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 구경
나는 요즘 날씨도 무덥고 해서 매일 잠깐씩 용궁에 다녀온다. 바다 속이라서 시원하고 경치도 좋다. 오고가는 길에 복어, 돌돔, 쥐치, 능성어, 뱀장어, 게, 불가사리 등을 만나는데, 횟집 수족관이나 해변 모래밭에서 볼 때와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모든 물 속 생물이 활발하게 움직여 생동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가끔씩은 서로 영역 다툼을 하느라고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물고기들은 어찌 그 많은 어종들이 몸의 모양부터 입의 생김새, 지느러미의 위치, 헤엄치는 방법까지 서로 다 다른지 보면 볼수록 더욱 신기할 뿐이다. 넓적한 흰 몸에 일곱 개의 검은 줄이 세로로 선명하게 그어져 있는 돌돔은 뾰족한 입안이 온통 뼈로 되어있어 딱딱한 게 껍질도 단번에 부수어 잡아먹을 수 있고, 가로로 길면서 우아한 파스텔 조의 밤색을 띤 몸통에 세로로 일곱 개의 흰 줄이 있는 능성어는 입이 얼마나 큰지 한번 벌리면 제 머리보다 더 큰 먹이도 삼킬 수 있을 정도이며, 뽀뽀하는 어린 아이처럼 항상 입을 앞으로 쏙 내밀고, 엷은 등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얌전히 헤엄치는 쥐치는 입이 작아 작은 먹이도 한 번에 못 삼키고 마치 병아리처럼 콕콕 쪼아서 뜯어먹으며, 동그란 입을 항상 벌리고 다니는 복어는 마치 숨이 턱까지 찬 육상 선수처럼 입 안의 혀까지 들썩이며 숨을 몰아쉰다. 특히 복어는 머리 쪽이 크고 꼬리 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가늘어져 가분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아가미 바로 뒤에 있는 2 개의 가슴지느러미, 몸통 위아래의 등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잠시도 가만있지 않아 방정맞아 보이지만, 가장자리는 황금색이고 가운데는 코발트색인 눈동자는 정말 환상적으로 예쁘다. 내가 만난 복어는 모두 한결같이 양쪽 가슴지느러미 뒤에 각각 하나씩, 그리고 등지느러미가 난 곳에 또 하나, 합하여 3 개의 검은 점을 갖고 있어, 크기로만 구분될 뿐 모양만으로는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 이외에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해초 사이를 누비는데 유선형의 그 날렵한 몸매와 때론 천천히 때론 재빠르게 움직이는 몸놀림은 보는 이의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게들은 평상시에는 바위틈이나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먹이를 보았을 때만 살금살금 기어 나와 집게발로 얼른 집어 들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도중에 큰 고기를 만나면 기겁을 하여 집게발을 양쪽으로 높이 치켜들면서 대항을 한다. 위기가 지나면 양 집게발을 이용하여 양식 스타일로 식사를 하는데, 어찌나 맛있게 냠냠거리며 먹는지 보고 있는 나도 침이 먹어갈 정도이다. 그에 비하면 소라껍질을 집 삼아 이고 다니는 소라게(집게)는 단단한 껍질을 믿어서인가 큰 고기가 곁에 있어도 별 두려움 없이 항시 이리저리로 돌아다니며 해초에 올라붙어 뜯어먹기를 즐긴다.
양식장의 굴과 조개를 잡아먹고 낚시꾼의 미끼나 따먹어 인간에게는 천덕꾸러기일 뿐인 불가사리도 바다 속 경치를 꾸미는 데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푸른 색, 오렌지 색 등 다양한 빛깔의 그 놈들이 없었다면 용궁 세계는 그 멋이 훨씬 덜 했을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징그럽달 수도 있는 뱀장어마저도 물속에서의 그 유연한 움직임만은 마냥 우아할 뿐이다. 그리하여 한번 바다 속에 들어가면 어찌나 마음이 평화로운지 다시 뭍으로 나오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여러분은 내가 요즘 스킨 스쿠버를 즐기는가 추측하시겠지만, 그것은 아니다. 내가 다니는 용궁은 우리 집 수족관 속이며, 지금까지 그 이야기를 한 것이다. 수족관 유리에 눈을 바짝 갖다 대고 보면 나도 마치 물속에 들어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바다 고기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약 3 주 전 쯤 부터인데, 마침 학교 쓰레기장에서 누가 내다 버린 작은 수족관 하나를 주웠기 때문이다. 크기는 가로가 50cm, 새로가 30cm, 높이는 40cm 정도이다. 혹시 새는 곳이 있는가 하여 물을 가득 담아 시험해 봤는데 멀쩡하기에 당장 그 날 저녁에 가포, 덕동을 지나 군령이라는 해안가 동네에 가서 깨끗한 바닷물을 떠다 채웠으며, 그 다음 날에는 산소 공급기와 여과기를 사다 달았다. 그리고는 횟집을 돌아다니며 작은 물고기를 얻어 오고, 진동 광암 해수욕장, 고성 상족암 등으로 돌아다니며 게, 불가사리 등을 잡아다 넣었다. 그리고 낚시점에 가서 냉동 크릴 새우를 한 덩이 사다가 조금씩 잘라서 먹이로 주는데 모두 잘 받아먹어 나를 흐뭇하게 한다. 그 후로 일주일에 한번쯤 물을 갈아주는데 물고기들이 그 동안 몇 마리 죽긴 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사는 편이라서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나는 주로 가족들이 모두 잠든 자정 이후에 용궁 여행을 하는데, 매번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다 속 풍경을 즐긴다. 오늘밤에도 은밀히 용궁에 다녀올 예정이다. 여러분에게도 권하고 싶다.
