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에 관한 이야기
소리하는 이가 혼자 서서 몸짓을 해 가며 노래와 말로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긴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우리 전통 음악의 한 갈래가 판소리이다.
이것에는 북 반주가 곁들여지며, 북 치는 이는 소리에 맞추어 "얼시구" 하고 외쳐서 흥을 돋구기도 한다.
판소리가 지금은 흔히 극장놀음이나 방안놀음으로 벌어지지만, 옛날에는 판놀음으로 벌어졌다.
'판놀음'이란 여러 패의 놀이꾼들이 너른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판을 짠다'하여, 순서대로 소리, 춤, 놀이 따위를 짜서 벌이는 것을 한데 묶어 일컫는 말이다.
판놀음으로 벌이는 놀음에는 '판'이란 말이 붙는다.
판놀음에서, 줄타기는 '판줄', 농악은 '판굿', 춤은 '판춤', 염불은 '판염불', 소고 놀음은 '판소고'라고 한다.
따라서 판놀음에서 하는 소리가 '판소리'이겠다.
그러면 '소리'는 무엇이며, '소리하기'란 무엇일까?
"소리 한자리 해라", "소리를 잘한다"와 같은 예스러운 표현에서, 또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김매기소리, 상여소리와 같은 말에서 우리는 그것이 '노래' 또는 '노래하기'와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판소리라는 말은 이 나라의 토박이말이다.
옛날에는 이를 잡가, 극가, 창가, 본사가 따위의 한자말로 쓰기도 했으나, 요즈음에는 그런 말들을 쓰지 않는다.
판소리하는 이를 옛날에는 창우, 가객, 광대 또는 소리꾼이라고 불렀는데, 오늘날에는 일정하게 쓰는 말이 없다.
북치는 이는 고수라고 부른다.
판소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소리한다'고 하는가 하면, 말하는 것을 '아니리한다'고 하고, 몸짓을 하는 것을 '발림한다'고 한다.
'발림이 좋다'는 말은 '너름새가 좋다' 또는 '사체가 좋다'라고도 한다.
그리고 북치는 고수가 북을 치면서 알맞은 대목에서 "얼씨구, 좋다!" 또는 "으이, 좋지!" 따위의 말을 외치는 것을 '추임새한다'고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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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공연 형태
판소리는 본디 가객이 혼자 벌이는 것이다.
요즈음 극장에서 여러 사람이 서양 오페라에서와 같이 배역을 나누어서 연기를 하면서 부르는 신식 판소리가 있는데, 이것은 판소리라고 하지 않고 ‘창극’이라고 한다.
이 창극의 형식은 1900년대에 중국의 창희 또는 일본 신파 연극의 영향을 받고 생겨난 것으로, 판소리계에서는 이 창극을 판소리의 ‘발전’으로 보지 않고, ‘변질’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옛날에 판소리는 집안의 큰 잔치에서나 마을의 큰 굿에서나 관아의 잔치 자리에서 흔히 불렸다.
판소리가 불리던 판놀음은 보통 큰 마당이나 너른 대청에서 벌어졌다.
먼저 줄꾼이 줄을 타고, 재주꾼이 땅재주를 넘고, 춤꾼들이 춤을 춘 뒤에 끝에 가서 소리꾼이 소리를 했는데, 판소리가 벌어지는 대목은 따로 ‘소리판’이라고 일렀고, 소리판이 벌어지는 곳을 ‘소리청’이라고 했다.
소리판이 마당이나 들에서 벌어지면 멍석이 깔린 위에 돗자리가 깔리고, 큰 마루에서 벌어지면 돗자리만이 깔리고, 그 둘레에는 구경꾼들이 삥 둘러앉는데, 한편에는 지체 높은 어른들인 좌상객들이 자리를 잡는다.
가객은 돗자리 위에서 좌상을 바라보고 서고, 고수는 북을 앞에 놓고 가객을 마주보고 앉는다.
가객은 두루마기와 비슷한 창옷을 입고, 갓을 쓰고, 손에 부채를 들고 서서 소리하되, 판소리 사설의 상황에 따라서 앉기도 하고, 여러 가지 몸짓도 하며, 우스운 말로 구경꾼을 웃기기도 하고, 슬픈 소리 가락으로 구경꾼을 울리기도 하며 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가객의 소리가 무르익으면 구경꾼들도 흥이 나서 “얼시구” 하고 추임새를 한다.
구경꾼들은 아침부터 날이 저물도록 또는 저녁부터 밤이 새도록 넋을 잃고 소리를 듣는데, 겨울철에는 눈이 내려도 밤새도록 자리를 뜰 줄 몰랐다고 한다.
