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씀, 민들레>
4.
피어스는 모든 아이들은 배움에 원래부터 '하드와이어드(hardwired)'되어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타고 태어난 프로그래밍은 아이들이 필요한 것을 배워 나가도록 자동조정되어
있고 또 오늘날의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그 학습과정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부터 시작해
참으로 놀라운 수준으로 진행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아이들이 어떻게 배워
나가는가가 의문이 아니라 무슨 수로 이들을 배움에서 떼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가 첫째
의문이다.
피어스의 이러한 믿음은 정신 또는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생물학의 광범위한 새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아이들은 저마다 이미 신이 부여한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흔히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잠재능력의 자연스런 전개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당연하게
교육(education)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가하는 데로 우리를 데려간다. 에듀케이션은
'이끌어낸다'라는 뜻인 라틴어의 에듀케어(educare)에서 나왔다.
피어스는 하이와이어드 학습이라는 자신의 개념에 하나의 중요한 수식어를 덧붙였다.
만약 아이들의 개성적인 특질과 고유한 발달 시간표에 맞추어 환경이 적절하게 따라 준다면
어떤 아이나 지성이 충분히 피어난다는 것이다. 이 '만약'이라는 조건이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띠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출생 때를 예로 들어보자. 모체로부터 오는 신호들,
심장박동, 목소리, 감정상태뿐 아니라 아버지나 형제 자매가 보내는 신호에 반응하는
태아로서 자궁 안에서 이미 시작된 학습은 흔히 현대적이고 '과학적인'출산 과정으로
말미암아 심각하게 방해받는다. 신생아의 초기 성장은 어머니와의 완전하고 즉각적인 연대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데 병원의 일상체계는 그 자체가 아이와 어머니의 연대를 끊어 놓는다.
의료체계 역시 두려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의료행위와 처치자들은 수혜자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는 데 시간을 들일 필요조차 없다.
이것이 어린아이들이 완전한 자아를 발달시키기 위해 필요한 참된 양육 과정에 가해지는
일련의 장애의 시작 바로 그것이다. 그에 이어 탁아소, 텔레비젼 그리고 이 소비문화가
제공하는 온갖 유혹물과 인공적인 대체물들이 우리 아이들을 인간의 피가 흐르지
않는 그 품안으로 데려간다. 그리하여 현 세대의 모든 아이들을 그런 문화에 저항
불가능의 상태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돌려준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채 무의식적이고 무심하게 한 행동들이
얼마나 우리 아이들의 자아발달을 저해시켜 왔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 현실을 어떻게 살아갈수 있을까가 솔직한 우리의 마음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