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대병면소재지, 아련한 그때 그 모습
1988년 12월, 마침내 '합천댐'이 준공돼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일제강점기때부터 댐 예정지였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왔는데 비로소 거대한 합천호수가 만들어져 이 지역 일대는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 합천댐은 수력발전소 기능 뿐만 아니라 황강 유역의 홍수를 예방하는 등 다목적 댐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 아픈 일도 있었지요. 댐 담수로 인해 실향민들도 적지 않게 생겨난 것입니다. 특히 황강이 흐르는 낮은 지역에 살던 대병면과 봉산면민들은 얼마간의 보상을 받고 정든 고향을 떠나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나 합천의 인근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습니다.
운영자는 지대가 다소 높은 대병면 장단리 쌍암마을 출신이라 그곳에 살던 실향민은 아니지만, 수몰전인 1979년
1월부터 1980년 4월까지 약 1년 4개월간 지방공무원으로 대병면사무소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터라, 그 당시의 모습을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합천댐의 준공 이전에 대병면소재지 일대의 수몰 전 생생한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여기 사진의 대부분은 합천댐 수몰 후 '대병면향토지편찬위원회'(회장 문자환)가 1991년 3월 편찬, 발간한 '대병향토지'에 수록된 소중한 사진과 글을 일부 발췌해 순서를 조정해서 여기에 올립니다.
아울러 고향 대병을 사랑하고 추억하는 뜻있는 대병 향우들이 향우회, 동문회 등에서 올린 사진을 어렵게 찾아 함께 올렸습니다.
그럼 추억의 그 당시로 돌아가볼까요~~
▲황강을 가로지르는 대병 공중다리(면소재지 쪽)에서 멀리 '악견산'을 바라본 모습. 사진 중앙에 '광암정(廣巖亭)'이라는 정자가 보인다. 이 정자 뒤로 도로가 개설돼 댐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가까이서 본 '광암정(廣巖亭)'. 엄청난 큰 바위절벽 위에 서 있으며, 앞에는 황강의 푸른 깊은 소가 있었다.
이 정자는 새로 조성된 면소재지의 합천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옮겨져 있다.
▲가까이서 본 광암정의 위용
▲대병면소재지에서 '용문정'과 '평학'(잣디)으로 흐르는 향강(香江) 모습.
오늘날 이 강의 공식 명칭은 '누를 황'의 '황강(黃江)'이나
전통적으로 용문정부터 대병 구간은 '향기나는 향'의 '향강(香江)'이라고 불렸다.
▲면소재지에서 역평리 방향으로 본 향강 상류 모습
▲대병면 소재지였던 창리(倉里) 전경. 오른쪽 중간에 줄을 서 있는 건물이 시장이다.
▲창리 뒷산에서 내려다 본 소재지 모습. 저 멀리 광암정, 가까이는 대병국민(초등)학교,
대병시장과 그 왼쪽에 유명했던 '공중다리'가 보인다.
▲창리 뒷산에서 바라본 소재지 모습.
이때는 건설 중장비가 이동하는 도로가 개설돼 이미 댐 공사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로 보인다.
▲창리의 일부 모습. 큰 정자나무가 있어 여름에는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했다.
▲'광암정' 위에서 바라본 면 소재지. 오른쪽 강위에 유명한 향강 공중다리가 보인다.
▲ '광암정' 위에서 바라본 면 소재지. 이때는 중장비 진입로가 개설되는 등
댐 공사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로 보인다.
▲수몰 직전의 창리 모습이다.
대병초등학교와 대병시장, 그리고 일부 민가들이 이곳저곳 철거된 흔적이 보인다.<사진/역우회>
▲ 매월 4일, 9일 열리던 대병의 5일장 모습(1).
대병면민뿐만 아니라 인근 봉산, 용주, 가회 주민들까지 와서 생필품도 사고,
주민들끼리 서로 만나 안부도 묻는 '소통의 공간' 역할을 하던 곳이다.
▲댐 건설이 한창이던 1984년 8월의 대병시장 모습(2).
당시에는 5일장으로서 규모가 꽤 큰 시장이었는데, 정기적으로 4일과 9일 시장이 열렸다.
▲ 1988년 수몰 직전의 대병장터(3)<사진/역우회>
이 무렵에는 시장 건물이 현대화되고, 주민들의 생활수준도 크게 달라져 보인다.
▲뒤에서 바라본 면소재지의 대병국민(초등)학교 건물 모습.
당시 학생수도 많았으며 위용을 뽐내던 고적대가 있을 정도로
큰 학교였다. 멀리 댐이 축조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대병면 행정의 중심역할을 하던 면사무소 모습.
운영자는 이곳에서 약 1년4개월간(1979.1.1~1980.4.24) 지방7급 공무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러다 사표를 내고 다시 국가직 7급 공무원시험에 응시해 합격, 중앙부처(총무처)로 발령받아 근무하게 되었다.
▲옆에서 본 대병면사무소 내부.
외편부터 차례로 창고, 면사무소, 숙직실, 농촌지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대병단위농협 건물. 당시 1층에는 생필품을 싸게 파는 '연쇄점'이라는 이름으로
농촌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요즘은 이 연쇄점이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하나로마트'라는 이름으로 바꿔 달았다.
▲ 대병면의 치안을 담당하던 합천경찰서 대병지서 모습. 입구의 돌담이 이채롭다.
▲당시의 대병 중심지로서 여기에는 면사무소, 지서, 농협과 상가 등 주요 건물이 밀집해 있었고
부산, 대구, 진주 등 대도시를 운행하는 시외버스 종점이기도 했다.
오른쪽 중간의 돌담이 지서(파출소). 끝의 2층건물이 대병농협이었다.
사진 오른쪽에 그 옛날의 다방도 보이네요.
▲지역의 우편 및 전신전화 업무를 담당하던 대병우체국 모습.
▲우체국 뒤에 자리잡은 우(牛)시장 모습. 이 날은 장날이 아니어서 한산해 보인다.
당시에는 각 가정마다 소가 재산목록 제1호였다.
▲여름에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낸 '숫걸'.
흰옷을 입은 할머니 몇 분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추억의 향강 공중다리(1).
오늘날에 이 다리가 그대로 존치했다면 굉장히 유명한 다리가 되었을 것이다.
▲추억의 향강 공중다리(2). 이 다리는 교각이 매우 높아 많이 흔들리는 것이 특징인데
더군다나 얇은 철판 아래는 푸른 강물이 흘러내려 누구든지 다리 중간에 이르면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어릴적에 어쩌다 대병시장에 가게되면 시장통을 이리저리 구경한 후 이 다리를 세 번 정도 왕복하며 아찔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추억의 향강 공중다리(3). 다리 밑에는 꽤 많은 수량의 깨끗한 물이 흘러내려가고 있다.
▲추억의 향강 공중다리(4) .
세월 따라 추억 속으로 점점 묻혀가는 내 고향 대병면 소재지의 이곳저곳 모습이었습니다.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