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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일 (2018. 01. 30. 화) 다낭→ 바나산 국립공원 → 후에
잠잔 시간은 1시간이되 숙면에 빠진 것은 30분 정도밖에 안 되어 일어나도 피곤하다. 7시 30분에 일어나니 파트너인 신 선생은 산책하러 나갔다가 숙소 뒤 재래시장에서 꽃과 돼지고기 파는 것을 둘러보고 왔다고 한다. 8시 20분에 식사를 하고 10시 반에 출발 예정이다. 오늘은 우선 바나나 나무가 많다 하여 ‘바나산’이라는 바나산 국립공원의 테마파크에서 자유 시간을 갖고 중식 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후에로 가 왕궁을 보고 그곳 숙소에서 숙박하는, 제법 빡빡한 일정이다.
< 날씨가 추워 출근길 아가씨는 외투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오토바이 탄 사람들은 마스크를 하고는 양말은 신지 않았다. 예로부터 맨발로 다니던 습관 때문일까? 날씨가 춥다고 하지만 최저 기온이 18°이다. 그래도 따뜻하게 지내던 이들에게는 엄청난 추위인가 보다.
세계 최장이라고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가 길이 7,455m에 30분이 소요된다는 장가계 천문산 케이블카에 그 자리를 내어준 ,길이가 5,262m인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1,487m에 위치한 테마파크인 바나힐로 갔다. 탑승료는 65만동인데 우리 돈으로 32,500원이다. 문득 비싼 듯하지만 바니힐에서 이용하는 모든 놀이기구와 박물관료 등 모든 사용료가 포함되어 있어 그리 비싼 편이 아니다. 케이블카는 3호기까지 있었는데 3호기가 최근의 것이라 가장 깨끗하고 세련되었다. 한 차에 8명 정도 탔는데 올라가는 시간이 약 25분 정도 걸리는 듯했다. 그것도 한 번에 다 오르지 못하고 거의 정상 부근에서 다시 환승을 해야 했다. 바나산 정상에는 식민지 시대에 프랑스 군인들이 사용했던 휴양시설과 포도주 동굴 창고가 있었다. 그리고 리조트와 꽃동산과 놀이시설 등이 있는 종합 위락시설이었다. 워낙 넓어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만 5천 명 정도라 하니 그 규모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 지대가 높아 공기도 좋고 볼거리 많은 바나산 국립공원 관광의 시작인 케이블카 탑승장. >
< 캐러비안의 해적을 흉내 내고 있는 두 서양인. 가끔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채찍을 휘둘러 ‘짝짝’ 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같이 사진 찍기를 유도한다. 가끔 사람들이 “Donation”이라 쓰인 함에 기부를 하는데 제법 수입이 짭짤하다. 그들은 동양인들과 사진을 찍은 후 “자! 한 번 더”라고 우리가 사진을 찍은 후 흔히 하는 말을 흉내 내어 다시 한 장 더 찍도록 유도하기도 하는데 한국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다. 우리는 이제 이들에게 한국어가 생계에 도움을 주는 언어가 될 정도로 여행을 많이 다니는 민족이 되었다. >
정상으로 오르니 불교와 관련된 듯한 석물이 곳곳에 있다. 과거 이곳에 절이 있어 이런 석물이 원래 있었던 것인지 최근 만들어지고 지어진 것인지 설명이 전혀 없어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승려가 기거하는 사찰은 없고 9층탑이나 비문 등 석물만 있는 거로 보아 그냥 구경거리로 조성한 듯하다. 그래도 그 솜씨가 상당하여 아마 후대에는 문화적 가치를 획득할 듯하다.
