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월출산으로 1.. (광주를 지나며)
‘월출산(月出山) 높다더니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황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니, 두어라 해 펴진 후면 안개 아니 거두리’...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가 산중신곡(山中新曲)에서 남긴 글이다. 정리해보면 ‘월출산이 높아서 좋더니마는 안개가 꽉 끼어 가장 높은 천황봉을 전면이 가려 버렸구나. 그러나 실망할 것이 없다. 해가 돋아 햇살이 퍼지게 되면 안개가 걷히고 말 것이 아닌가? 윤선도가 당쟁에 휘말려 보길도로 유배를 가던 길에 월출산을 보면서 읊은 시(詩)다. 윤선도는 월출산을 왕으로, 간신(奸臣)들을 안개에 비유하며 원망하는 내용이다.
조선중기의 문신(文臣)인 尹善道... 경사(經史)에 해박하고 시문학(詩文學), 음악, 의약(醫藥), 복서(卜書), 음양(陰陽), 지리 등 많은 분야에 다재다능한 그는 훌륭한 가문과 효종(孝宗)의 사부(師父)로 출세가도가 밝았다. 하지만 송시열, 송준길 등 서인과 대립으로 정치생활보다는 유배생활이 더 많았다. 유배생활 중 산중신곡, 어부사시사. 약화제(藥和劑) 등 많은 작품을 저술하였다. 그의 저술은 정철, 정약용과 비견(比肩)되고, 특히 자연을 소재로 지은 시조 짓기가 뛰어나서 詩 부문은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의 3대 시가인(三大詩歌人)으로 불린다.
성격이 곧고 직설적이었던 그는 적을 많이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정치를 함에 있어서는 아부(阿附)나 침묵(沈黙)으로 일관하여야만 출세가도가 빠르지만 그러지 못함이 그의 장점이면 장점이고 단점이면 단점이다. 그의 불같은 성격은 정치의 생존 조건인 침묵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리한 관찰력으로 문학에 더 많이 관심을 두었을 것이다. 한편 김관용 경북지사가 어느 칼럼에서 자신의 좌우명으로 쓴 ‘接人春風 臨己秋霜(접인춘풍 임기추상)’이 생각난다. 이는 타인에겐 ‘봄바람같이 따뜻하게’ 자신에게는 ‘가을 서릿바람같이 날카롭게 하라.’는 뜻이란다. 마치 겉은 둥글고 속은 모질은 상평통보(常平通寶)와 같다.
윤선도와 인연이 있는 월출산... 4월 23일 대전을 떠났다. 호남고속도로로... 유덕IC로 나와 다시 동광산IC, 서광산IC로 이어지는데 중간에 국도로 이어지는 것 같다. 국도 49번을 타고 나주 왕곡면으로... 다시 국도 13번을 타니 영암(靈岩)읍에 다다른다.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靈岩... 영암고을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動石)이 3개가 있었단다.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중 하나가 스스로 올라와 월출산이 되었단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靈岩)이며 이 動石 때문에 영암에는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영암 월출산으로 2.. (월출산 조각공원에서)
영암의 큰 인물... 일본 아스카 문화의 시조인 왕인 박사, 풍수사상의 대가인 도선국사, 고려의 개국공신 최지몽, 조선 초 학자인 최덕지, 이괄의 난을 평정한 김완장군, 근세에는 항일 독립운동가인 김준연 선생이 탄생한 인걸의 고장이다. 정치가이며 민족주의자인 낭산(朗山) 김준연(金俊淵)...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광복 후에는 민주주의 발전에 족적(足跡)을 남겼다. 제헌의원, 법무장관 등을 역임한 그는 동아일보 주필(主筆)에 근무할 때 손기정선수의 일장기말살사건(日章旗抹殺事件)’에 연루(連累)되어 사임하기도 하였다.
