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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부 엄마모임 카톡방에서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조금씩 말씀을 나누며, 배운 내용을 곱씹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정요한 목사님 레위기 9번째 심화설교 ' [수요심화] 034 레 27장, 민 1-2장, 자발적 예물, 시내산 인구조사, 진편성, 행군순서 ' 중에서 레위기 27장에 해당하는 부분을 녹취 기록한 내용입니다.
아래 내용 출처 : 정요한목사님 대하설교 ' [수요심화] 034 레 27장, 민 1-2장, 자발적 예물, 시내산 인구조사, 진편성, 행군순서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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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27장, 레위기의 부록 ‘자발적 예물’
레위기의 마지막장인 27장은 레위기의 전체의 부록과 같은 장이다. 레위기 27장은 하나님을 향한 자발적 헌신, 자발적 예물을 드리는 법을 말씀해주고 있다. 27장은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차원을 넘어서, 능동적으로 바침의 차원으로까지 성숙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는 본문이고, 우리의 신앙이 주정헌금이나 십일조헌금과 같은 '의무적 예물' 을 넘어서,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자발적 예물' 까지 드릴 수 있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함을 교훈해주는 내용이다. 그래서 레위기의 다른 본문들보다 한 차원 높은 교훈들이 레위기의 마지막장인 27장 부록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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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8, 사람의 봉헌에 관한 서원 규례
27장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람의 값을(자신의 몸값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분명히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 전부를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겠다고 진심으로 맹세한 경우이다. 당시 성막에는 이미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성막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지파의 사람들이 이런 서원을 해도 성막에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대신 자기 몸값을 헌금으로 드려서 서원을 이행한 것으로 인정받게 되는 규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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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절까지 20-60세 남자는 은50세겔(성전세겔)을 헌금해야 했고, 여자는 30세겔을 헌금하도록 정하고 있다.
27장3-4절: 네가 정한 값은 스무 살로부터 예순 살까지는 남자면 성소의 세겔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 여자면 그 값을 삼십 세겔로 하며
→ 지금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계산하시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사람의 값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이다. 여기서 제시하신 값은 남자의 값 여자의 값이 아니라, 남성의 노동력 값, 여성의 노동력 값을 말씀하신다. 아무래도 노동력에 있어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좋으니까 차이가 있는 것이다. ...
카톡 나눔 4일
... 당시 고대 근동의 노동자의 4일 품삯이 일반세겔로 은 1세겔이었다. 그러면 50세겔이면 노동자의 200일 품삯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일반세겔이 아니라 성전세겔이다. 성전세겔은 일반세겔보다 1/5이 더 무거웠다. 그래서 3-4절의 남자의 값과 여자의 값은 당시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했을 때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감당하기 부담스런 큰 금액이었음을 알 수 있다.
카톡 나눔 5일
27장5-7절: 다섯 살로부터 스무 살까지는 남자면 그 값을 이십 세겔로 하고 여자면 열 세겔로 하며 일 개월로부터 다섯 살까지는 남자면 그 값을 은 다섯 세겔로 하고 여자면 그 값을 은 삼 세겔로 하며 예순 살 이상은 남자면 그 값을 십오 세겔로 하고 여자는 열 세겔로 하라
→ 5절을 보면, 5-20세 남자는 은 20세겔, 여자는 10세겔로 정하신 것을 볼 수 있고, 6절에는, 1개월-5세의 남자는 은5세겔, 여자는 3세겔로 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아이는 자의식이 아직 없기 때문에 부모가 대신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게 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예로 엘가나와 한나가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적이 있었다. 7절은, 60세이상 남자는 은 15세겔, 여자는 10세겔로 정하셨다. ...
카톡 나눔 6일
... 이제 8절은 가난한 서원자의 경우 제사장이 서원자의 형편에 맞게 서원의 값, 몸값을 정해 주게 하셨다.
