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원한새와 망정동 미륵부처님’의 유래
영천시 망정동 주공아파트 자리에는 미륵등이란 곳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미륵부처님이 계셨는데, 지금은 아파트 동족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모셨습니다만, 그 미륵부처님의 모습은 슬픈 전설의 무게를 더하고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옛날 이곳에는 아늑한 마을이 있었으며, 그 마을에는 한 아버지가 아들과 정답게 살고 있었다.
비록 가난한 농부의 신분이었지만 윗대 조상들은 높은 벼슬에 있었으며 할아버지 때만 하여도 부농으로 이 마을에서 제일 부자였으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찌된 일인지 가세가 점점 기울어져 그 많던 농토를 다 팔아버리고 지금은 부자는 소작으로 연명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자기 대에서 숱한 재산을 흩어버리고 귀한 자식마저 고생시키는데 대한 자격지심으로 술로써 시름을 달래는 일이 많았다.
훌륭한 청년으로 자라난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버지를 편히 쉬게 하고 혼자서 농사일을 꾸렸다. 낮에는 진종일 밭에서 농사를 짓고, 어둑어둑 해거름에 집으로 와서는 쓰러져 가는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고단함을 무릅쓰고 늦도록 글을 읽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들은 혼기가 차게 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살림살이라 어느 누구도 시집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매일같이 걱정하던 차에 우연히 이웃마을의 규수를 알게 되었다. 얼굴도 반반하며 행동도 유별하여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었다. 즉시 매파를 놓아 혼례를 치루었다.
새로 맞은 며느리 역시 가난한 농군의 딸이었으나 살림에는 알뜰하고, 시아버지와 남편을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는 현숙한 성품이었으나, 시집온 지 사흘 만에 밭으로 나가야 하는 가난함에 이를 설워하는 시아버지의 늘어나는 술에도 불평 없이 받들고 시아버지가 즐기는 술을 사다 날랐다.
해가 바뀌어 과거 날이 다가왔다. 몇 해를 이를 악물고 그 보람을 거둘 그 기회가 온 것이다.
매일 술로 지새우는 아버지를 아내에게 맡기고 가기가 염려스러웠으나 가문을 중흥시켜 아버지에게 더 큰 효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꼭 과거에 급제하여야 했기에 아내에게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한양으로 길을 떠났다.
남편을 보낸 며느리는 남편이 있을 때보다 더한 정성을 들여 시아버지를 봉양하였다. 남자도 힘든 농사일을 꾸리랴 시아버지 약주 값을 장만하랴 젊은 여자의 몸으로는 너무나도 고된 일이었으나 불평 한 마디 없이 지냄은 물론 밤마다 뒷산의 영험이 있다는 부처바위 앞에서 남편의 급제를 위한 치성을 드렸다.
오랜 주벽으로 성격이 삐뚫어진 시아버지는 차츰 며느리를 구박하기 시작하였다. 술을 더 사내라, 밥이 싫다, 찬이 맛이 없다. 날로 심해져 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주벽을 견뎌가며 더욱 열심히 더욱 밤이 깊도록 남편의 치성을 드렸다.
시아버지의 찬을 마련하기 위해 시집올 때 가져온 패물과 옷가지를 팔다 못해 검은 머리카락마저 잘라다 팔았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구박에 이어 며느리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저녁 설거지만 마치면 간다 온다 소리도 없이 살그머니 뒷문으로 나가 밤이 이슥하여 피곤한 표정으로 돌아오고 어떤 날은 동이 틀 무렵 돌아오지 않는가.
수상하게 여긴 시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캐볼 생각으로 일찍 저녁을 먹고 자리에 들었다. 며느리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리끼를 떠다 놓은 후 뒷문으로 살그머니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때는 그믐이라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밖은 컴컴하였다.
시아버지가 자신의 뒤를 따르는 지 꿈에도 모르는 며느리는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한 걸음에 뒷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옳지 여기서 샛서방과 만나는구나.”
다시 집으로 돌아온 시아버지는 도끼를 집어 들고 뒷산으로 뛰어올랐다. 그곳에서 며느리가 누군가와 밀회를 하고 있었다. 성이 머리끝까지 난 시아버지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내달아 단 한 번에 며느리를 찍어 눕혔다.
창졸간에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며느리가 쓰러지자 이어서 그 남자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 남자는 도끼를 맞고도 끄떡도 없었다. 화가 나서 연달아 내리 쳤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차츰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돌부처가 아닌가. 아차 하는 순간 술이 휑하니 깨고 정신이 번쩍 들었으나 이미 때는 늦어 며느리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무슨 망령이 들어 이 모양이냐며 발을 동동 구르며 몸부림 쳤으나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리 없었다.
그리고 자식이 돌아오면 무어라고 변명을 할 것인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조여 오는데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만 없었다. 누가 보기 전에 시체라도 치워야 했다. 얼떨결에 시체를 개울에 던져버리고 집으로 돌아온 시아버지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며느리가 밤새 도망을 하였다고 헛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하였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서울 간 아들이 과거에 급제를 하여 금의환향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반가이 맞이하여야 할 아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영문을 묻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네가 떠난 후에 날 버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럴 리가 없다고 여긴 아들은 처가로 가기 위해 개울을 건너려니 물 속에 허연 것이 보이는 게 아닌가. 이상하게 여겨 건져보니 목에 도끼를 맞은 아내의 시체였다. 뒷산에다 고이 묻고 내려오려니 꿈인지 생신지 숲 속에서 아내가 나타나
“아버님 도끼”
라고 뜻 모를 말을 하더니 남편이 가까이 가니 아내는 간 곳 없이 새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집으로 돌아와 모든 내력을 알게 된 아들은 아버지를 나무란들 소용이 없는 일, 차라리 아내 뒤를 따를 것을 결심하고 아내의 무덤 옆에 스스로 목을 매자 거기서도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니 그 다음부터 예쁘게 생긴 새 한 쌍이 날마다 두 무덤 위에서 울었다. 사람들은 불쌍히 죽은 젊은 부부의 넋이라 하여 원한새라 불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