< 정상에 자리 잡고 앉아 넉넉한 웃음을 웃는 금복주 아저씨. >
금복주를 닮은 이 화상(和尙)은 그 넉넉한 풍채로 보아 아마 행운을 주고 돈을 잘 벌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인지 돈과 관련된 글자들이 많고 어떤 사람은 합장 후 가슴 가득 물욕을 품고 그 물욕을 이 금복주 상(像)이 이루어주길 정성을 다해 빌기도 한다. 지금 참소주의 전신(前身)으로 과거 금복주 회사에서 생산하던 금복주 소주병에 인쇄된 금복주 상에 절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이 돌 금복주에는 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같은 존재이되 크기가 달라서인가, 아니면 주변의 종교적 배경에 현혹되어서인가? 문득 이규보가 슬견설(虱犬說)에서 말하고자 한 것이 시대를 넘어 아직도 여전히 인간의 미망(迷妄)에 남아 있음을 느끼고 인간 본성이 과연 이성적 발전을 하고 있는가에 의문을 가진다. >
< 바나산에 있는 성당.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것은 최소한 대구 계산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도 못 본 사람이나 하는 이야기다. 아름답다고 감탄할 정도가 아니다. 다낭 대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면 다양한 성인들을 묘사한 중세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
< 다시 산악용 열차를 타고 와인 터널로 가는 착각 속의 이쁜이들. >
와인 터널로 가는 산악용 열차를 타니 거의 경사가 40°나 됨직한 길을 힘들게 올라간다. 와인 터널로 들어가니 시원하고 선선한 느낌이 든다. 각종의 포도주 관련 시설과 병과 오크통 등을 보고 나서 바에서 시원한 라임 칵테일을 한잔하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일정을 대강 끝내고 내려가기로 했다.
시원한 칵테일에 아주 만족한 기분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다가 문득 나의 달팽이관을 사정없이 가격한 후 청각적 기습을 통한 두뇌의 혼돈을 유발하는 나지막한 음파가 있었으니 그것은 케이블카를 같이 탄 김 여사의 노후 대책에 관한 자술적인 발언이었다. 평상시에도 경상도말로 시건(식견)없는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이렇게 순수한 이기적 발언을 듣노라니 성도 이름도 모르는 그녀의 배우자―이런 경우 차라리 배후자가 되는 것이 좋겠다―가 엄청나게 가여워졌다.
이야기인즉슨, 남편이 오래전 김 여사 앞으로 노후 연금을 하나 넣었는데 이제 나이가 연세가 되어 곧 탈 때가 다 되어간다고 실토하더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갑자기 돈이 떨어진 김 여사는 그 연금이 1년 치가 나오는 달 즉, 일 년에 한 번씩 그 돈으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고 이어 “부부동반으로”라는 끔찍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었다. 대강 말하는 것을 들을 때 7박 8일 정도로 서유럽이나 동유럽 등지를 생각하는 듯했다. 게다가 그 돈을 이미 자기 돈으로 기정사실화시킨 후 남편에게 자비를 베풀 듯 동반의 기회를 주겠다는 어투를 볼 때 혹사를 당하면서 아내의 연금을 넣은 남편의 노동이 가엽기까지 했다. 남편은 무슨 죄가 있는가? 내가 이렇게 진리를 이야기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여행의 깊은 속살은 이해하지 못하고 괜한 트집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은 사람의 경우 여행 사나흘 정도에 정신적 고비가 오는데 짜증과 스트레스가 그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 년을 잘 사귀던 여러 커플이 겨우 5박 6일의 신혼여행에서 따로 떨어져 귀국하고 부모님께 그 인간이 그런 인간인 줄 몰랐다면서 이혼한다고 하는 것이다. 연전에 터키 여행 갔을 때 평상시 다정했던 몇 부부간 어처구니없는 다툼을 생각하면 이해될 것이고 내 경우 이런 일은 여행 갈 때마다 겪는다고 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늙어서 부부는 사랑이 아니라 우정과 연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의 경우 부부동반은 스스로 왕비라 생각하는 김 여사를 모시는 몸종의 자격으로 가는 것이라 하겠다. 또 요즘 미투(Me too)니, 위드유(With you)니 하는 등의 성폭력이나 추행을 보면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젊은 여자라는 것인데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 알다시피 김 여사는 그리 젊지 않다.
