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慘事)가 참사(慘史)로만 남지 않으려면...
참사의 현장을 보존하는 이유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기념관이나 추모공원을 조성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고 기린다.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떠났던 250명의 아이들과 12명의 교사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참사로 안산에서도 기억교실을 보존하고 안전공원 조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왜 안산이 참사지역인가?’를 묻는 이들이 있다.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으니 추모공원은 진도에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우리 주변을 잠시만 둘러봐도 나온다. 3일이면 집으로 돌아와야 할 아이들, 엄마, 아빠, 아내, 남편이 없다는 것, 날마다 보던 이웃의 아이들이, 골목에서 자주 보던 아이들이, 교실과 교무실에서, 공원에서, 삶의 터 곳곳에서 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참사, 즉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기억교실을 보존하는 것도 좋고, 안전공원을 만들어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좋은데 화랑유원지는 아니지 않나 라는 질문을 한다. 다음과 같은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며 화랑유원지는 절대 불가하다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합동분향소가 3년 넘게 있어 시민이 유원지를 찾지 못하니 이제 시민에게 유원지를 돌려줘야 할 판인데, 안전공원이 들어서면 또 다시 피해를 본다. △경기도 미술관이 피해를 본다. △ 오토캠핑장 재개장이 어렵다. △집값이 떨어진다. △화랑유원지 전체를 밀고 납골당을 만든다. △봉안당은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다. △매년 12월 31일, 불꽃놀이를 못해 ‘천년의 종’ 타종식이 반쪽짜리 행사가 된다. 이에 대해 진정으로 참사의 아픔을 함께하고 기억하며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던 안산시민이라면 이들의 주장이 과연 타탕한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 화랑 유원지를 시민에게 돌려 달라?
참사 후 합동분향소가 꾸려졌을 때 오락과 나들이를 위한 시민의 발걸음이 주춤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화랑 유원지는 참사에 대한 추모, 기억과 더불어 위락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분향소 바로 옆 암벽등반장, 그 옆의 운동장, 넓은 잔디밭, 호숫가 주변 모두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일상의 피로를 풀고 있다.
△ 경기도 미술관이 피해를 본다?
경기도 미술관은 2006년 개관 이래 수준 높은 기획전을 꾸준히 유치하고 있어 안산이 문화도시로 성장해 가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개관 초부터 무료입장이 가능했던 것에 반해 수년 전부터 두 차례에 걸쳐 관람료 인상을 했다. 관람료가 4천원으로 사설미술관에 비해 저렴하지만 관람객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유료입장을 고수하는 것과는 감도(感度)가 다를 수밖에 없다. 운동과 위락을 목적으로 화랑유원지를 방문하는 수많은 시민이 관람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경기도 미술관의 편의시설을 이용함으로써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도민을 위해 세금으로 조성된 시설에서 이를 막는 것은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오르지 않는 미술관의 인지도 역시 큰 문제 중 하나였는데, 분향소가 미술관 뒤에 설치되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다양한 기획 전시를 하면서 인지도가 상승했다. 추모를 위해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미술관을 알게 되었고, 관람을 하며 전시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안산은 물론 1,200만 경기도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미술관이 예술과 지역의 아픔을 분리해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지탄받아야 할 일인 것이다. 이는 결코 경제적인 잣대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 오토캠핑장 재개장이 어렵다?
416안전공원이 들어서면 캠핑장에서 웃고 떠들 수 있겠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현재 합동분향소 주변을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참사를 일상에서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다. 안전공원 역시 시민의 위락을 가로막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캠핑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늘어나고 있는 캠핑장 안전사고에 대한 대비책이 될 수 있다. 오토캠핑장이 화랑유원지에 들어선 게 맞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많은 점은 논외로 친다.
△ 집값이 떨어진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안산의 경우 재건축이 진행되는 곳과 신설 아파트 건설이 너무 많다. 뿐만 아니라 수원, 화성, 송산, 시흥 등 인근지역에서 한창 아파트가 건설 중이거나 계획되고 있다. 특히 원곡동과 초지동에서 진행되는 재건축 아파트가 피해를 본다는 주장이 있는데, 416추모공원은 현 합동분향소 자리가 아닌 원곡동, 초지동과는 가장 원거리에 계획된다.
재해, 전쟁, 참사 등으로 슬픔을 당한 지역을 돌아보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성행하는 이 시대에, 안산의 416추모공원은 대한민국의 학생, 가족, 단체들이 찾아올 수 있는 안전의 메카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올라 오히려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 화랑유원지 전체를 없애고 납골당을 만든다?
이는 근거 없는 소문이다. 화랑유원지 총 면적은 약 19만평이다. 416안전공원이 예정된 곳은 오토캠핑장과 화정천 사이에 있는 미조성부지(1만 5천평)다. 이 미조성부지에 산업박물관이 계획되어 있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자리에 추모공원이 들어선다. 흔히 납골당이라 지칭하는 것은 공간이 수용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지속적으로 유골을 안치하는 것이 주목적이나, 416안전공원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봉안당을 제외한 나머지가 공원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 봉안당 없는 안전공원은 위락시설과 다를 바 없다. 굳이 세금을 들여 추모공원을 조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봉안당은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다?
이는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이 자랑스럽게 내세울만한 집단적 특성을 가진 성향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다. 조상대대로 가족이 화목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며, 이웃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던 우리네 정서는 산업화와 자본 위주의 사회에서 무너진 지 오래다. 정서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라도 경제적 이유를 들어 허무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가족이 있어도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어른들, 수험생이 있으면 온갖 집안 행사에서 제외되고 이웃의 도움으로 해결했던 일들이 금전적 가치를 지불해야만 하는 현실을 살고 있다. 전국의 산에서 버려진 무덤이 헤아릴 수 없고, 납골당 역시 혐오시설로 치부되어 근접하기 어려운 곳에 마련되어 자주 찾지 않는 곳이 되었다.
이에 우리 안산시민이 무너진 정서에 매달리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담은 아름다운 정서를 형성하는 일을 참사집중지역에서 시작한다는 것만으로도 길이 회자될 일이다.
아직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실종자 수습도 모두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매년 12월 31일, 불꽃놀이를 못해 천년의 종 타종식이 반쪽짜리 행사가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그저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안산시민 모두가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온전한 행사를 원한다면 그 누구보다 먼저 진상규명과 안산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
416이후 안산은 달라졌다. 기억하자는 사람이든, 이제 그만 하자는 사람이든 세월호를 완전히 외면할 수 없고, 안산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 역시 ‘안산’하면 ‘세월호’와 ‘단원고’를 떠올린다. 416과 관련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안산시민의 품격과 안산이라는 도시의 위상이 달리 평가될 수 있다. 416 참사(慘事)가 참사(慘史)로만 남을지, 참사를 품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 할지는 안산시민의 선택에 달려있다.
/ 안산시민 얼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