(2001. 7. 19.)
(경남대 김원중)
선형이의 게 훈련
갑자기 선빈이의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곧 이어 선형이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구나’ 하며 쫓아가니 목청을 높여가며 서로 먼저 나에게 일러바치려고 난리다.
“아빠, 오빠가 때렸어. 유진이랑 놀고 있는데 괜히 들어와서 때렸어. 엉엉”
“그게 아니고, 선형이가 게를 죽이려고 했단 말이에요.”
“아냐, 죽이려고 한 게 아니고 훈련시키고 있었단 말야.”
“이 바보야, 그러면 게 죽어.”
“아냐, 말도 잘 듣고, 우리랑 재미있게 놀고 있었단 말야.”
사연인 즉 선형이가 거실에 있는 수족관에서 게 한 마리를 건져 내 훈련을 시켰고, 그것을 본 선빈이가 빼앗아서 수족관에 다시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선형이에게 무슨 훈련을 시켰느냐고 물으니, 침대나 TV 위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을 시켰으며, 게가 곧잘 따라 했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이미 게가 수족관에 들어간 뒤여서 그 장면을 볼 수는 없었는데, 사실 나는 게 훈련 모습이 몹시 궁금했다. 선형이 말대로 게가 훈련을 잘 소화해 냈다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그야말로 해외토픽 감 아닌가? 그럼 나도 그 게 덕분에 떼돈도 벌고, 유명 인사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야무진 기대로 아이들이 다 잠든 후에 혼자 다시 게를 꺼내어 확인해보려 했는데, 아쉽게도 그 날 저녁 그 게가 죽은 채로 발견돼 나의 꿈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수족관 이야기가 나온 김에 현황을 말씀드리자면, 현재 우리집 어항 속에는 뱅에돔 새끼로 보이는 엄지손가락만한 물고기 3 마리, 망둥어 수십 마리, 수미(지역에 따라 술미, 술뱅이, 혹은 무지개 놀래미라고도 함. 표준어는 용치놀래기) 1 마리, 새우 대여섯 마리, 불가사리 1 마리, 말미잘 8 마리, 게와 집게 수십 마리가 살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많던 복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다 죽었다. 물은 일주일에 한번 군령이나 욱곡 바닷가에 가서 해수를 떠다가 갈아주며, 먹이는 냉동 크릴새우를 한 조각씩 잘라 주고 있는데 요즘은 선빈이가 그 일을 맡아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어종에 따라 수족관에서 잘 사는 놈과 금방 죽는 놈이 있으며, 크기에 따라서도 큰 고기보다는 작은 고기가 좁은 수족관에서는 잘 살며, 또 낚시로 잡은 물고기는 인간에게 속은 경험 때문인지 먹이를 잘 먹지 않아 굶어죽으므로 잠자리채나 바구니, 혹은 통발로 잡은 물고기가 살리기 쉬운 것 같다. 망둥어는 살기는 잘 사는데 잘 움직이지 않고 바닥이나 벽에 가만히 붙어 있기만 해서 보는 재미가 덜 하다. 남해안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불가사리는 몸 전체가 오렌지 빛이 나는 놈과 마치 등에 칠한 파란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붉은 밑바탕이 드러난 것처럼 보이는 놈의 두 종류가 있는데 살기는 후자가 더 잘 산다. 말미잘은 무지막지하게 힘으로 뜯어내면 곧 죽으므로 굴 껍질에 붙은 놈을 골라 굴 껍질 채 채집해 와야 살릴 수가 있다. 말미잘은 보기가 참 좋으니 꼭 길러보시기 바란다. 혹시 나와 같은 취미를 갖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001. 8.29.)
(경남대 김원중)
첫댓글 안그래도 물고기들을 잘 못키워서리 벽걸이 어항을 버릴까 했었는데 다시 한번 시도를 해봐야 겠네요...
헐퀴 갯물 구하기 쉬우면 하시고 안그럼 비추입니다 ㅠ
너무 불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