물론 그녀의 남편도 세 가지의 잘못이 있으니 첫째는, 아내의 연금을 넣는 쓸데없는 행위를 스스로 했다는 것이다. 돈은 권력이다. 그런데 내 돈으로 안 그래도 많은 연금을 받는 아내의 권력을 더 키워 줄 필요가 있었는지 반문해 볼 일이다. 둘째, 순간적으로 정신이 흐려져 실수했거나 혹은 주변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넣었다고 하자. 그럼 그것을 본인이 해마다 수령할 방법이 없었을까를 고민했어야 한다. 내 말은 그 연금을 본인이 쓰라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한 번 그 액수에 해당하는 명품을 아내에게 선물하든지 아니면 딸 현영이(맞는지 몰라)에게 선물하면 난데없는 선물에 철없는 여자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셋째, 슬쩍 김 여사에게 만일 당신에게 이런 돈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보았어야 했다. 그때 부부동반이란 말이 나오면 즉시 그 연금을 성당이나 우리나라 아픈 아이들이나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 하다못해 쓰러져 있는 북극곰을 위해 기부하는 길을 택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모두는 이미 지나간 허상에 불과하니 그녀의 가여운 남편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 뿐이다. 케이블카 내려오는 시간은 길고 할 일은 없어 쓸데없는 트집을 논리적으로 각색해 보았다.
< 점심은 바나산을 내려와 인근의 베트남 정식으로 먹기로 했다. 고등어와 닮은 삼치조림(중앙)에 미역국인 줄 알았던 김국(1시 방향)에 꼴뚜기 숙회(3시 방향)에 모닝글로리-공심채 볶음(6시 방향), 꼬들꼬들한 돌솥밥 정식(7시 방향)에 닭볶음 요리(8시 방향) 계란프라이 요리(9시 방향) 스프링 롤(11시 방향)까지 근사하게 한 상 받았다. 물론 넵머이도 한자리 차지해야 밥상이 완전체가 된다. >
< 화장실 입구에 붙은 남녀 표지로 알 수 있는 것은 일단 화장실임을 그림으로 구별하게 하고 다음에는 ‘WC’라 적어 혹, 그림으로도 구별 못 하는 서양인들을 배려한 점. 베트남이 원래 한자 문화권이었음을 짐작하게 하면서 지금 베트남어를 어떻게 읽는지 짐작하게 하는 표기이다. >
식사 후 후에로 이동하기 위해 하이반 고개를 꼬불꼬불 넘어가기 시작했다. 넘어가는데 2시간 반이나 걸리는 곳곳에 작은 사당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고갯길에서 교통사고가 자주 났음을 알 수 있다. 작은 사당은 거의 모든 집이나 거리 등에 있고 그 제물이 싱싱한 것으로 보아 이들에게 종교는 거의 생활화 된 것 같다. 거의 다 넘어가니 평지가 나오고 멀리 바다 같은 강이 보이고 새우를 양식하는 곳도 보인다.
< 날이 흐리지만, 저 멀리 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된 다낭시가 보인다. 다낭은 베트남 중부를 대표하는 도시로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유소년 같은 도시다.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크기에 많은 사람이 진출을 엿보고 있다. >
< 동남아를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병이나 페트병 같은 용기에 노란 액체를 담아 파는 것을 보고 무얼까 궁금해하는데 오토바이를 위한 연료이다. 간이 주유소인 셈이다. 제법 돈이 되는지 많이 눈에 띈다. 베트남은 산유국이되 정유기술은 없어 기름값이 그리 싸지 않다고 한다. >
< 이곳 사람들의 일반적인 가옥의 형태를 볼 수 있다. 앞에 노란 통 같은 것은 이 집의 사당이다. >
집은 담장이 없고 대문 앞에 난간을 달아내어 비가 바로 문을 치지 않게 하면서 그 공간은 아마 의자를 내어두고 앉거나 바닥에 앉아 일할 수 있게 된 구조이다. 사진의 집 앞 노란 기둥 같은 것은 제단일 것이다. 집집이 작은 제단이 있어 하루 한 번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도시에서도 개업하거나 특별한 날은 저녁에 가게 앞에 상을 차리고 과일과 과자를 진설하고 향을 피우는 것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리고 장묘문화는 가톨릭 영향을 받아서인지 십자가로 장식한 성당 공동묘지도 있고 농촌의 경우 집 옆이나 논밭에 제주도처럼 사각형의 담을 쌓아 그 안에 모신다. 그런 점에서 조상과 늘 같이 교감하며 일상을 사는 민족인 듯한데 살아서는 담 없이 살다가 죽어서는 담장을 두르는 것은 이승과 저승이 담장 하나 차이라는 것을 알라는 교훈일까, 아니면 죽은 자가 밤에 이리저리 다니지 말았으면 하는 공포심의 발로일까?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다.
