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도에서 오동나무가 사라진 것은 고려 때 ‘요승(妖僧)’으로 불렸던 신돈이 오동도에 봉황이 날아드는 것을 막기 위해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이야기가 현재까지도 여수 지역에 전해지고 있다.
고려 말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왕의 스승이 되었던 신돈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신돈은 특히 공민왕의 신임이 두터워 항상 가까이서 공민왕을 보필하였다. 하루는 풍수설에 능통했던 신돈이 전라남도 땅을 돌아보다가 우연히 여수의 오동도를 지나게 되었다. 신돈의 일행이 오동도에 들어설 때 한 줄기의 빛이 홀연히 오동도를 빠져나갔다. 찰나의 일이라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정도였는데, 갑자기 신돈이 “아~”하는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서둘러 배를 돌려 왕이 계신 개경으로 돌아갔다.
며칠을 쉬지 않고 달려 온 신돈은 개경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공민왕을 찾아가 말했다. “폐하, 전라도에는 오동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그곳의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려야 합니다.”라고 했다. 영문을 알 수 없던 공민왕이 무슨 연유인지 궁금해하자 신돈은 “고려의 국운이 기운다는 소문이 돌아 풍수를 살피러 전라남도 땅에 다녀왔습니다. 그러다가 오동도를 가는 길에 놀라운 일을 목격했습니다.” 답답함을 느낀 공민왕이 이야기를 재촉했다. “소신이 오동도에 도착했을 때 오동나무 숲에서 한 줄기 빛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봉황이었습니다.”라고 했다.
공민왕은 봉황이 나타난 것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신돈은 “전라도의 ‘전’자는 사람 ‘인(人)’ 밑에 임금 ‘왕(王)자’를 쓰는데, 전라도의 오동도에서 봉황이 드나든다는 것은 고려 왕조를 이을 인물이 전라도에서 나올 징조로 보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신돈은 해결할 방법이 있다며, 전라도의 ‘전’자를 사람 인(人)자가 아닌 들 입(入)자로 바꾸고, 오동나무 열매를 좋아하는 봉황이 오동도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면 된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리하여 전라도의 ‘전’자가 바뀌고, 오동도의 모든 오동나무가 베어졌다고 한다.
풍수지리에 능한 신돈이 오동나무를 제거한 것은 임금을 상징하는 봉황이 오동도에 날아들자 이곳에서 나타날 왕에 의해 새로운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이다. 즉 신돈은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고려 말의 현실적 상황이 풍수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식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오동나무를 벌목하고 지명의 한자를 바꾼 것이다. 그러나 신돈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전라도 출신의 전주 이씨인 이성계에 의해 망하고 말았다.
출처 : 지역N문화
◆ 신돈 : 신돈은 영산(靈山) 사람으로 이름은 편조(遍照)이며 자는 요공(耀空)이다. 공민왕이 청한거사라(淸閑居士)는 법호를 내린 바 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어머니는 옥천사(玉泉寺)의 비였다. 아버지가 다른 동생 강성을(姜成乙)이 있었다.
신돈은 공민왕에 의해 발탁되어 왕권에 버금갈 정도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공민왕대 중엽 이후 급성장한 무장세력 및 세족들을 숙청하고 정치·사회적 개혁을 단행했다. 결국 공민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그의 집권기 동안 이루어졌던 개혁들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이후에 조선 건국 과정을 주도한 신흥유신들의 정치세력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