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혁명론>과 ‘프랑스 대혁명’
1. 아렌트의 『혁명론』은 1956년 헝가리 혁명에 대한 깊은 인상에서 집필되었다. 아렌트는 ‘자유’를 목표로 한 헝가리 혁명이 진정한 혁명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아렌트에게 혁명은 ‘새로운 시작’을 가져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자유, 특히 공적이며 정치적인 자유를 실현하는 행위였다. 그런 점에서 미국혁명과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 18세기 이전에는 진정한 혁명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다만 내란, 정치적 경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2. 아렌트는 해방과 자유의 차이를 명시한다. 해방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개인적 차원의 변동이라면, 자유(아렌트는 사적이며 시민적 자유와 공적이며 정치적 자유를 구분한다), 특히 공적인 자유는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혁명은 새로운 시작, 자유, 그리고 행위와 연관된 공적인, 정치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전환을 말한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변동이 시작되는 곳, 완전히 다른 정부 형태를 구성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곳, 즉 새로운 정치체제를 형성하고자 폭력을 사용하는 곳,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궁극적인 목적을 적어도 자유의 확립으로 상정하는 곳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혁명에 대해 언급할 수 있다.”
3. 아렌트는 <혁명론> 서문에서 ‘전쟁과 혁명’의 관계를 논하며 ‘폭력’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핵무기’ 사용은 전쟁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전쟁과 혁명은 언제나 상호연관성, 호혜성, 상호의존성을 꾸준히 증대해왔지만, 이제 점차 전쟁에서 혁명으로 강조점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통한 위험한 시도대신 혁명을 통한 정당화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쟁과 혁명 모두 폭력은 불가피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이유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전쟁론과 혁명론은 폭력의 정당화를 취급할 수 있을 뿐이다. 정당화는 그 정치적 한계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러한 정당화가 폭력 자체의 정당화나 미화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정치적이지 않고 반정치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4. 혁명에 대한 아렌트의 견해는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평가를 전복시킨다. 17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은 이후 19세기, 20세기 모든 혁명의 교범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 혁명에서 분출된 열기에 영향을 받은 헤겔은 역사를 지배하는 필연적인 법칙을 구성했고, 마르크스 또한 자유보다는 필연성에 방점을 두었으며 레닌은 그러한 관점을 현실 속에 적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렌트는 프랑스 혁명을 실패한 혁명으로 보았고, 혁명의 교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렌트가 중시했던 혁명의 핵심적인 요소인 ‘자유’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5. 아렌트는 혁명의 실패를 로베스피에르가 주도한 도덕적 성격에서 찾는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의 진행과정에서 ‘위선’의 제거를 목표로 도덕적 순결함을 정치에 실현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절대적 도덕의 정치화가 바로 자유의 확립을 목표로 했던 프랑스 혁명을 공포정치로 타락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로베스피에르는 가난하고 억압받았던 사람들의 고통에 주목했고, 점차 자유의 실현 대신 인민들의 사회적 행복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아렌트는 ‘동정’에 대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며 서로의 연대를 위하여 중요한 태도이지만, 때론 그것은 정치적 실현에는 장애가 됨을 경계한다. “동정은 정치적 문제들, 즉 인간사 영역 전체가 발생하는 인간들 사이의 세계적 공간, 즉 거리를 해소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부적절하고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
6. 혁명이 정치적 자유가 아닌 인민의 행복과 도덕적 순결에 초점을 맞췄을 때 그것은 변질되었고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로베스피에르)는 자유의 확립 자체를 위한 독재, 자기 자신의 ‘자유의 전제정’을 상퀼로트의 권리에 내맡겼으며 이 권리는 상퀼로트의 범주에 속하는 부류들이 보유한 옷이나 음식, 재생산물이었다. 필연성, 즉 인민의 절박한 필수품 때문에 테러가 발생했고 프랑스 혁명은 파멸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마르크스, 레닌에게도 반복되었는데, 실제 권력을 잡은 레닌은 소련의 목표를 인민들을 위한 ‘전기사업과 소비에트’로 설정함으로 ‘자유’의 포기를 정당화하였던 것이다.
7. 아렌트는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주었던 미국혁명에 더 좋은 평가를 내린다. 그것은 유럽과는 다른 빈곤의 고통이 덜했기 때문에 가능한 조건이었다. 미국혁명에서는 ‘자유’에 대한 추구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된다. 미국의 권리장전은 모든 정치권력에 대한 영구적인 제약적 통제를 제도화하였고 정치제체와 정치권력에 대한 기능을 체계화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은 “자유의 확립으로부터 고통받는 인간의 해방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자, 그 혁명은 인내의 장벽을 붕괴시켰고 불행과 고통의 파괴력을 대신 해방시켰다.”
8. 프랑스 혁명 지도자들의 도덕과 해방, 사회정의에 대한 목표는 그들의 의지대로 실현될 수 없었다. 오히려 거대한 격류와 같이 터져버린 하층계급의 분노는 통제할 수 없었으며 프랑스를 뒤흔든 혼란은 다시 보수파들의 반동(테르미도르 반동)을 성공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과 그 이후 연속된 프랑스 혁명들의 위대한 시민적 정신을 칭송하지만 그것이 갖고 있는 위험에는 무지하였다. 비록 에드먼드 버크와 같은 위대한 보수 정치학자의 냉철한 시선도 있었지만, 혁명의 정신은 비난보다는 추앙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아렌트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평가를 통해 선의의 시도가 때론 원치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의 변동을 확인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은 빈민 대중, 즉 전체 인간의 압도적 다수를 가난한 사람으로 명명했고, 이들을 분노한 사람으로 변화시켰는데, 이들을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당시 사람들의 표현대로 비참한 사람들(레 미제라블)의 상태로 다시 빠지게 내버려 두었다.”
9. 아렌트가 말하는 혁명의 핵심적인 의미, ‘새로운 시작, 자유, 행위’에 대한 강조는 혁명이 실제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정치적 영역에서 영향력을 획득하고 공적인 영역에서 변화를 추동해야 함을 말해준다. 혁명의 우선순위는 정치적 영역이며 제도와 체제의 정립이 중요하고 이 과정에서 섣부른 도덕적 관점이 정치적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아렌트의 견해는 혁명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해방이라는 마르크스적 시각에 대한 반론이라는 점에서, 혁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는 지금, ‘촛불혁명’이라고 명명하며 떠들썩하게 외치던 정치적 변화가 불과 몇 년 만에 급격하게 반동의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 이때, ‘새로운 시작’과 ‘공적인 자유’에 방점을 두고 있는 아렌트의 혁명론은 분명 차분하게 점검해 볼 가치가 있는 관점이다.
첫댓글 - 시대의 변화는 어느 쪽으로 혁명을 이끌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