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군내면 용사님 이야기(17.8.30)
1)채희영(87), 포천이 고향이다
1.4후퇴때 국민방위군으로 편성되어 걸어서 양산까지 내려갔다
그러다 병들어 죽는 인원도 있고 방위병사건
때 집으로 돌아왔다
청방대로 활동하다 52년 10월15일 입대
제주도에서 훈련받고 21사단 65연대로 53년 3월20일 배치되었다
집에 편지 한장씩 써 오라해서 썻더니 행정병 해라해서 1대대 중화기중대 행정병 되었다
대대에는 노무자가 1개중대규모로 와서 나이도 많은 아저씨도 있는데 탄지고 밥지고 정말 고생하더라
고성 건봉산에 있을 때는 81밀리 박격포 소대는 대대 OP에 중대장과 함께 있었다
남강을 앞에 두고 있는데 쌍방간에 수시로 기습적인 침투를 한다
그래서 행정병들도 보초를 서게 되는데 인원이 없어 ★혼자 6시간이상 서 있을 때도 있었다. 이때는 중대 지역에 한 몇명 없어 정말 두렵기도 하더라
휴전되어 진부령에 있을 때는 눈때문에 고생하고 양구 서화리로 진지공사 나갔다 지뢰가 터져 산산조각이 나 죽었다
★외아들이 그런데 많이 죽는다
하지만 전사 보고를 하지않는 경우도 있다
이유는 잘 모른다, 다만 이상할뿐~~~
★휴전 후에 더 죽더라, 지뢰사고 나무하러 갔다가 죽기도 하고 안전사고로~~~
이때 박정희 장군이 5사단장 하는데 설화 사고로 많은 군인이 순직했다~!
2)유상호(89), 포천이 고향
6.25전에 포천에는 좀 배웠다하면 남로당이 되어 대부분 북으로 갔다
박헌영이 여운형등이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바로 보도연맹이다
1.4후퇴시 국민방위군으로 편성 되어 23일 걸어서 양산 웅상면까지 갔다
학교나 창고등에 분산되어 수용하고 어느 곳은 민간인 집을 이용하여 숙영지로 썼다
16교육대로 알고 있는데 이때 열병이 돌아 많이 죽어나갔는데 어디에 묻렀는지는 모름
그러다 방위군 사건이 터져 집으로 죽지않고 돌아와 청방이 되었다
무기는 99식 소총을 들고 청방대장 통제를 받는데 패잔병이 주변에 바닥빨갱이와 합세하여 수원산이나 주변에 밤이면 출몰함
★포천에서 창수면으로 가는 물어 고개 일대에는 우익인사들을 잡아다 수없이 죽인 곳이다
그러니 여기에 대한 보복으로 또 빨갱이집 사람들이 죽었다
완장차고 날뛰던 사람은 좀 못 사는, 못 배운 사람들인데 인민군이 내려 왔을 때는 이미 명단을 가지고 와서 이장 면장 무슨 위원장등 직책을 주더라~~
청방때는 포천일대를 경찰이나 군인보다 더 활동적으로 방어했다
그러다 징집으로 52년 10월 15일 입대했다
제주도에서 훈련받는데 기상이 나빠 많은 환자들이 발생했다
여기서도 "이"로인한 이질이나 장티푸스등 죽어나가면 일정한 곳에 묻는데 십자가도 있었다
주변에는 여자들이 고구마를 팔기도 하고~
돈이 있어야 사 먹지~~~
제주도는 4.3사건여파로 마을 몇개를 모아서 한 마을을 만들고 보초를 서고 있더라~
교육을 받고 21사65연대3대대로 LST타고 속초가서 고성 건봉산일대에 배치되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남강 너머에 작은 200고지가 있는데 1개소대를 구성하여 침투해 들어 가는데 하필 뽑히어 죽다 살아왔다
인민군이 박격포를 쏘아대는데 많이도 죽어 나감. ★전사한 동료는 모두 수습해 왔다~!
그런데 북한군은 무기가 별로 없더라
3) 이재구(86), 51년 6월에 제주도 훈련소
다음에 부산 통신학교에서 교육받고 VHF병
61통신운용대대로 배치되어 강원도에도 갔다
그러다 제주도에 다시 갔더니 훈련소 인근에 아직도 십자가가 그대로 있더라
그때는 이가 많아서 머리에 하얗게 알이 붙어 있고 눈병도 많았다~~!
4) 조춘목(87), 앞의 유상호/채희영님과 활동하다 같이 군에도 갔다
국민방위군으로 갈때는 50.12.20에 걸어서 출발하여 51.2.11에 양산에 도착했다
21사에는 66연대로 배치되었고 큰 전투는 안하고 휴전때까지 소대규모로 침투해 들어가고 적들도 침투해 오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