정치는 바람이라 바람잡이가 이기는 세상이다. 김준연 선생의 정치 인생을 볼 때 요즘 정치인들... 카멜레온처럼 얼굴이 수시로 바꾼다. 공자님은 ‘말을 공교롭게 하며 얼굴을 아름답게 하는 자는 어진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라고 하였다. 앞에 월출산이 어스름하게 보인다. 중국에서 흘러온 황사(黃砂)... 오늘이 최고치라고 아내는 오늘 여행을 말린다. 하지만 파란 하늘에 하얀 바위산이 뇌리를 스쳐 낮이면 조금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집에서 출발하였다. 뿌연 황사가 가는 길 내내 흐릿한 풍경을 만들었다.
여행길은 월출산(月出山) 천황사지구로 들어선다. 경지정리가 끝난 논 사이로 난 반듯한 길... 앞에 병풍처럼 커다란 산이 막아서고 있다. 들판에 우뚝 서있는 뾰족한 산마루와 하얀 바위가 수려(秀麗)하다. 그래서 시야를 꽉 채운 월출산을 작은 금강산이라고 한다. 그만큼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靈山)이라 불러왔다. 해발 809m의 월출산... 삼국시대에는 월라봉(月奈峰),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月出山이라 불러왔다. 천황봉(天皇峯)을 주봉(主峰)으로 구정봉, 사자봉, 도갑봉, 주지봉 등이 서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주차장 우측에 조각공원이 있는 자연 탐색로로 갔다. ‘대자연은 모든 생명의 터전이다. 숲길을 걸으며 온몸으로, 맨몸으로 자연의 생동감을 느껴본다. 이 길은 숲이 내 뿜는 깨끗한 공기와 향긋한 풀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부드러운 숲길을 자욱자욱 걸으면서 지저귀는 새소리, 나뭇잎이 부딪히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오르면 무슨 잡념이 있을까? 하지만 톡톡 튀어 나온 돌들이 신경을 건드린다. 옛날 성황당 고개에 가면 돌탑이 있다. 누가 쌓은 것이 아니다. 집신을 신던 시절... 발가락이 다칠 수 있으니 소원도 빌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것이란다.
영암 월출산으로 3.. (바우제단 앞에서)
조각공원에는 ‘평화로운 나날’, ‘삶의 뿌리를 내리고’ ‘풍요로운 탄생’ ‘메아리’ ‘달과 아이들’ ‘사랑의 눈’ 등 조각품이 있다. 이들은 월출산 기암괴석이 환히 내다 보이는 공간에 있는데 새들이 많이 놀러와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곳에 있는 조각품의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가 어떤 뜻을 나타내는지 그 깊은 뜻을 알 수가 없다. 천황사지를 향해 오르는데 바위들이 많다. 지리산, 무등산, 조계산 등 전라남도의 산들이 완만한 흙산인데 반하여 월출산은 설악산처럼 깎아지른 듯 한 바위산이다. 더 오르니 윤선도 시비(詩碑)가 있다.
그 옆에는 영암아리랑 가사(歌詞)도 있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으로 시작한 이 노래는 2절 끝에는 ‘그 임 같은 월출봉에 희망이 온다.’로 끝난다. 윤선도가 세상을 뜬지 350년이 되어 가는데 이 노래가 작곡한지가 40년... 윤선도가 이곳을 지날 때 원망으로 시를 썼는데 300 년 후 하춘화는 희망(希望)의 달이 떠오르고 있다고 노래 불렀다.
불후(不朽)의 명곡으로 평가되는 영암아리랑...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정선 아리랑’과 함께 지역을 대표한 아리랑 노래다. 이 노래는 하춘화가 17세에 객지생활을 하면서 고향인 영암을 그리워하는 아버지를 위해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하춘화의 아버지는 딸이 유명 가수가 되자 고향을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하여 직접 작사가, 작곡가, 레코드사를 골랐다고 한다. 하춘화는 6세에 '효녀 심청 되오리다'란 노래로 데뷔하였으니 대한민국 최연소 가수로 기록되고 있다. 또 최근 55주년 기념 리사이틀을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였다.
