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이 일깨워 준 것"
1. 지난 7월경이었다. 극한의 폭염이 계속되면서 잎이 모두 시들고 가지 끝까지 말라버린 '해피트리' 한 그루를 보며 나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잘라낼 가지는 모두 잘라내고 화분을 건너방 한쪽 벽에 옮겨놓았다.
언젠가 다른 용도로 화분을 쓸 일이 생기면 치우려고 임시로 보관해 둔 것이었다.
그 방은 하루에 한두 번 문을 열고 그냥 지나치는 곳이라 평소에는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2. 그런데 오늘 아침이었다.
무심코 들어선 방에서 이상하게도 잘라낸 가지 아래쪽, 밑동으로 시선이 갔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곳에 작은 푸른 잎들이 여러 개 돋아나 있었다.
“어? 순간 눈을 의심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해피트리의 밑동에서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야! 고생했구나.”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넸다.
3. 그러고 보니 지난달, 화분의 흙이 너무 바싹 말라 있는 것이 눈에 띄어 마침 남은 물이 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금 부어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물 한 모금이 죽어가던 뿌리에 얼마만큼의 도움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그 작은 물 한 모금이 뿌리의 생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힘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4. 지난 4월 초순, 식목일을 전후하여 묘목 몇 그루를 사다가 화분에 옮겨 심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해피트리였다. 처음에는 새잎이 하나둘 벌어지면서 제법 싱싱하게 잘 자랐다.
무엇보다 나무 이름이 ‘행복’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어 나도 행복하다고 느껴었다.
그래서 다른 나무보다 더 눈길이 갔고, 더욱 애착이 갔다.
5. 하지만 6월경부터 시작된 극심한 폭염을 견디지 못했는지 물을 주어도 잎이 시들기 시작했다. 가지 끝도 하나둘 말라 들어갔다.
그렇게 죽은 줄 알았던 나무가 몇 달이 지나 다시 새싹을 내민 것이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긴 폭염도 지나가고 어느덧 9월 초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아무도 돌보지 않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은 푸른 생명을 다시 밀어 올린 해피트리의 생명력이 대견하고 경이롭게 느껴진다.
6. 그러고 보면 길가의 잡초들도 참으로 놀랍다.
보도블록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면서도, 비가 오고 햇살이 비치면 어느새 다시 고개를 내민다. 흙 한 줌 제대로 없는 곳에서도 푸른 잎을 피우고 때로는 작은 꽃까지 피워낸다.
나는 요즘 길을 걸을 때면 바닥에 난 작은 풀 한 포기도 될 수 있으면 밟지 않으려고 피해 간다. 작은 개미 한 마리가 길을 가고 있어도 발걸음을 옮겨 지나간다.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라도 피어 있으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미소를 짓곤 한다.
7. 생각해 보면 세상에 정말 필요 없는 존재가 어디 있을까.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풀 한 포기, 작은 벌레 한 마리도 저마다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있고, 나름의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열반경'의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는 말씀처럼,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깨달음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가르침이다.
또 부처님께서 태어나실 때 하셨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씀도 단순히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는 뜻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대체할 수 없는 하나의 생명이며, 그 생명은 저마다 존귀하다는 뜻으로 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8. 오늘 아침 '해피트리'의 작은 새싹을 바라보면서 문득 나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되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롭고 감사한 일인가.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결코 나 혼자의 힘만이 아니고, 햇빛과 공기(바람)와 물과 흙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과 인연의 도움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인연이 서로 의지하고 작용하면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연기(緣起)의 이치가 그러하다.
그러니 평범하게 흘러가는 하루도 결코 평범한 하루가 아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한 번뿐인 선물이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서 다시 돋아난 작은 새싹 하나가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크고 특별한 일을 해야만 삶이 의미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9. 오늘 만나는 한 사람에게 따뜻한 마음을 건네고, 길가의 작은 생명 하나라도 함부로 밟지 않으며, 내가 맡은 작은 일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것.
그렇게 하루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곧 삶에 대한 감사이며, 인연에 대한 보답이고,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10. '해피트리' 화분을 세면장으로 옮겨 오랜만에 물을 충분히 주고나서, 내 방의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가로 다시 옮긴다.
그리고 새롭게 돋아난 작은 푸른 잎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말한다.
“그래, 잘 살아냈구나. 나도 너처럼 끈질기게 잘 살아가야 겠구나. 고맙구나."
첫댓글 스님 해피트리의 소생을 축하드립니다.
싹을 틔우지 않는것이 여름을 살아내는해피트리 나름의 생존 방법이었나 봅니다.
자연의 신비로움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네요
해피트리와 함께 일일시호일 되시기 바랍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통찰력이 뛰어납니다.
좋은 댓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서 다시 돋아난 작은 새싹 하나를 보고
부처님의 깨달음까지 이어지네요.
감동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예. 그렇습니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꼈으니깐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