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운동을 딱 싫어하던 내가 900일이 넘게 달리기를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별다른 목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900여일 달리기를 하는 동안 배우자가 된 나의 동거인은 매일 달리기가 코로나19로 갇혀 있던 시간 속에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의 표현처럼 보였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달리기를 어떻게 시작했든,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는 이유는 좀 다른 것 같다. 매일의 달리기에선 어떻게든 달려보겠다는 것, 달리기 자체가 목표로 존재한다. 종종 24시간을 넘어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하루는 온통 목적과 목표투성이다. 그 안에서 거의 모든 행동은 도구가 된다. 길게든 짧게든 어떻게든 매일 이어지는 달리기는 좀 다르다. 달리기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다. 어쩌면 이제 달리기가 목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숨을 쉬듯, 달리기는 내 일부가 되고 말았다. 내 존재의 목적 한 부분이 달리기로 변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놀면 즐겁다. 왜 그럴까?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뛰어논다. 그러다 집에 안 들어온다고 부모님께 욕도 먹는다. 부모님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데 정신 판다는 말도 덧붙인다.
정확하게 말하면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놀이가 바로 목적이다. 대회에 나가 메달 따려고 뛰어다니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는 반대로 운동을 수단으로 삼으면 일로 바뀌어 버린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공부 자체가 목적이 되면 끔찍하게 싫은 공부가 놀이가 된다. 호기심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 저절로 즐거워진다. 반대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는 목적으로 하는 공부는 재미가 없다. 미래의 행복을 꿈꾸면서 현재의 즐거움을 기꺼이 희생하는 셈이다. 그런 공부에 현재는 빨리 지나가야 할 거추장스러운 시간일 뿐이다. 현재는 없다.
요즘 아이에게 즐거운 놀이가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밥도 거른 채 밤늦도록 동무들과 어울려 놀다가 집에 들어가려는 그때서야 어머니의 화난 얼굴이 떠올라 어떻게 둘러대야 좋을지 궁리하던 경험이 일반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첫댓글 https://cafe.daum.net/ihun/jIQm/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