27장8절: 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네가 정한 값을 감당하지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경제적)형편대로 (몸)값을 정할지니라
→ 제사장이 그 사람의 형편을 살펴서 그에 맞게 값을 하향조정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난해서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헌신과 예물을 드릴 때 형편대로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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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13, 가축의 봉헌에 관한 서원 규례
이런 경우이다. ‘하나님 제가 참 아끼는소가 있는데, 이 소를 사랑하는 하나님께 바치고 싶습니다’ 이런 자원하는 감동된 마음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해주신다.
27장10절: 그것을 변경하여 우열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가축으로 가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며
→ 감동된 마음 그대로 바치기로 했던 그 가축을 하나님께 드려야지, 중간에 마음을 바꿔서 봉헌하기로 했던 가축을 변경하거나 바꿔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혹시 마음이 흔들려서 다른 가축으로 바꾸고 싶으면? 바꾼 한 마리만 바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생각했던 것과, 바꾼 것까지 두 마리 모두를 바치게 하신다.
카톡 나눔 9일
... 그리고 11절 이하는 만약 여호와께 바치기로 약속한 가축이 바칠 수 없는 부정한 짐승이라면? 그것을 드릴 수는 없고, 제사장이 값을 정해주면 헌금으로 대신 값을 값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27장11-13절: 11. 부정하여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못할 가축이면 그 가축을 제사장 앞으로 끌어갈 것이요 12. 제사장은 우열간에 값을 정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 13. 만일 그가 그것을 무르려면 네가 (제사장이)정한 값에 그 오분의 일을 더할지니라
→ 13절은 서원, 맹세를 스스로 취소한 경우를 말씀한다. 이 경우에는 이미 하나님의 것이 된 가축을 다시 되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정가의 1/5값을 더해서 헌금을 하고 가축을 되찾아갈 수 있음을 말씀하고 계시다. 사실 되찾아가는게 아니다. 그 값을 내고 거기에 1/5을 추가해서 낸 다음에 되찾아갈 수 있음을 말씀하고 계시다. ...
카톡 나눔 10일
... 그래서 이러한 교훈들은 ★하나님께 헌신과 봉헌에 관한 약속을 성급하게 하면 안되고, 매우 신중하게 하나님 앞에 헌신을 약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약속을 했다면 ★최소 그 약속보다 더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헌신을 올려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율법의 정신과 오늘날 성도들의 헌신의 모습은 오히려 반대이다. 마지막 시대가 될수록 오히려 반대로 나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교회들의 모습, 성도들의 모습을 우리는 늘 보고 있다.
카톡 나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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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4절이하는 가옥과 땅 봉헌에 관한 말씀이다. 마치 신약성경을 보는 듯한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런 정신들을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전혀 지키고 있지 않다. 마치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헌신에 관한 말씀이 레위기의 마지막장에 기록되어 있다.
카톡 나눔 13일
27:14-15, 가옥의 봉헌에 관한 서원 규례
카톡 나눔 14일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크게 감동이 되어 자기 집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서원했다가, 내가 너무 성급하게 서원했나보다 하고 후회하면서 다시 그 집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기로 하면, 그 집 값에 1/5을 더해서 예물로 드려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어떤 헌신의 약속을 할 때는 굉장히 신중하게 해야 하고, 절대 순간적 감정으로 지키지도 못할 성급한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앞에 큰 실수(죄)가 된다.