사람이 꾸는 꿈이 사람마다 다 다르되 또한 별반 다르지 아니하니, 이는 다음과 같이 비유할 수 있다. 물이 있는 곳이면 사람들이 모두 배를 만들어 타고 다닌다. 배의 모양은 다 다르되 물을 건너다니는 바와 결국은 땅에 묶이는 것은 그리 다르지 아니하다. 마찬가지로 뭍이 있는 곳이면 사람들이 모두 탈 것을 만들어 다닌다. 자전거의 모양과 그 자전거가 가는 길이나 그 자전거가 언제까지 사용될 것임은 모든 자전거가 다 다르되 결국은 어느 시점에선가 바퀴가 빠지고 핸들이 부러져 한쪽 구석에 고물덩이가 되어 쓰러져 있게 되는 것은 모두 같은 것이다.
저 집 주인이 아침마다 사당에 제물을 바치고 정성을 들이는 것이 지금의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다음 생에서 태어나기를 바라는 데 있듯이 배나 자전거가 자신의 고됨을 알고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나은 존재로의 환생을 추구한다고 하되 지금까지 일어난 현상으로 미루어 볼진댄 더 나은 존재로 다시 만들어진들 별로 다른 꿈을 꾸게 될 것 같지가 않다. 자전거는 더 비싸고 여러 첨단기능을 가진 자전거로 태어나겠지만 그 운명은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다른 차원으로의 환생이라면 어떨까? 이륜의 자전거가 가지는 한계가 멈추었을 때 옆으로 쓰러지는 것이니 사륜의 자동차로 환생하면 지금까지 이륜이 주었던 정지의 공포는 벗어날 것이다. 그럼 자동차는 자전거가 지닌 한계를 초월한 존재일 것이니 이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자전거의 처지에서 보면 자동차는 한계를 극복한 초월자, 인간으로 보면 죽음이라는 한계를 벗어난 신(神)과 같은 존재라 하겠다. 결국, 부처가 추구한 바는 자전거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자동차가 가지는 한계는 중력의 법칙이니 자동차 삶의 궁극적 바람은 중력의 굴레를 벗어나 이카로스의 후예인 비행기로 태어나는 것이 될 것이다. 비행기가 다시 대기권에 얽매이는 존재라면 우주선은 비행기가 가진 한계를 어마어마한 추진력으로 극복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처럼 다른 차원으로의 환생은 더 넓은 세계에 대한 안목과 통찰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 인간이 최초로 우주에서 발견한 것은 우주가 아니라 처음 본 지구였다는 아이러니처럼 우린 우리가 사는 삶이 어떠하다는 것을 사실은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부처나 예수나 마호메트 같은 이들은 한 차원 혹은 몇 차원 바깥에서 삶의 본질을 본 사람들이다.
