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과 사색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를 아십니까?
에볼라 바이러스 완치 간호사를 포옹하는 오바마 대통령 사진이 이번 주 초 신문 1면을 장식했다. 하지만 외신은 그녀가 어떤 치료를 통해 음성 판정을 받게 됐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전한다. 이 교수의 책상 위엔 “10월 1일부터 60일 이내에 치료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면 인류는 엄청난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는 앤서니 밴버리 UN 에볼라 긴급 대책 기구 수장의 말이 실린 기사가 프린트돼 있다. 문득 이 교수가 물었다.
“정 부장,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를 알아요?”
“네? 글쎄요…. 전 문과라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를 거야. 세균은 세포핵이 있는 생명체고 바이러스는 유전자 정보만 있는 비생명체지. 세포 속으로 들어가 기생하면서 비로소 증식을 해. 바이러스는 생명과 물질 사이에서 존재하는 세계야. 21세기는 이것과 저것의 접속점에서 정쟁이 벌어지고 있어. 지의 최전선도 바로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지. 자, 그 전선을 보여줄게. 미사일도 방호복도 필요 없어. 내 고양이와 쥐만 있으면 돼.” 과연 노 교수의 마우스(쥐)가 “클릭 클릭”하고 울었다.
동영상이 요란한 배경음악과 함께 모니터에 가득 찬다. 그리고는 다시 드롭박스에서 ‘에버노트’ 프로그램을 열고 자료 하나를 쓱쓱 프린트해 건네준다. ‘오토데스크사의 유전학 엔지니어가 3D 프린터로 바이러스를 제작, 곧 암세포를 공격한다’는 제목이 보인다. 10월 17일자 뉴스다. 동영상에서는 뉴스의 주인공 앤드류 헤셀(사진)이 지난 5월 TEDx에서 강연하는 모습이 흘러나온다.
“와, 이건 뭔가요?”
“3D 프린터로 바이러스를 찍어낸다는 거잖아. 제약회사가 아닌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바이러스 하나를 만드는데 지금은 1000달러 정도지만 머지않아 1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것을 기대한다지. 그런데 암세포뿐이겠어? DNA를 조작해서 바이러스를 잡아먹는 바이러스를 만든다고 생각해 봐.”
정말 놀라웠다. 어디서도 보고들을 수 없었던 얘기가 노학자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온다. 처음 만나 들었던 3D 프린터로 집짓는 이야기가 바이러스를 찍어내는 뉴스로 점프한다. 이게 바로 지(知)의 최전선이고 지식의 하이퍼 텍스트다. 첨단 무기가 만들어지는 현장이다.
“서울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간 책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라지. 그런데 여기서 균은 그냥 세균(germ)이야. 100년 전 얘기를 읽고 있는 거지. 21세기의 전선은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야. 그런데 세균과 바이러스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낡은 책을 읽고 있는 것이지.”
“이런 얘기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아 내십니까?”
“관심과 관찰과 관계지. 인문학자로서 나의 최전선은 말이고 개념이야. 말이 나오면 언어의 전선이 형성되거든. 그 말에 관심을 갖고 검색을 하다 보면 수억 개의 정보 중에서 유의미한 것들을 고를 수 있지. 그럼 그것을 과학적·역사적으로 면밀히 관찰하고 내 분야와의 관계를 설정한 뒤 개념적으로 정리하지. 아시안 게임을 생각하다가 아시아란 말의 어원을 찾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7권 7장에 나오는 유럽과 아시아의 비교론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가는 식이야. 인류학자가 화석을 뒤지듯.”
그의 컴퓨터 화면을 슬쩍 보았다. 에버 노트에 ‘10463’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인터넷을 서핑하며 관심을 갖고 정리해둔 파일 개수다.
“책으로는 아직 안 나온 것들이야. 살아있는 정보들이지. 책이나 도서관에 있는 것은 이미 누군가 생각한 것들, 즉 쏘우트(thought)야. 과거분사지. 하지만 나는 지금 검색을 통해 씽킹(thinking)하고 있어. 최전선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분사야. 국경 없이 창궐하는 에볼라와 싸우기 위해서는 국경 없는 의사회뿐만 아니라 국경 없는 지식인단도 필요한 때지. 쏘우트가 아니라 씽킹하는. 그런데 우물 안 개구리들은 우물 안을 비추는 달빛만 바라보고 있으니….
● 글=정형모 기자 / hyung@joongang.co.kr / 기자의 블로그 / 기 자의 다른기사 보기
● 출처 : 중앙SUNDAY 2014.10.26 /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