다 되어 인사불성이 된 채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술김에도 어렴풋이 경고장이 생각나서 삐걱거리는 목조 계단을 나름대로 조심조심 소리 안 나게 밟으며 2층 자기 집 문 앞까지 무사히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무의식중에 늘 하던 버릇대로 구두 한쪽을 휙 벗어서 벽에 던져 버렸습니다. 벽을 타고 "쾅!" 하고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신발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남자는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며 아차 싶었습니다. '아차, 내가 또 신발을 던졌구나! 이제 이웃들에게 들켰으니 나는 쫓겨나겠구나!' 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남자는 가슴이 가슴을 졸이며, 나머지 한쪽 구두는 소리가 전혀 나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살짝 벗어서 손으로 가만히 쥐고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1층 이웃들에게 발생했습니다. 1층 주민들은 2층 남자가 계단을 올라와 늘 하던 대로 첫 번째 신발을 벽에 던지는 "쾅!"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웃들은 일제히 잠에서 깨어 신경을 곤두세우며 다음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첫 번째 신발을 던졌으니, 이제 곧 두 번째 신발도 던지겠구나. 그 두 번째 소리까지 나야 상황이 끝나니 어서 던져라' 하고 침대에 누워 두 번째 소리를 애타게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두 번째 "쾅" 소리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밤 12시 반이 지나고, 새벽 1시가 되고, 새벽 2시가 지나도 두 번째 신발 던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1층 주민들은 밤새도록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영적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교회 안에서 신앙의 공동체 생활을 할 때, 한쪽 신발만 벗고 한쪽 신발은 세속에 그대로 걸친 채 반만 교회 안으로 들어와 살아가는 교우들이 참 많습니다. 한쪽 발은 온전히 주님께 드렸으나 한쪽 발은 여전히 세상의 정욕과 물질주의의 신발을 신은 채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형태입니다. 이러한 어정쩡한 신앙 상태는 주변의 성도들을 무척 불편하게 만들고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의 심령을 참으로 괴롭고 애타게 만듭니다. 우리는 세속에 빠져있는 두 쪽 신발을 완전히 다 벗어 던지고, 온전한 맨발로 하나님의 거룩한 땅 위에 당당히 들어와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혼이 살고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화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양쪽 신발을 모두 다 완전히 벗어버리고 거룩한 임재 앞으로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 강의를 준비하면서 제 서재에 있는 거룩함에 관한 유수한 신학 서적들을 고찰해 보았습니다. 앤드루 머레이(Andrew Murray)가 쓴 명저 《거룩함(Holiness)》을 비롯하여, 성과 속의 이분법적 종교 본질을 깊이 파헤친 엘리아데의 《성과 속》,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영적 가치인 거룩함을 일깨워주는 《망각된 축복》 등 참 좋은 책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가운데 이 거룩함의 가치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일깨워주는 이들이 늘 존재해야 합니다.)
또한 도널드 블로쉬(Donald Bloesch)라는 세계적인 신학자가 쓴 《권능, 지혜, 거룩함과 사랑》이라는 신학 서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랑, 그리고 진노의 본질을 아주 감동적인 문구로 묘사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도덕적 죄악을 결코 용납하거나 감내하실 수 없는 그분의 철저하고 엄밀한 성결(聖潔)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그 죄악을 저지른 비참한 죄인을 향해 아낌없이 펼치시는 따뜻한 구원의 포옹이다. 그분의 거룩하심은 부정하고 모독적인 죄의 실재와 결코 함께 공존할 수 없어 완벽히 분리되시나, 그분의 사랑은 그 부정한 죄인들을 구원하여 돕기 위해 그들의 비참한 수준으로 내려와 죄인들과 자신을 완벽하게 동일시(Identify) 하신다. 그러므로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공의의 법에 따른 일시적인 처방이나, 죄인을 향한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다."
참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안타까운 구원의 심정을 훌륭하게 묘사한 대목입니다. 왜 죄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가 발생합니까? 인간이 죄 가운데 머물며 거룩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동일시하사 건져내십니다.
오늘 제가 강조해 드리는 이 '거룩함'은 성경 종교의 가장 핵심적인 정수이자 심장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배우고 고백하는 거룩함의 가치는 성경의 전체 정신을 관통하는 지존의 개념입니다. 이 거룩함의 구체적인 성경적 본질과 원리에 대해서는 다음 64번째 강의 시간에 성경 본문들을 가득 열거하며 더욱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토록 중요한 성경 종교의 핵심인 '거룩함'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 루돌프 오토의 명저를 빌려 아주 압축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거룩함이란 본래 창조주만의 고유한 속성이며, 피조물인 인간이 그 절대적인 신성의 존전 앞에서 느끼는 거룩한 경외심과 압도감, 그리고 이끌림의 총체인 '피조물 감정'입니다. 이 영적인 인식을 마음에 명확히 새기시고, 세속의 더러운 두 쪽 신발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정결한 맨발로 주님의 성소 앞으로 소망의 발걸음을 옮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구원을 얻어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이 거룩함의 회복에 맞닿아 있습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거룩함의 가치를 날마다 마음에 깨우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거룩함의 의미에 대한 강의를 여기에서 마치고, 다음 시간에 성경 종교의 핵심인 거룩함에 대한 깊이 있는 본문 연구를 이어가겠습니다. 다음 시간까지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 정리
거룩함(Holy)의 어원적 정의와 본질
거룩함의 가장 기초적인 어원적 의미는 '구분, 구별, 그리고 특별한 목적을 위해 따로 떼어놓음'입니다(Make holy / Consecrate).
거룩함은 본래 창조주 하나님만이 지니고 계시는 고유한 신성적 특질이며, 피조물인 인간은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고 오직 창조주의 거룩함을 나누어 받을 때만 제한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전적인 신적 속성입니다.
루돌프 오토의 《성스러움의 의미》와 '피조물 감정'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는 거룩함을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신령한 실재인 '누미노제(Numinose)'로 정의했습니다. 거룩함은 절대적인 위엄과 장엄한 신비로 인간에게 거룩한 공포와 두려움을 자아내는 '미스테리움 트레멘둠(Mysterium Tremendum)'의 속성과, 동시에 인간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아 끌어당기는 '파시난스(Fascinans, 매혹적인 인력)'의 양면성을 지닙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유한한 인간이 절대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느끼는 경외심과 압도감의 총체인 '피조물 감정(Creature-feeling)'이 곧 거룩함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영적 인식입니다.
신발을 벗으라는 영적 의미와 성도의 자세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신 명령(출 3:5)은, 속되고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성소)에 나아갈 때 세상의 더러운 죄악과 교만, 이기주의와 물질주의라는 '세속의 먼지와 때'를 완전히 세척하고 정결하게 성별해야 함을 뜻합니다.
헬라어와 영어로 '신들(Shoes)'이 복수형으로 쓰였듯, 독일의 목조 주택 술주정뱅이 우화 속 한 쪽 구두만 던져 이웃의 밤잠을 설치게 한 비극처럼 신앙인은 한쪽 발은 교회에, 한쪽 발은 세상에 걸치는 어정쩡한 종교적 타협을 버리고, 양쪽 신발을 모두 다 온전히 벗어 던진 정결한 맨발로 거룩한 주님의 임재 앞에 합당하게 나아가야 합니다(에 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