< 바나산 국립공원 안의 성당. 인간으로 죽음으로써 인간이 죽지 않음을 보여준 예수야말로 다른 차원을 본 인간이 아닐까? >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이런 일은 결국 시간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데 시간은 다행히도 우리에게 우호적이어서 차라리 잊게 해주거나 저절로 해결되도록 해준다. 그래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자꾸 노력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비어 있는 시간은 비어 있는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니 책장의 책 한 권을 버리면 그 책 한 권이 차지하던 빈 곳을 얻는 것과 같다. 읽지 않는 책이나 이미 읽은 책을 버려 그만큼의 “빔”을 얻으니 어느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 물론 뽑혀있는 책이나 빈 곳이나 혹은 가치를 따지는 일이나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차라리 빈 들판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더 좋을지 모른다. 그러니 굳이 건강해지려고도 말아라. 삼시세끼 현미밥을 먹고 집에서 건강하게 있느니 고혈압약을 먹으며 이 나라 저 나라 향기로운 술에 기름진 안주를 먹고 인생을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언젠가 쇠약해질 건강을 걱정하지 말고 건강은 건강할 때 해치면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게 더 건강한 삶이 될 수도 있다.
< 가이드가 티켓을 끊어주는데 카이딘과 민망 왕릉, 그리고 후에 고성을 관람할 수 있는 패키지 티켓이다. 들어갈 때마다 오른쪽 티켓을 1/3씩 찢어간다. >
< 민망 황제릉 입구에 핀 국화. 2월 초인데 국화가 이제 만개를 앞두고 있다. 여기 겨울이 우리의 가을이란 걸 확연히 알게 해준다. >
< 경내에 피어 있는 나팔꽃 닮은 툰베르기아. 제자가 선물해 집에 화분에 키우고 있는데 이렇게 야생의 툰베르기아를 보니 신기하다. >
< 민망 황제의 별장 겸 왕릉으로 생전에 미리 조성하였단다. 전체적으로 인체를 본떠 만들었다는데 왕릉이 머리 부분이고 건물이 몸체에 해당하고 입구는 다리에, 호수는 팔에 해당한다고 한다. 왕릉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제삿날 아니면 연중 닫혀있어 크다고 하지만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었다. 민망 황제는 응우옌 왕조 2대 왕으로 재위 기간이 1819년부터 1850년까지이니 31년이란 긴 기간 동안 통치 후 현재의 국토를 완성한 강력한 황제로 50세쯤 사망했다고 한다. 왕비가 500명이라고도 하고 600명이라고도 하는데 이로 사망원인을 미루어 짐작하겠다. 여자를 이기는 남자는 없다. 단체 사진 한 장 정도는 있어야 할듯하여 11명 전체가 있는 사진을 찾아 넣었다. >
다음으로 후에성을 구경하기로 했다. 후에는 베트남 전쟁 시 미군사령부가 있던 소도시로 1805년 자롱 황제의 명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하여 1832년 민 망(Minh Mang)황제 시기에 완성되었다. 왕궁은 흐엉 강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프랑스 건축가인 바우 반(Vauban)의 설계에 따라 프랑스식과 베트남식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건축되었다. 왕궁의 성벽은 방어벽, 왕 거주지, 뚜 깜 딴(Tu Cam Thanh) 등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어벽 길이는 총 9,950m, 두께는 21m에 달하며 총 10개의 문이 있다. 현재 여행객을 위해 2개의 문을 개방하고 있다.
왕의 거주지인 흐엉 딴(Hoang Thanh)은 커다란 궁전이란 의미로 다이 노이(Dai Noi)라고 부른다. 실제로 왕궁이라 하면 여기에서부터를 말한다. 남문인 응오 몬(정오), 북문인 호아 빈(평화), 동문인 히엔 논, 북문인 추엉 득이 있다. 응오 몬이 왕궁의 정문으로 다섯 개의 문 중 중앙 문은 왕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대부분 구역이 현재는 폐허로 변해 버렸다.
< 왕궁투어는 전동차를 타고 현지인 해설사의 설명 들으며 탐방할 만큼 규모가 컸지만, 대부분이 부서져 지금 복구 중이라 한다. >
< 응오 몬. 문이 세 개가 있는데 가운데 문은 왕만 다니는 문이라 닫혀 있다. 관광객들은 왼쪽 문으로 들어간다. >
현지인인 해설자가 이 건물을 해설하는데 네 팀을 모아서 해설할 만큼 한국 관광객은 많고 한국말을 능숙하게 할 줄 아는 베트남 사람이 없다고 한다. 베트남의 한국어과가 인기가 좋아 졸업하면 바로 삼성과 LG 현장공장에 취업이 되어 이곳 사람들 임금의 약 2배 정도의 초임을 받으니 해설하던 사람도 그만두고 공장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매우 좋은 편이라 한다.
