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기나이트>(1997), <매그놀리아>(1999), <펀치 드렁크 러브>(2002) 등 걸출한 작품들을 연달아 내놓는 감독으로 유명한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은 2008년 아카데미시상식을 위시해 국제적 조명을 받은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2007)를 통해 미국의 서부개척사로 카메라 앵글을 돌린다. 부패한 오일 패밀리에 대한 업톤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1927년 원작소설 <오일!>(Oil!)을 토대로 미국의 실제역사와 소설적 허구를 혼합해 대니얼 플레인뷰(대니얼 데이-루이스 분)라는 인물에게 불어넣은 것.
앤더슨 감독의 캐릭터 대니얼 플레인뷰는 친구도 애인도 진정한 동료도 없는 인물이다. 사실 그는 자기 외에 아무도 믿지 않을뿐더러 모든 사람을 증오한다. 그의 곁엔 오직 입양한 아들 H.W. 플레인뷰(딜런 프레시어 분)만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어디 출신인지 모를 플레인뷰는 연락을 취하는 가족도 없다. 어느 날 이복동생이라며 생면부지의 헨리(케빈 제이. 오코너 분)가 등장하자 거의 태연하게 맞아들이지만,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그는 결국 헨리가 가짜임을 알아채고 제거해버린다. 플레인뷰의 단한가지 인생의 목표는 석유로 떼돈을 벌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부유한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거대한 부를 향한 집념, 이는 엄밀히 서로 다르지만 오슨 웰스의 1941년 명작 <시민케인>(Citizen Kane)를 직감적으로 소환케 한다.
영화는 불신과 증오로 가득찬 석유업자 대니얼을 축으로 신앙을 빌미로 주민들의 신망을 얻으며 대니얼의 거대자본에 빌붙는 목회자 일라이 선데이(폴 다노 분)를 대립각에 놓고 시종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땅과 석유, 돈을 위해 종교적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이는 두 인물의 주위와 황량한 서부의 배경엔 신비로운 영적 기운과 불길한 분위기가 시종 감돈다.
영화의 도입부,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고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스산한 느낌을 주는 스트링이 효과음조로 가늘고 날카롭게 들려온다. 금을 발견하고 다친 몸을 이끌고 올라오는 동안 역시 스트링이 깔리는데, 점점 고조되며 '웅'하고 울린다. 마치 사이렌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상승을 반복하는 현의 울림, 그러다 다시 시들해지고 다시 고조되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울부짖는 것 같은 현악은 무언가 불확실한 공포감을 증폭시킨다. 이때부터 도안을 해 굴착기를 설계하고 그걸로 땅을 파 기름을 퍼 올리기까지 배후에 깔리는 음은 극적인 긴장과 위협감을 끊임 없이 주입한다. '조스'(Jaws)의 등장 또는 <샤이닝>의 도끼질 장면에 상응하는 수준의 긴장과 싸늘한 공포감이 엄습한다. 검은 기름을 길어 올려 퍼붓는 장면에 깔리는 현의 어두운 톤은 기름의 색채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시종 긴장과 공포로 관객을 몰아넣는 영화의 스코어는 영국 록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가 작곡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무대에서 사운드를 믹싱하고 밴드의 초현실적 음악 성향에 공감각적 앰비언트 사운드를 더하면서 보낸 것과 같이 이 영화에서 그의 자질은 명확하게 효과적이고 독특하게 발휘된다. 일관되게 그린우드는 고딕적인 세계 안으로 관객들을 초대하고, 기괴하게 매혹적이고 영묘한 곳으로 데려간다. 예외 없이 거기엔 아무것도 명확한 게 없다. 비운의 기운은 영화 내에 존재하는 등장인물들과 배경의 이미지에 급속도로 접근해 들어간다.
암흑의 선율을 듣는 듯한 공포감과 평온한 듯 소름끼치게 오싹한 분위기를 내는 불협화음조의 오케스트라가 한편으론 관객을 압도하면서, 궁극적으로 영화의 주제를 계속해서 관객의 의식에 각인시킨다. 종영 인물자막(End Credit)이 올라가는 장면의 전개는 가히 어리둥절할 정도. 이처럼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스코어는 그린우드가 2004년 5월 임명돼 BBC 오케스트라의 상임작곡가로 있으면서 작곡한 두 곡의 교향악 'Smear'와 'Popcorn Superhet Receiver'에서 발췌하고 유기적으로 재편성해낸 결정체다.
폴란드 작곡가 크리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의 '히로시마의 희생자를 위한 애가'(Threnody to the Victims of Hiroshima, 1960)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아 만든 음악을 기초로 만들어진 스코어에는 또한 실험성을 추구했던 저명한 현대음악작곡가들의 영향이 미쳐있다. 영화에서 들리는 비중 있는 음악들 중 'Henry Plainview'에는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의 'Atmosphères'(대기)를 향한 경의와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와 유사한 시각적 모티프가 담겨있고, 'Future Markets'의 피치카토(pizzicato) 스트링과 아르페지오 연주는 바르톡(Béla Bartók)의 'Music for strings, percussion and celesta'(현악기와 타악기 및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와 동질의 감동을 준다. 'Eat Him by His Own Light'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메시앙(Olivier Messiaen)의 'Quartet for the end of time'(종말을 위한 4중주곡)를, 'Prospectors Arrive'에선 에릭 사티(Eric Satie)의 피아노와 같은 접근방식이 환기된다.
영화에는 또한 H.W.가 사고로 청력을 잃고 고통받는 장면에 주입돼 연주된 아르보 패르트(Arvö Pärt)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프라트레스'(Pärt: Fratres for Violin and Piano),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 지휘하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브람스(Johannes Brahms)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도'(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3. Vivace Non Troppo)이 피날레와 유전개발착공 축가조으로 삽입돼, 고전 걸작과 같은 품위를 갖추면서 음악적으로는 아방가르드적 성향이 짙은 영화의 격조를 한층 더 강화하도록 사용됐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주악기로 내세워 클래식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소량의 전자음과 타악적 리듬을 현대음악적 영감 안에서 빚어낸 감각적 터치가 드라마의 이면에서 파문을 일으킨다. 무엇보다 현악(string)만으로 감정의 전반을 휘덮은 그린우드의 클래식 기반 현대음악적 작법이 돋보이는 작품. 20세기 초 서부 텍사스 유전을 배경으로 욕망을 쫓는 한 인물의 서사적 공포가 교차하는 영화음악이다. 본질적 영상미 안에서 순수한 배경음악으로 그리고 심리적 사운드로 작용하는 음악을 통해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이나 테렌스 멜릭(Terence Malick) 감독의 위엄 있는 작품들이 상기되는 건 당연지사.
-수록곡-
1. Open Spaces 3:56
2. Future Markets 2:42
3. Prospectors Arrive 4:35
4. Eat Him By His Own Light 2:42
5. Henry Plainview 4:15
6. There Will Be Blood 2:06
7. Oil 3:07
8. Proven Lands 1:52
9. HW / Hope Of New Fields 2:30
10. Stranded The Line 2:22
11. Prospectors Quartet 2:57
Total Album Time: 3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