카톡 나눔 15일
27:16-25, 땅의 봉헌에 관한 서원 규례
카톡 나눔 16일
어떤 사람이 좋은 땅이 있어서 그 좋은 땅의 일부를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릴 때 제사장은 그 땅값을 계산해두어야 했다. 땅값은 그 땅의 소출량을 환산해서 산출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희년 50년 중에 10년차면 그 밭의 40년치 소출을 환산해서 땅값을 제사장이 매기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이미 봉헌된 땅의 값을 매겨놓는 이유가 19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미 드린 자가 후회하고 무르려해도 19절의 말씀처럼 완전한 취소는 없다. 서원하여 하나님께 드린 밭을 다시 가지고 오고 싶으면, 그 밭 값의 정가에 1/5을 더해서 값을 지불해야 도로 가져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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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6-27, 초태생의 봉헌에 관한 규례
카톡 나눔 18일
27장26절:
본래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이다. 성경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다. 초태생, 십일조 이런 헌물들을 율법은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런 정신을 지켜가는 성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성도에게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초태생은 원래가 하나님의 것이니까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그 첫 새끼를 위와 같은 서원예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27장27절:
27절의 의미는, 부정한 짐승의 첫 새끼까지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부정한 짐승은 하나님께 예물로 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부정한 짐승의 새끼 정가에 1/5을 더한 돈을 하나님께 헌금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리고 혹시 형편이 어려우면 그 부정한 짐승의 새끼를 팔아서 그 돈만! 정가만! 헌금을 해도 괜찮다는 말씀이다.
카톡 나눔 19일
그리고 28-29절은 난제인데 이 내용은 그냥 읽고 넘어가고, 3차 대하설교 때 고민해보도록 하자.
27:28-29, 난제
27장28-29절: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카톡 나눔 20일
27:30-33, 십일조에 관한 규례
십일조는 자원제물이 아니라 의무적인 예물에 관한 말씀이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하면 대단한 믿음의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율법을 보면 십일조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고백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적 헌금이었다.
카톡 나눔 21일
27:30-31, 땅의 소산물의 십일조
27장30절: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 그래서 십일조는 당연히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이다. 26절과 마찬가지로, 십일조도 원래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서원예물로 삼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바른 봉헌은 초태생 예물은 초태생 예물로 드려야 한다. 십일조 예물은 십일조 예물로 드려야 하고, 서원 예물은 서원 예물로 확실히 구분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율법은 교육하고 있다. 오늘날로 적용해보면 주정헌금,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구제헌금, 건축헌금 이런 헌금들을 ★그 헌금의 의미에 맞게 정확히 구분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 생각해서 헌금들을 통폐합하거나 생략해서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카톡 나눔 22일
27장31절: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 이 경우는 십일조 중의 소산물, 식물에 관한 것에만 해당되는 규례이다. 즉, 식물의 십일조인 경우에는 식물 자체를 드릴 수도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돈으로 대체해서 드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할 때에는 식물의 십일조 값에 1/5을 더해서 바치도록 명령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의미적으로는 전혀 무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정성껏 십일조를 하도록 안내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카톡 나눔 23일
27:32-33, 가축의 십일조
27장32절: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 열 번째의 것마다 갈등하지 말고 여호와께 십일조로 성물을 드리라고 명령하고 계시다. 가축의 십일조는 목자가 가축들을 자신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게 하여서 10번째로 지나가는 가축마다, 모든 10번째를 다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하고 계시다. 그래서 사람이 인위적으로 계산하거나 선택하지 못하도록 의무 사항을 말씀하고 계시다.
카톡 나눔 24일
27장33절: 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무르지 못하리라
→ 혹시 10번째로 지나간 것이 너무 좋은게 지나가서 좀 못한 것을 헌금하려 하다가는 처음 것과 나중 것 둘 다 십일조로 바쳐야 그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산하지 말고! 아까와하지 말고! 10번째의 것은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말씀하고 계시다. 이렇게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릴 때 계산하는 인간적 욕심을 조심해야 한다고 본문은 교훈해주고 있다. 계산하면 욕심이 생겨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가계를 결산하기 전에 1/10을 가장 먼저 떼어서 하나님께 드릴 때 그 십일조가 진정한 십일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카톡 나눔 25일
27장34절: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
이렇게 해서 우리는 신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레위기 율법의 말씀 전체를 살펴보았습니다. 과연 이런 율법의 정신들을 실천하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얼마나 될지 안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