< 검찰에 출두하는 재벌 모양으로 휠체어에 마스크를 쓴 모양이었는데 사진 찍는다고 마스크를 벗었다. 표정은 웃고 있지만, 마음이 즐거워 웃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 뒤에 따라오는 모두는 다 같은 심정으로 완전히 쫄았다. 시크로는 여행사 특전이라 서비스였는데 공짜라도 탈 것이 아니다. 이 시크로 경험은 교통에 있어 가장 약자가 된 느낌이었다. 베트남에서는 공짜라면 날아가는 총알도 받아 먹는다더라만. >
인력거인 시크로 투어를 하는데 이건 거의 모험 수준이다. 퇴근 시간이라 엄청난 오토바이와 차들 사이를 방비가 전혀 없는 맨몸의 시크로를 타고 마사지 숍으로 이동하는 자체가 미친 짓이다. 게다가 로터리를 만나 수십 대의 차들과 오토바이가 뒤엉킨 사이를 헤집고 나가는 시크로 운전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입으로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 정도뿐. 게다가 내가 탄 시크로 앞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부녀 중 뒤에 탄 처녀가 저녁거리로 사 가던 살아있는 잉어를 놓치는 바람에 도로 복판에 잉어가 펄떡이고 뒤따르던 버스가 서자 그 버스 뒤로는 영문 모르는 교통 지체가 시작되었다. 내 시크로 운전사가 친절하게도 잉어를 잡아 처녀에게 인계함으로써 한바탕 잉어 소동은 훈훈하게 일단락되었다.
시크로 기사에게 1달러를 팁으로 준 후 마사지 숍으로 들어가 따뜻한 돌을 이용한 전신 마사지를 1시간 반 받았는데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여식들이 무슨 손가락 힘이 그리 센지 아플 정도였다. 점심 식사 때부터 잔뜩 알코올기를 머금은 세포들은 처녀의 악력(握力)을 이기지 못해 터졌는지 다음 날 아침 멍이 든 것처럼 아팠다. 들어가기 전 우리 가이드에게 팁으로 얼마를 주면 되느냐고 물으니 1시간 반이니 3달러를 주란다. 전신 마사지를 여행사에서 서비스하는 특전으로 넣어두었지만, 실제 아가씨가 받아가는 임금은 팁이 다일 것 같다. 3달러는 3,300원이니 6만6천동에 해당한다. 하루 2건이면 13만2천동이고 25일 일한다고 하면 3백3십만 동이니 베트남에서 여자 임금으로는 괜찮은 편이다.
마사지를 겨우 마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이동했는데 제법 세련된 점포 앞에 제단을 차리고 그 위에 향과 음식과 꽃을 진설(陳設)한 것이 몇 집이나 눈에 띄어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보름날에도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개업 집이나 장사가 잘 되기를 빌거나 등등 여러 이유에서 제단을 차린다고 한다. 동남아에서는 이런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꽃을 사서 쓰니까 화훼농업이나 꽃가게가 연중 꾸준히 돈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도가 높아 비닐하우스 같은 보온시설 없이도 연중 생산되기에 생산비도 적게 들 것이다.
< 저녁 식사도 깔끔하게 나와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한국 사람이 많이 가니 아마 우리가 익숙한 채소 위주로 하고 향채를 많이 뺀 듯했다. >
호텔 근처에서 단체로 한잔했는데 정말 싸다. 맥주 6병에 과일 안주 2개에 치킨 요리까지 해서 부른 배를 더는 들어갈 곳이 없도록 꽉 채웠는데 한화 3만5천 원이 계산으로 나왔다. 숙소에서 맥주를 한잔 더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마무리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