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장 18-25절. 십자가의 도는 지혜요 능력(표적)이라. 요약설교
1장 18-25, 인간적 지혜와 신비한 표적을 좇아 분당을 짓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 십자가의 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에 관해 전한 복음을 가리킵니다( 마 20:24-28).
이것은 특별히 바울의 구원체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딤전 1:12-16).
바울은 헬라 철학적 지혜와 유대 종교를 신봉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으나, 자기 같은 죄인 괴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인해 죄 용서함 받은 감사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볼로파의 헬라 철학적 지혜 추구나, 유대주의적 게바파의 표적과 능력 추구가 바울 자신이 회심하기 이전의 상태와 같이 어리석은 짓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때 바울과 아볼로는 에베소에 함께 있으면서 사이가 좋았으나(고전 16:12), 자칭 아볼로파 신자들은 바울 사도의 복음보다는 헬라 철학을 더 중요시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와 베드로는 서로의 사명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나(갈 2:9), 자칭 베드로파라는 신자들은 순수한 복음보다는 유대주의적 율법 규정들(장로들의 유전- 정결법 등)과 표적을 더 중요시 했습니다.
19절.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1. 기록된 바.
구약성경 이사야 29장 14절의 인용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당시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BC 722년), 남쪽 유다 왕국( 스기야 왕 당시)을 위협하고 있을 때, 유다 왕국의 소위 ‘지혜자’들은 유다가 애굽과 동맹을 맺어 앗수르에 대항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러한 인간적 지혜가 어리석음을 탄핵하셨습니다.
결국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주셔서 앗수르 군대를 멸절시키시고, 앗수르왕 산헤립은 본국으로 철수했다가 자기 아들에게 살해당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36-37장, 왕하 18-19장)
20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1. 지혜자
아볼로파는 특히 헬라 철학적인 지혜를 추구했는데(잘 아시는대로 ‘철학, philosopy’이란 ‘지혜를 사랑한다’는 말임), 이들은 아볼로가 구약성경만이 아니라 헬라 철학과 웅변에 능한 것을 자기들과 연관시켜서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고린도 도성에는 거리마다 자칭 ‘지혜자’라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인생 문제에 대해 상담하려는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해결 방법을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Aristides의 증언: NIV-SB)
2. 선비
문자 그대로는 유대인 ‘서기관들’을 가리킵니다.
아볼로는 구약성경에 능통했으므로(행 18:24), 아볼로파는 아볼로를 유대인의 서기관처럼 존경했던 것입니다.
2. 변론가
헬라 철학의 궤변론자들(sophists)과 같은 변론가를 가리킵니다.
실상 십자가의 도와 성경의 가르침을 떠난 철학적 변론은 궤변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인생 문제의 해결은 심령의 변화에 있지 궤변론자들의 말장난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1절.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1. 하나님의 지혜
20절에 나오는 ‘이 세상의 지혜’와 대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롭다고 하는 사람보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는 사람을 더 의롭다고 하시고 (눅 18:9-15),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어린아이와 같이 낮추는 자를 높이시며(마 18:4),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을 허락하십니다(마 5:3).
그리고, 세상에서 지적인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자에게나 미련한 자에게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자를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했고, 고린도전서 3장 18절에는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22절.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1. 표적(σημεῖα: sign)이란 자연법칙을 초월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기적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표적으로 주셨고, 엘리야와 엘리사도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비가 내리게 하고, 음식 표적을 행하고, 문둥병자를 살리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는 여러 가지 표적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 메시야가 오시면 모세 같은 표적을 행할 것을 기대하고, 예수님께도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마 12:38-39, 16:1-4, 요 20:30)
2. 헬라인은 ‘지혜’를 추구했습니다.
여기서 ‘헬라인’이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이 지혜란 자연과학적인 유익한 법칙과, 인간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의 지혜와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적인 지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추구했고, 헬라인은 자연과학적이고 인간 사회적인 지혜를 추구했습니다.
헬라인이 추구하는 철학(philosopy)이란 ‘지혜의 사랑’(φιλοσοφία)이란 뜻입니다.
공자가 가르친 ‘대학’(大學)이나 ‘논어’(論語)와 ‘중용’(中庸)도 인간관계의 지혜와 통치의 지혜를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1. 능력, 지혜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능력이시고( 롬 1:16), 어리석은 사람을 변화시켜 삶의 분별력을 갖게 하는 지혜이십니다( 30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
23절.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1.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유대인들은 군사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적군을 물리치고 유대왕국을 재건할 능력 있고 표적을 행하는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행 1:6 참조).
사도행전 5장 36-37절의 ‘드다’와 ‘갈릴리 유다’가 그러한 성격을 띤 가짜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나, 참 메시아 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니, 십자가의 전도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2.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헬라인이나 로마인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왕국을 설립한다고 하면서 범죄자로 십자가에 처형되었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했고, 이처럼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구세주라고 믿는 사람들을 무식한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4절.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1. 능력, 지혜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능력이시고( 롬 1:16), 어리석은 사람을 변화시켜 삶의 분별력을 갖게 하는 지혜이십니다( 30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
25절.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1. 아무리 헬라인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미련하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로써 미련하고 죄 많은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십니다.
아무리 유대인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나약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인류애로써 목숨을 대속물로 바치신 강한 분이시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도 죽음을 무릎쓰고 선교하게 만드는 강한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권면>
우리가 이 세상의 학문을 연구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세계와 진리를 탐구하여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적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교만하여, 십자가의 도나 계시적 진리를 경멸한다면 대단히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일반 학문도 열심히 탐구해야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성경에 계시해 놓으신 말씀과 복음 앞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날마다 새 힘을 얻고, 기도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이웃을 구원하고, 가정과 자녀가 잘 되는 복된 생활을 해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