판소리의 기원과 발전
판소리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마을의 큰 굿 끝에 벌이는 판놀음에서 놀이꾼들이 여러 놀이를 벌이는 동안에 소리 광대가 한 자리 끼어서 소리도 하고, 재담도 하고, 몸짓도 하며 긴 이야기를 엮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전해지는 이야기를 소리 광대가 소리와 아니리로 엮는 공연 형태의 기원도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는데, 판소리처럼 소리와 아니리를 섞어 부르며, 소리의 장단이 판소리와 비슷한 서사무가의 공연 형태를 빌어 온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판소리는 조선 왕조 전기에도 불렸을 것으로 짐작되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이 없다.
지금까지 발견된 판소리 사설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영조 30년인 1754년에 호가 ‘만화’인 유진한이 한시로 적은 만화본 <춘향가>이다.
이를 보더라도, 적어도 숙종 무렵에는 판소리가 틀을 잡게 되었을 것이다.
영조, 정조 때에는 우 춘대, 하 은담, 최 선달과 같은 명창들이 판소리 열두 마당을 불렀던 것 같은데, 그때의 판소리는 길이도 짧고, 사설이나 음악이 소박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순조 무렵에는 ‘여덟 명창 시대’라고 하여 권 삼득, 송 흥록, 모 흥갑, 염 계달, 고 수관, 김 제철(또는 김 계철), 신 만엽, 주 덕기, 박 유전과 같은 명창들이 나서 갖가지 장단과 조를 짜서 판소리의 음악 수준을 크게 발전시켰다.
권 삼득은 설렁제를, 모 홍갑은 강산제를, 염 계달과 고 수관은 경드름과 추천목을, 김 제철과 신 만엽은 석화제를 짜넣었고, 가왕이라고 불리던 송 흥록은 진양 장단과 우조, 계면조를 발전시켜 판소리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끌어 올렸다고 전해진다.
판소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승되어 왔는데 전라북도에서 시작되어, 전라남도를 거쳐,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동쪽의 운봉, 구례, 순창과 같은 곳에서는 동편제가 많이 불렸는데, 씩씩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이며, 송 흥록을 시조로 삼는다.
섬진강의 서쪽인 광주, 나주, 보성과 같은 곳에서는 서편제가 많이 불렸는데, 서편제의 특징은 정교하고 감칠맛이 있다는 것이다.
서편제 가운데 박유전제는 그 시조로 삼고 있는 박 유전의 호를 따서 ‘강산제’라고도 한다.
중고제는 책을 읽는 듯한 ‘송서제’와 비슷한 점이 많은 소리제로서, 소리의 높-낮이가 분명하다.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많이 불렸는데, 염 계달, 김 성옥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판소리가 이와 같이 서너 가지 제로 나뉘어 발전된 것은 여덟 명창 시대에 시작된 일인데, 이것으로써 그때 명창들의 활동이 독보적이면서도 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철종 무렵은 이른바 ‘후기 여덟 명창 시대’로, 박 만순, 송 우룡, 김 세종, 정 춘풍, 장 자백, 이 날치, 정 창업, 김 정근, 한 송학과 같은 명창들이 나왔는데, 박 만순, 송 우룡, 김 세종, 장 자백은 동편제를, 이 날치, 정 창업은 서편제를, 김 정근, 한 송학은 중고제를 발전시켰다.
고종 무렵에는 박 기홍, 김 창환, 김 찬업, 송 만갑, 유 성준, 김 석창, 이 동백, 김 창룡, 김 채만, 정 정렬과 같은 명창들이 활약했는데, 이 가운데 김 창환, 송 만갑, 이 동백, 김 창룡, 정 정렬이 ‘다섯 명창’으로 꼽힌다.
이 다섯 명창의 뒤를 이어 장 판개, 김 정문, 공 창식, 박 중군, 임 방울, 김 연수, 이 화중선, 박 녹주와 같은 명창이 나왔으며, 지금은 김 여란, 정 광수, 박 동진, 박 초월, 김 소희, 박 봉술, 한 승호, 정 권진과 같은 명창들과, 고수에는 김 명환이 무형 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판소리 사설의 형식과 내용
판소리는 노래로 하는 소리와 말로 하는 아니리가 섞여서 엮어진 극적인 음악이다.
그런데 그 사설을 보면 등장 인물의 대사뿐만이 아니라 장면의 해설까지 들어 있으니 ‘서사적인 음악’이라고 하겠다.
판소리가 말로만 엮인 것이 아니고 소리로도 불리기 때문에 사설은 산문체보다는 운문체에 가깝다.
