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법사 영어 법문>
‘아니요’의 다양한 의미
'아니요'라는 말은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어머니가 말할 때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경찰이 말할 때는 냉정하게 법을 집행하려는 의도입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아니요’라고 하거나 심지어 꾸짖거나 때릴 때, 아이는 울면서도 다리에 매달리며 더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경찰이 ‘아니요’라고 할 때, 범죄자는 두려워하며 도망가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 계율로 정하시며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과 엄숙한 인과법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후자는 인과응보의 법칙입니다.
또한 성도문에서 말하는 '아니요'와 정토문에서 말하는 '아니요'는 다릅니다. 전자의 경우, '아니요'는 탐욕, 분노, 무명을 제거하고 자아와 만법에 대한 분별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생사윤회를 벗어나 성불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 '아니요'는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정토종의 '아니요'는 반드시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탐욕과 분노를 피하거나 오역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은 큰 자비에서 나온 권고입니다. 이러한 '아니요'는 오히려 죄를 지은 중생들이 아미타불의 구제에 귀의하도록 도와줍니다.
사찰, 도량, 단체에는 반드시 규칙이 있어야 하며, '아니요'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아니요'는 어머니나 아미타불이 말하는 것처럼 해야 하며, 법규나 인과 법칙처럼 표현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요'는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냉혹한 처벌의 규칙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The Multiple Meanings of ‘No’
The word “no” has different meanings, depending on who says it. When a mother speaks it, she does so out of love. But when a policeman says it, he wants to enforce the law in a dispassionate manner. When a mother is saying no to, or even scolding or beating her child, the youngster gets closer to her, crying yet clinging to her leg at the same time. When a policeman says no, the criminal is scared and tries to run away.
In the same vein, when the Buddha laid down precepts governing the “don’ts,” they are not the same as the “don’ts” under the solemn law of cause and effect. The former is to protect us, while the latter prompts the rule of retribution.
Moreover, when the schools of the Sacred Path says “no,” the connotation is entirely different from the “no” of the Pure Land school. “No” in the former case means that one simply cannot end the cycle of rebirth and gain Buddhahood without eliminating the afflictions of greed, anger and delusion, and letting go of the duality of self and all things. The “no” is absolute.
But in the case of the Pure Land school, “no” is not necessarily absolute. When we are enjoined to avoid greed and anger, or committing the Five Gravest Transgressions, these are prohibitive exhortations stemming from great compassion. Such “no’s” actually have the effect of helping defiled beings entrust their lives to the deliverance of Amitabha Buddha.
There have to be rules in monasteries, Dharma centers and Buddhist communities, and “no” is used in these places. But such “no’s” should be expressed the way a mother or Amitabha Buddha would say them – and not as though they were legal principles or ineluctable laws of karma. The “no’s” should be rooted in love, rather than the steely spirit of punishment.
첫댓글
성도문 아니요는
성불할 수 없음의
아미타불의 절대적인 아니요!❌️
오로지 일심귀명
일향전념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
정토종의 '아니요'는 반드시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탐욕과 분노를 피하거나
오역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은 큰
자비에서 나온 권고입니다.
이러한 '아니요'는 오히려 죄를 지은
중생들이 아미타불의 구제에
귀의하도록 도와줍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자신이 죄악생사범부의 근기임을 극히 잘 알기에
오직 아미타불의 대비원력에 귀명하여
전수염불 하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사랑에서 비롯되는 아니요 여야 한다는 자비로운 가르침 새겨듣겠습니다.
법문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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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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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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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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