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솔치길 : <내 안의 길을 찾는 명상길>
망우리 고개에서 시작한 평해길 걷기가 오늘로써 끝을 맺는다. 평해길을 완주하여 끝맺음하는 것이 아니라 강원도 지역은 아직 길이 조성되지 않아 걸을 수 없고 관동지방인 강원도와 한양을 연결해주는 징검다리와도 같은 경기도 구간이 끝을 맺기에 걷고 싶어도 걸어갈 수 없다.
그리하여 평해길을 완주하였다는 기쁨보다는 더는 걸어갈 수 없는 서러움에 눈물을 글썽이며 걸어야 하는 평해 10길은 어떠한 길일까 ? “솔치길은 총 10개 코스로 이루어진 평해길의 마지막 구간으로 고요함의 진수를 느껴 볼 수 있습니다. 자신 안에 숨어있는 내면의 정체성을 명상을 통해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특히 이 길은 양평에서 힐링 로드라 불리며 많은 사람이 찾는 숨겨진 명소이기도 합니다. 솔치 임도 길에서 나를 위한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경기 옛길 안내 책자>
솔치길을 걷고자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이른 새벽이기에 밥을 먹을 수 없어 달걀부침과 우유 한잔을 마시고 집을 나선다. 5시 35분 전철을 타고 종로 3가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청량리역에서 내리니 6시 45분이다.
기차는 7시 35분에 출발한다. 무엇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새벽부터 서두르게 하였을까? 버스 한 정거장의 거리도 걷기 싫어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데 걸어가고자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기차를 타고 지형도 익숙하지 않은 다른 지역까지 가서 걷는 것은 ’걸으면 신이 난다, 그리하여 오늘도 걷는다. ‘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조 회장님과 김 총무가 도착하였다. 기차가 출발하려면 아직도 20여 분이 남아 잠시 대화를 나누고 기차를 탔다.
무궁화호는 평해길을 걸으면서 친근해진 덕소역, 양평역, 용문역을 지나고 오지로 여기며 교통 불편을 우려했던 지평, 석불, 일신 역을 지나 양동역에 도착하였다. 소요시간 1시간으로 08시 44분이다.
대기 중인 개인택시 기사에게 오늘의 목적지 솔치에 대한 call 관계를 문의한바 조 회장님께서 차라리 솔치까지 택시를 이용하고 역방향으로 솔치에서 양동역까지 걷고 12시 55분 열차를 타자고 하여 동의하고 택시를 타고 솔치로 향하는데 도로 표지판에 효열비란 글자가 눈에 띄었다.
효열비. 이 고장에 이름난 효녀 효자의 정렬비가 있는 모양이지요, 라고 물으니 조 회장님께서 “700년 된 효자나무인 은행나무에 방영환은 맑은 물을 떠 놓고 80세 우연히 시각장애인이 된 노모를 위하여 10년간 비나리를 하여 90세에 노모가 눈을 떴다는 고사가 전해 오는데 이곳 효열각은 단독이 아닌 효열 여성 11명, 효열 남성 4명을 숭앙하는 집단 효열각이라고 말씀하셨다. ”
또 이곳 쌍학리 안골은 명성황후의 피난처이고 쌍학리 마골은 택당 이식 선생의 후학을 양성하던 택풍당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땅에 서린 설화를 흥미롭게 들을 때 벌써 택시는 솔치에 이르렀다. 택시비는 10,300원이 나왔지만, 잔돈은 받지 않았다.
솔치에는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원주시이다. 이제 평해길은 강원도 지방으로 넘어가는데 우리는 이곳 원주시 지정면과 양평군 양동면의 경계인 이곳 솔고개에서 평해길을 마치는 것이다.
솔치는 소나무가 많은 고개이다. ’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 애국가의 가사처럼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소나무가 도로 개설로 인하여 솔치라는 이름을 솔고개에서 소나무를 볼 수 없는 아쉬움에 사명대사의 청송사를 떠올리며 솔치 임도 길로 진입하였다.
松兮 靑兮 소나무여, 아 푸르구나!
草木之君子 초목 중의 군자로다.
霜雪兮不腐 눈 서리 차가워도 상하지 아니하고
雨露兮不榮 비, 이슬, 내려도 웃자라지 않네.
不腐不榮兮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한결같고
這冬夏靑靑 겨울이나 여름이나 늘 푸르고 푸르도다.
靑兮 松兮 푸르구나! 소나무여!
月到兮節金 달 돋아 오르면 금가루 곱게 반짝이고
風來兮鳴琴 바람 일면 청아한 거문고 소리만 들리네. <사명대사>
임도에 진입하니 나를 위한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는 솔치 임도에 임도 파괴 경고문과 함께 차단기를 설치하여 놓은 것이 자동차의 진입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하여도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도는 간간이 패인 곳이 있지만, 시멘트로 포장되어 진행하는 데 불편을 주지 않았지만, 가슴까지 자란 잡초에 어제 내린 비가 맺혀있어 발걸음을 재촉할 수 없었지만 당산의 기슭에 조성한 임도가 깊은 골짜기가 되어 산 기운에 온몸을 적실 수 있었다.
평해길 8길의 고래산 임도나 9길의 쌍학리 임도처럼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 아니고 완만히 굽어 돌아가는 길에 더욱이 솔치에서 양동역으로 역방향으로 진행하여 내리막의 임도 길을 걷게 되어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80이 넘으신 연세에도 지칠 줄 모르고 이 땅을 걷고 계시는 조 회장님께서는 솔치 임도를 오르막으로 올랐으면 낑낑거리고 올랐을 텐데 내리막으로 걸으려니 편하여 아주 좋다고 웃음을 지었다.