그녀는 1971년에 ‘물새 한 마리’가 히트하면서 이미자, 패티 김, 김상희 등 성인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며 가요계를 이끌게 되었다. 이어 발표한 ‘잘했군 잘했어’를 고봉산씨와 듀엣으로 불러 연이어 가수상을 수상하였다. 인기 절정에 있던 그녀는 1977년 다이너마이트를 실은 열차가 이리역에서 폭발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을 때 그곳에서 공연 도중이었다. 당시 무명 개그맨으로 사회를 보던 이주일씨... 지신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하춘화씨를 구해내면서 대스타로 성장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천황사(天皇寺)로 떠났다. 天皇이란 ‘만물을 지배한다.’는 뜻으로 중국에서 유래하였다.
영암 월출산으로 4.. (천황사에서)
이 길을 월출산 시노암 길이란다. 시는 윤선도의 시(詩)를, 노는 영암 아리랑의 노래비를, 암(岩)은 바우제를 뜻한다. 詩와 노는 위에서 설명하였고, 바우는 바위의 전라도 사투리를 뜻한다. 바우제는 월출산의 정기가 가장 많이 모인다는 5월에 용바위 하단에서 매년 지내는 산천제(山川祭)를 말한다. 또 이 길은 향토 문화자원을 복원하여 탐방객들에게 치유(治癒)의 길이다. 한편 천지 만물을 생성하는 원천이 되는 정기(精氣)... 精氣가 넘치면 일상의 정신 활동은 활발하고, 능히 어려움을 견딜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민족정기를 많이 찾았는데 요즘은 그러하지 못하니 정신교육을 보강하여야 한다.
마을이나 국가에서 산천(山川)의 신에게 지내는 山川祭... 山川은 악(嶽), 독(瀆), 명산(名山), 대천(大川), 봉(峯), 현(峴), 강(江), 진(津), 도(渡), 천(泉), 정(井), 섬(島) 바다(海) 등 자연의 다양한 대상을 뜻한다. 山川祭는 이들에 대한 제사 전체를 가리키는데 대부분 기우제(祈雨祭)처럼 어떤 소원을 빌기 위하여 지내기도 하였다. 서울의 제기동(祭基洞)... 조선시대 왕들이 매년 춘분과 추분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선농단(先農壇)이 있던 자리라는 뜻이란다. 이 때 먹었던 곰국인 선농탕(先農湯)이 오늘날 설렁탕이 되었단다.
여행길은 대한불교 법화종에 소속된 천황사에 도착한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天皇寺는 명맥(命脈)만 유지하다가 1970년대 불사(佛事)가 시작되었다. 인기척이 없는데 어미 개와 새끼 다섯 마리가 사찰을 지키고 있다. 어미 개는 굶주렸는지 등산객을 따라다니며 먹을 것을 달라는 표정이니 안타깝다. 궁(窮)하면 적(敵)에게도 의지할 수 있다는 궁조입회(窮鳥入懷)가 생각난다. 즉 ‘매에게 쫓기는 새가 사람의 품에 안긴다.’는 뜻이니 도와주어야 한다. 많은 등산객들은 천황봉 정상으로 오르고 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나로서는 여기서 만족을 느껴야 한다. 내려오는 길에 집채만 한 용바위가 있다. 국태민안과 영암군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 있는 향토문화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차창 밖으로 본 너른 들판... 봄이 오는 소리는 땅버들부터 시작하는지... 흐르는 작은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양지바른 언덕의 철쭉 꽃망울이 활짝 피고 있다. 또 봄비를 맞은 대지를 뚫고 쑥, 달래, 냉이, 고들빼기, 이름 모를 야생초들이 일제히 흙더미를 뚫고 나왔다. 오늘 여행길 고속도로를 타고 오면서 마친다. 고맙습니다.



조각공원

윤선도 시비와 영암 아리랑 노래비

천황사

용바위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건강 하세요~~
感謝 합니다
감사히
감하였읍니다.
거운 여행되세요.
항상 건강하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