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와 비아는 어떻게 다른가?
그 동안 카페에 들어와서 좋은 글들을 읽기만 했습니다. 저는 한역아함을 읽으면서 정리되지 않는 개념이 있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역아함에는 無我와 非我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이 두 개념은 한자의 뜻으로는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니까야에서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이 두 개념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시면 기쁘게 듣겠습니다.
[각묵스님 답변]
지금에야 까페에 들어와서 질문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우선 생각나는대로 제 생각을 한 번 적어봅니다.
먼저 한역에서 無我와 非我라는 표현은 문맥에 따른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온은 내가 아니요 내것이 아니라는 문맥에서는 비아(내가 아님)로 한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경에서 무아와 비아는 큰 차이점 없이 쓰였습니다.
그러나 요즘 일본에서 나까무라 하지메 교수님 같은 분들이 무아라는 전통적인 번역 대신에 비아라는 역어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다분히 무아(자아가 없다)는 표현 대신에 비아(자아가 아니다)라는 이해를 선호합니다. 이런 이면에는 자아가 없다는 표현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자아가 아니라는 다소 편안한? 어법을 더 선호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은 분명하게 무아(자아가 없다)로 옮겨야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비아(자아가 아니다)라는 표현은 자아가 아닌 다른 어떤 실체를 상정하는 어법이기 때문입니다. 인도 부파 역사에서도 독자부에서는 초기경에서 오온무아(오온에 자아=실체가 없다)라는 표현을 들면서 "부처남께서는 오온은 무아라고 하셨지만 뿌드갈라(pudgala=人=個我=진인)를 설하셨다. 그러므로 뿌드갈라(진인)은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비아라는 해석은 이런 자아는 없지만 자아아닌 또 다른 무엇은 없는 것이 아니다는 오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한다고 봅니다.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하는가, 업의 과보는 누가 받는가, 업의 과보를 받는 자가 없다면 도덕적 인과를 부정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은 이미 불멸 직후부터 불교교단 내외에서 큰 논란 거리였고 그래서 불교 제파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여기에 이론적인 배경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특히 학문적으로 불교를 접근하는 사람들은 이런 무아와 윤회라는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듯한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많은 고뇌를 하게 되었고 그런 배경에서 하지메 교수님은 비아를 선호했다고 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불교에서는 물심의 제현상을 흐름으로 본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답이 됩니다. 찰라생멸을 거듭하는 흐름으로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 초기불교의 큰 특징입니다. 매순간의 흐름은 서로 조건지워져있습니다. 흐름이 윤회입니다. 한 순간에 일으킨 의도적행위(업)는 다음 순간의 흐름을 조건짓습니다. 이렇게 업은 흐름 속에서 구현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삶은 무시무종의 흐름입니다. 이것이 무아와 緣起를 근본 가르침으로하는 불교의 입장입니다.
생각나는데로 적어서 뜻이 바르게 전달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아는 불교의 근본입장입니다. 이것에 대한 애매한 태도는 부처님 가르침을 오해하는 출발이라 봅니다.
이 정도로 답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미흡한 점이 있다면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 좋은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각묵 합장
[초불연]
원불사한국불교개혁源佛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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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