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고개(930m):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광암리에서 인제군 상남면 김부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김부리 남쪽 골짜기에 황병나무가 무성하여 연유하여 명명된 지명이라고 하나 갑둔향토사적연구회에서는 싸움에서 항복한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김부대왕 통치 체제에 의한 싸움으로 유래된 지명일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원래는 황병골이란다. 우측 고개 아래에 있는 김부리(金富里)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아들이 이곳에 와 머무르면서 신라 재건을 이룩하고자 김부대왕이라 칭하고 군사를 모집 양병(養兵)을 꾀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김부(金富)는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56대)의 이름으로 신라가 패망하자 마의태 자가 이곳에서 신라의 국권수복운동을 벌이면서 이곳의 지명이 “김부리”가 되었다고 한다. 흔히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서 은둔했다고 역사적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왕건이 마의태자 의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서 지어낸 소문이며 실제로 마의태자는 이곳 김부리로 들어와 군대 를 양성했으며 설악산의 한계산성에서도 주둔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우측 금부교(인제군 상남면 김부리 386-3)방면 446번 지방도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마의태자(痲衣太子:912~?)는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의 황자로서 성이 김(金), 휘가 일(鎰), 자가겸용(謙用)인 태자는 신라56대 경순왕과 죽방왕후(竹房王后) 朴氏 사이에서 왕의9남 3녀 중 첫째 왕자로 917년에 태어났으며 경순왕의 5남인 김분과 함께 고려에 귀순하려는 아버지 경순왕을 만류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떠나 금부리에서 충신, 지사, 일민들과 함께 조국 광복의 숭념을 발의하였다. 國之存亡必有天命只合與忠臣義士收合民心自固力盡而後已豈冝以一千年社㮨一旦輕以與人 마의태자는 경순왕에게 나라의 존망의 천명에 달려 있기는 하지만 충신(忠臣), 의사(義士)와 민심을 수습해 스스로 지키다가 힘이 다한 후에 그만 두어도 늦지 않습니다. 어떻게 천녀의 사직(社稷)을 하루 아침에 남에게 넘겨줄 수 있답니까 (三國史記에서) 결국 경순왕의 뜻대로 나라는 왕건에게 넘겨지만 마의태자는 어머니 죽방왕후를 모시고 자 신을 따르는 충신 열사들과 처자를 거느리고 개골산에 들어가 망군대와 한계산성을 쌓고 조 국 신라의 광복 투쟁에 전념하였다. 신라 유민들에 의해 대왕으로 추대된 태자는 나라가 망한 것을 자책하고 조국광복의 결의를 굳게 하기 위하여 삼베옷을 많이 입었으므로 마의태자 또는 마의대왕이라 하였다.. 항려 유적지 한계산성, 갑둔의 5층 석탑, 김부리의 옥새바위, 대왕각, 대왕정, 술구미재, 다 물 장병총 등이 지금까지 남아 공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마의태자가 승하하시자 유민들 은 신전대왕각을 세워 위패(新羅敬順大王太子金公鎰之神位)를 모시고 해마다 음력 5월5일과 9월9일에 제사를 지냈는데 천년이나 계속됐다.
▲황병고개를 출발하여 우측 군사 도로따라 금부교를 향해 내려선다. 3km정도를 내려 서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실제 3.7km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