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앞산, 전망 좋은 암릉과 호젖한 숲이 조화로운 명소
1. 일자: 2024. 6. 1 (토)
2. 산: 대덕산(583m), 앞산(658m), 청룡산(794m)
3. 행로와 시간
[청소년수련원(10:45) ~ 대덕산(11:42) ~ 앞산(12:10~35) ~ (순환도로) ~ 달비고개(13:13) ~ 이정목(13:57, 청룡산 1.56km / 달비고개 2.35km) ~ 청룡바위(14:15) ~ 청룡산(14:38) ~ 수밭고개(15:08) ~ 월광수변공원(16:05) / 14.5km]
어디로 갈까, 선택은 늘 쉽지 않다. 돌고 돌아 대구 앞산으로 결정한다. 잠시 살펴 본 동영상이 영향을 주었다. 산정에 올라 바라보는 대구 전망이 시원하고, 15km 정도의 거리지만 중간에 힘들면 탈출할 곳이 여럿 있고, 날머리에 식당이 많다는 것도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앞산, 이름이 강렬하다. 수식어 없이 짧게 내지른 '앞'은 그만큼의 자신감으로 다가온다. 읽은 책 중에 명작으로 기억되는 제목 '강의, 담론'처럼 강한 내공이 느껴져 기대감도 커진다.
산에 가는 날은 늘 잠이 일찍 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나름 시간 이용법을 여럿 갖게 되었다. 오늘은 책을 펼쳐 든다. '유러피언 드림, 자연의 개척과 이용' 편에 평소 막연히 알고 있던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에 영향을 준 요인 중 '원근법과 수학' 과 이것들이 불러온 세상의 변화가 잘 정리돼 있었다.
르네상스 화가의 원근법이 천년 중세를 무너뜨리는 단초가 되었다. 인간이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 원근법은 철학자들의 책상으로 옮아갔다.
베이컨의 과학적 방법론은 관찰자와 관찰대상을 구분하여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그 인간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이용 대상으로 삼았다. 이로써 자연은 더 이상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에 따라 개조되기를 기다리는 자원으로 지위가 낮아졌다. 데카르트는 수학적 방식으로 자연을 합리적으로 설명했으며, 뉴턴은 기계적 운동을 설명하는 데 수학적 방법을 발견했다. 데카르트와 뉴턴은 자연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 보았다. 이 이론은 애담 스미스에게 채용돼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통치한다는 이론으로 옮아가, 보이지 않는 손이 영구운동기계처럼 움직여 자율적 경제 내에서 각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믿게 되었다.
놀라운 이야기가 9페이지로 간결하고 쉽게 요약된다. 고수 제러미 러프킨의 내공을 새삼 확인한다. 새벽 독서 덕분에 아침이 분주해 졌지만 충분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사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버스에 오른다. 앞산으로의 긴 여정에 들어선다. 버스에서의 오롯한 내 시간도 이제는 값지다.
< 청소년수련원 ~ 앞산 >
대덕산 가는 길 1.7km에 호되게 당했다. 들머리 이후 600m~1km 구간만 지나면 룰루랄라라 여겼는데, 초입 앞서 가는 이들을 따라 가다 보니 대덕산 정상으로 바로 이어지는 된비알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중간 지점 바위전망대에서 확 트인 조망에는 산 위에서는 처음 접하는 대구의 모습이 시원스레 펼져지고 있었다.
< 앞산 ~ 청룡산 >
1시간 반 만에 도착한 앞산 정상, 멀리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한참을 데크 위에서 서성였다.
내려서는 길, 멀리 앞산 전망대 부근의 시설물이 보이고 6월의 싱그러운 산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순환도로를 약 1km 정도 걷고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걸음에 속도가 붙는다. 달비골 지나 청룡산 가는 길은 녹음 짙은 평탄하고 호젖한 길고 사색하기 좋은 등로였고, 청룡바위 위에서의 풍광은 대구 달서 일대를 더 가까이 굽어볼 수 있어 최고였다.
이제 대구와 조금 더 친해진 것 같다.
< 청룡산 ~ 월광저수지 >
수밭골 갈림까지 1.7km 길도 꽤 근사한 전망과 숲이 이어졌다. 앞산의 매력은 대구의 조망뿐 아니라 녹음 짙은 숲에도 있음을 알게 된다.
40분 만에 수밭골에 도착했다. 이후는 긴 포장도로를 걸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내리막에 지쳐 올려다 본 산에는 키가 다른 나무들이 층을 이루며 더불어 숲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강한 빛이 만들어내는 숲의 음영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날머리에 가까워 질수록 걸음에 속도가 붙는다. 4km 넘는 거리를 1시간 만에 내려왔다. 화려한 카페들이 즐비한 수변 공원에서 걸음을 멈춘다.
< 에필로그 >
조금 일찍 트랭클과 워치를 끈다. 고요한 곳에 5시간 넘게 있다 인파 속에 들어서니 많은 게 낯설다. 식당에 앉아 국밥을 앞에 두고 사진을 본다. 행복한 시간이다. 배는 부르고 지나온 여정은 꽤 괜찮았다.
앞산은 대구를 굽어보는 명산이었다. 풍광 좋은 암릉과 호젖한 숲이 조화를 이루었고, 거대 도시를 품은 산 치고는 크게 붐비지 않아 좋았다.
앞산에 오르고 나니 멀게 느껴졌던 도시, 대구를 이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첫댓글 나도 네이버블로그가 익숙치 않아 자꾸 이쪽으로 오게 되네 ㅋㅋ. 새벽 독서도 하고 또 글에 감명받고…. 같은 시대를 휩쓸리며 비슷하게 산 거 같은데 이렇게 멋지게 늟어가시니 존경스러워~~ 좋은 휴일 보내시게^^
안 하던 짓 해서인지 갈 때 버스에서 코를 골았고, 돌아올 때 보니 옆에 앉은 분이 다른 데로 가 버리셨네요.
감사하고, 좋은 휴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