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정말로 사랑해요 (아1:1-3)
1. 솔로몬의 아가라
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 또는 주님과 우리 사이를 여러 가지 경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목자와 양, 주인과 종, 부모와 자식, 포도나무 줄기와 가지 등입니다. 그 중에도 주님은 신랑이요, 우리는 그의 신부로 비유한 것만큼 밀접하고 깊은 관계는 없을 것입니다.
아가서에 나타난 목자는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의 짝이 된 술람미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된 교회, 혹은 성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가서의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노래하게 합니다. 권력과 부를 가진 솔로몬 왕이 비천한 술람미 여인만을 사랑하여 부른 노래입니다.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양극간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전능하시고 기묘자이시며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신자들을 사랑해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와 예수님과는 상대가 될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해 주셨습니다.
아가서에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되 뜨겁게 사랑하시고 사랑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문을 통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다같이 한 번 따라 합시다.
“예수님 정말로 사랑해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회복을 주옵소서.”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역시 사랑 이야기입니다.
깊은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한 달에 한 번씩 장을 보러 읍내로 떠났습니다. 그 때마다 아내는 세 살 된 딸과 돌이 갓 지난 아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아내가 장작더미를 드는 순간 그 속에 숨어있던 독사가 발을 물었습니다. 아내는 독사의 독이 온 몸에 퍼져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오려면 사흘이 걸립니다. 이 어린아이들을 돌보아줄 이웃도 없고 저 어린것들이 굶어 죽을 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죽을 때는 죽더라도 남편이 오기 전까지 아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에 독사에 물린 몸이 점점 크게 부으며 생명을 압박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아궁이에 불을 피워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온 몸에서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지만 계속 불을 피웠습니다. 땀은 장마 비 오듯이 쏟아지고 정신은 점점 혼미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지막 사랑은 계속되었습니다.
몇 시간 후 아내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비 오듯 쏟은 땀과 함께 뱀의 독이 몸에서 빠져 나온 것입니다. 만약 어머니가 그대로 주저앉아 신세한탄만 했더라면 남편은 비참하게 죽은 세 가족의 시체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기적을 낳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사랑보다도 더 감동적이고 더 위대한 우주적인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던 그 사랑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내 생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나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만들어주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뜨겁고 간절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형식이 아닌 정말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 합니까?
1. 황홀한 입맞춤의 신앙이 되어야
오늘 본문 1-2절에 “솔로몬의 아가라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거나 짝사랑이 되면 곤란합니다. 서로가 좋아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고 쌍방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도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지만 술람미 여인 또한 솔로몬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서로 뜨겁게 사랑하기 때문에 입맞추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입맞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38절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셔서 앉으셨을 때 한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어 드렸습니다. 발에다 입맞추는 것은 복종과 충성과 헌신의 표시입니다.
또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타국에 가서 허랑 방탕하여 거지 신세가 된 자신의 행실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록 거지꼴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한 걸음에 달려나가서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울며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들에게 입을 맞춘 것은 여전히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사랑할만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그 아들을 사랑으로 맞이해 주고 입을 맞춘 그 아버지의 사랑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창세기 27장26-27절에서 이삭은 아들 야곱을 가까이 오게 하고 자기에게 입맞추라고 했습니다. 곧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추었더니 그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사랑한 나머지 그와 입맞추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즉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영적 교제를 말합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런 뜨거운 사랑의 교제가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뜨겁게 사랑하시듯이 나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되 주님과 입맞추기를 원해야 합니다.
여러분,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를 향한 사랑이 결여된 설교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지식적이고 유식한 설교라 해도 사랑이 없는 설교는 생명이 없습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말하기를 “사람은 사랑이 없이는 강해질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즉 강한 힘이 사랑에서 분출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목회자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이 시대에 살아있는 설교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기 때문이요, 그 능력은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랑이 빠져버리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입은 아무에게나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친한 관계가 맺어진 자에게 입맞춤합니다. 입맞추는 것은 사랑의 극치입니다. 입맞춤은 기쁨의 절정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하고 계십니까? 정말로 사랑한다면 큰 소리로 “아멘”으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2. 여호와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는 신앙 신조가 생겨야
신명기 6장4-9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헌신을 다짐하는 말씀을 가죽에 적어서 팔뚝이나 이마에 착용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헌신을 다짐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신명기 6장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바로 이 말씀이 신앙의 확실한 신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신조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시에 이웃을 사랑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로 신앙이 돈독한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기뻐 받으실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인줄 믿습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성도요, 진짜 거룩한 사람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 그 생명의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3. 그의 기름, 향기를 사모하여야
본문 3절 말씀입니다.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솔로몬의 이름을 가리켜서 “네 이름은 쏟은 향기름 같다”고 했습니다.
향 기름이 병 속에 담겨 있을 때는 별로 냄새가 나지 않지만 쏟아지거나 병이 깨지면 냄새가 온 방안에 가득하게 됩니다. 앉아도 향 기름 냄새, 일어서도 향 기름 냄새가 나고, 드러누워도 온통 향 기름 냄새가 납니다.
술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솔로몬의 이름을 쏟아진 향 기름과 같다고 말한 것은 온통 그의 이름에 도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즉 술람미 여인은 앉으나 서나 솔로몬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그 이름만 생각하면 가슴속에 솔로몬의 사랑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이 온통 솔로몬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잠시도 그의 이름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름에 온통 도취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나는 예수로만 가득 찼다고 했습니다. 나를 건드리기만 하여도 예수가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예수님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야 합니다. 앉으나 서나 예수님 생각을 하고, 예수님 생각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복음성가 가사처럼 “예수님이 좋은걸 어떻게 합니까” 하는 고백이 우리 삶에 가득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힘입니다. 생명입니다. 위로입니다. 능력입니다. 승리입니다. 그 분은 선한 목자입니다. 구주입니다. 해결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못 살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밤에 자다가도 예수님 꿈을 꿀 정도로 예수님을 좋아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4.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하면
첫째,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함을 가지게 됩니다. 안절부절못하던 사람이 평안을 얻게 됩니다.
둘째, 섬김과 희생의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순교자의 자리까지 이르게 됩니다.
셋째, 참된 예배자로 서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하여 주님의 사랑을 받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입을 맞추는 기쁨과 같은 환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 정말로 사랑해요! 할렐루야!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