사설을 그대로 적은 소리책뿐만이 아니라, 사설을 따서 엮은 판소리계 소설도 또한 운문체에 가까운 점은 일반 옛날 소설이 대체로 산문체인 것과 대조가 된다.
판소리는 민중이 구경꾼이 되고, 광대가 연희자가 되어 출발했던 것이라, 솔직하고도 해학적인 인간관과 미의식이 담긴, 서민들의 생활 이야기로 된 경우가 많다.
이 점은 판소리계 소설이 아닌 일반 옛날 소설의 내용이 흔히 충신, 효자, 열녀를 제재로 삼고,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는 것이 많은 점과 대조가 된다.
기타 판소리에 관한 이야기
- 판소리의 발성법
세계의 모든 민족은 저마다 고유한 창법을 가지고 있다.
서양 음악에서 가곡이나 오페라의 발성법과, 우리 전통 음악에서 가곡이나 판소리나 범패의 발성법은 서로 사뭇 다르다.
서양 음악의 가곡이나 오페라 발성법에서는, 이른바 벨칸토 창법이라 하여, 목을 둥글게 열고, 머리와 가슴이 울리게 하고, 배에서 숨을 올려 내는 맑은 소리를 으뜸으로 친다.
판소리의 발성법은, 내는 소리가 통성이라 하여, 배에서 숨을 올려 지르는 것임에서는 서양 발성법과 같으나, 목을 다스려서 약간 거칠고 텁텁한 소리를 질러 내며, 코의 울림보다는 입과 가슴의 울림에 더 힘쓰는 점이 다르다.
음질은 가객에 따라 달라서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 가운데서 껄껄한 수리성, 단단한 철성, 밝고 맑은 천구성을 좋게 치나, 되바라진 양성, 발발 떠는 발발성, 콧소리가 나는 비성 따위는 좋지 않은 것으로 친다.
판소리의 발성법을 수련하여 득음의 경지에 이르기는 매우 어렵다.
옛날에는 흔히 깊은 산이나 폭포 밑이나 땅굴 속에서 여러 해 동안에 걸쳐 목에서 피가 나도록 소리를 질러서 수련을 했다.
이렇게 수련을 하다가 목이 상해서 좌절되고 마는 일도 있지만, 그 고비를 넘겨 목이 트이면 좋은 목을 얻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거쳐 닦은 목이라야 여러 시간에 걸쳐 판소리를 해도 목이 막히는 일이 없다.
서양 음악의 발성법으로 부르는 서양 노래는 시작하는 대로 곧 좋은 소리가 나지만, 판소리의 발성법으로 익힌 판소리는 소리를 시작하여 삼십분이나 한 시간쯤이 지나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게 된다.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판소리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만고강산>, <진국명산> 따위의, 보통 빠르고 평이한 목으로 부르는 단가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판소리의 장단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은 크게 나누어 진양, 중몰이, 중중몰이, 잦은몰이, 휘몰이, 엇몰이, 엇중몰이가 있다.
이 장단들은 박자, 빠르기, 북치는 법이 서로 다른데, 판소리 사설에 나타나는 한가하거나 긴박한 상황에 따라 느린 것이나 빠른 것을 가려 써서 소리를 엮어 나간다.
북은 가객의 소리에 따라 치는 부분이 달라진다.
가객이 부르는 소리의 악절 첫머리에는 채로 오른편 가죽을 세게 치고, 가객이 소리를 밀고 나갈 때에는 채로 북통의 앞을 조금 세게 치고, 가객이 소리를 달고 나갈 때에는 채로 북통의 꼭대기 오른편 모서리를 가만히 굴려 치고, 가객이 소리를 맺을 때에는 채로 북통의 꼭대기 한가운데를 매우 세게 치고, 가객이 소리를 풀 때에는 왼손바닥으로 북의 왼편 가죽을 굴려 친다.
- 판소리의 조
조’는 가락의 짜임새나 꾸밈새나 모양새에 따라 지어지는 음악적인 특징인데, 우조, 평조, 계면조, 경드름, 설렁제, 추천목 따위의 종류가 있다.
서양 음악에서 대체로 장조로 된 음악은 기쁘고 명랑하고 씩씩하고 남성적이지만, 단조로 된 음악은 슬프고 어둡고 부드럽고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이렇게 장조로 된 음악과 단조로 된 것이 서로 다른 것처럼, 이들 조도 특징이나 그것이 자아내는 느낌 따위가 서로 다르다.
- 대구대학 한맥회 판소리 다섯마당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