임도가 끝나려는 것일까? 외딴 농가가 있었고 그곳에서 음악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지만, 삼거리 길로 가는 방향의 표지기가 없어 나는 우측의 산길로 진입하는 길을 확인하고 김 총무는 좌측의 마을로 내려서는 길을 확인하였는데 평해길은 좌측의 길로 진행하여야 했다.
또다시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임도 길은 끝이 나고 좌측으로 다소 멀리 택시를 타고 왔던 88도로에 자동차 달리고 있었고 눈앞에는 경기 옛길 스탬프 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10구간을 걸었다는 인증 도장을 찍었다. 10개 구간을 걸을 때마다 하나하나 찍은 스탬프가 오늘로써 빈 곳을 모두 채운 것이다. 누군가에게 100km를 걸었다고 자랑하기 위하여 길을 걸은 것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10개의 도장이 모두 채워졌다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뿌듯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당산의 산줄기가 힘차게 뻗어 있고 그곳에 솔치가 있었다. 경기 옛길 센터에서는 당산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는 당산은 양평군의 동남쪽에 있는 산입니다.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과 여주시 강천면 및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지요. 높이는 541m이고 험준한 바위지대가 없는 반면 넓은 계곡이 훤히 트여 있어 산행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당산에는 다래나무 군락, 호랑이와 산신령의 석고상이 모셔져 있는 자연 석굴 등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또한, 당산 정상은 참나무 수림으로 덮여 있고 남쪽 능선에 바위를 감고 있는 특이한 소나무도 있지요. 능선에는 창출, 백출 등의 약초가 많고 곰지기골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으니 한여름에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불현듯 솟구치는 당산에 오르고 싶은 마을을 누르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걸어가는데 도랑물 소리가 반갑다. 아무리 들어도 싫지 않은 것이 물소리요, 아무리 보아도 또다시 보고 싶은 것이 산의 형상이라고 하였는데 물소리는 어디에서 듣던지 정다운 소리이다.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논에는 벼들이 고개를 숙일 날을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면 산길과 무엇이 다를까? 산에 오르지 않아도 산길을 걷는 착각 속에 삼산리에 이르렀다.
삼산천이 마을을 통과하여 남북으로 흐르고 원삼산 뒷산에 세 봉우리가 있다하여 삼산리라고 부르는데 의병 전투가 있었다. 평해길 안내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술하여 놓았다.
정미의병 때의 격전지 – 삼산리
삼산리는 정미의병의 본거지 중 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의병을 토벌하려는 일본군과 이곳에 주둔하는 의병들 사이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지요. 1907년 정미년은 고종이 강제 퇴위 정미7조약 군대 해산이 벌어진 해입니다. 이에 분노한 의병들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였지요…….
삼산리 전투는 그해 11월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벌어졌습니다. 일본군 토벌대는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말을 이용하여 이동이 빨랐고 신식무기로 무장하였는데 의병들은 개인화기가 미약하였지만, 수적으로 우세하고 지형지물에 밝아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 부대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지만, 의병들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결국 산속으로 흩어지며 훗날을 도모하게 됩니다.
삼산리 노거수 은행나무와 삼산2리 마을회관을 지나갈 때 길가에 슈퍼가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 마을 한편에 자리한 구멍가게가 떠 올랐다. 다소 먼지가 쌓였지만, 우리에게 생필품은 제공해 주고 낯선 외지 사람들에게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던 동네 구멍 가게에서 그 마을의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 구멍가게가 슈퍼로 바뀔었을지라도 우리 어린 시절에 느꼈던 그 따뜻한 정은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는 생각으로 지나갔다.
제2영동고속도로를 지나 사거리 포장도로가 나왔다. 솔치 고개에 이르는 도로로 택시를 타고 지나갔던 길이었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잠시 걷다가 샛길로 진입한다. 중앙선 철도가 눈에 띄고 석곡전이 흘러간다. 천변의 둑을 따라 단석천을 향하여 걸어간다.
잔향적인 시골길이 계속되었다. 인삼밭이 있고 한우 목장도 눈에 띄는 곳에 석곡천의 여울 소리가 정답게 들리는 둑길에서 농고 다리를 지나도 단석천은 나오지 않아 다소 지루함을 느낄 때 검단 다리에 이르렀다. 단석천 0.1km를 알린다.
검단 다리를 건너니 단석천이 석곡천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단석천 둑에는 데크가 설치되어 있었고 쌍학리 마골과 동계 팔경 안내판도 세워놓았다. 쌍학교를 건너 양동 도서관 앞을 지나 양동역에 이르렀다.
평해길 제10길 솔치 구간이 끝났다. 평해길 125km를 완주한 것이다. 아니다. 관동대로 경기도 구간을 걸은것이요 관동대로는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것이지만 도보로 여기까지 왔나는 자긍심이 일면서 마음은 두둥실 창공을 나는 것 같았다.
● 일 시 : 2021년 7월 10일 토요일 흐림
● 동 행 : 조용원 회장님. 김헌영 총무
● 구 간
- 09시01분 : 솔치
- 10시32분 ; 단석천
- 10시59분 : 양동역
● 거리 및 소요시간
- 거리 : 8.1km
- 시간 : 1시간 5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