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 - 여호와 이레 (창 22:7-8)
(4) 아브라함은 사환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5)고 지시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엿보게 된다. 그가 사환에게 그와 그의 아들이 함께 다시 돌아오리라고 말한 것에 유의하라.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할 것을 마음먹고 있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죽음에서 살리시리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이 위대한 노인의 생애에 있어서 두가지 가장 중요한 요점은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의 독생자의 초자연적 탄생에 관하여 하나님을 믿음(롬 4:18-21).
② 하나님의 독생자의 초자연적 부활에 관하여 하나님을 믿음(히 11:17-19).
(5) 이삭은 그때 "내 아버지여…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오늘날까지도 공포와 혼돈 가운데 있는 세상이 물어보는 질문이다. 어디에 그 양이 있는가? 어디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찾을 것인가? 세상은 옳은 질문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잘못된 것을 찾고 있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방면에서 이 어린 양을 찾고 있다.
① 교육의 양
② 선행의 양
③ 국제연합의 양
④ 세례의 양
⑤ 교회의 일원이 되는 양
그러나 구원의 양은 위에 적은 곳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다.
(6)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 속에서 이 늙은 족장은 그의 아들에게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라고 부드럽게 말한다. 이 한 문장은 성서의 완전한 요약이다. 신학적으로 다음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① 하나님은 그 자신을 위하여 양을 준비하실 것이다. 즉 그것은 양이 하나님께로부터 올 것이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은 양 대신에 자신을 준비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바쳐질 양은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리라.
둘 다 옳은 해석이다. 왜냐하면 신약성서에서 양쪽의 뜻이 다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7)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그 제단에 바치려고 외아들을 묶었다. 이 짤막한 설명을 볼 때 이삭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삭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어린 소년이 아니고 아마 완전히 성장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진해서 아버지가 자기를 결박하도록 내어주고 죽음의 제단에 바쳐지도록 내맡겼다(창 22:9).
(8) 바람이 휘몰아치는 산꼭대기에서 이제 막 행동으로 옮겨지려는 숨막히는 장면을 하나님의 영이 우리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셨다.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 22:10).
그러나 그가 아들을 잡기 전에 하나님은 근처에 있던 수양을 보여 주시며 이삭 대신에 이 짐승을 제물로 바치도록 명하셨다. 은혜를 입은 아브라함은 이에 순종하고 이곳을 여호와이레라고 이름지었다.
(9) 여호와이레라는 칭하는 구약성서에 있어서 하나님의 위대한 이름들 중의 하나이며 그 문자적 의미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이다.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가? 기록된 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다음과 같은 특별한 은혜를 예비해 놓으셨다.
① 영원한 구원(창 15:6)
② 인도(창 12:1)
③ 용기(창 14:15)
④ 영적 축복(창 14:19)
⑤ 세상적 필요(창 13:2)
⑥ 사회적 안정(창 15:15)
⑦ 용서(창 20:17)
⑧ 만년에 얻은 자식(창 21:3)
⑨ 계속적으로 보호하심(창 15:1)
⑩ 하늘나라의 성을 약속(히 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