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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전문] "상처 보듬는 게 '사람 사는 세상'"... 김운성 작가 노력에 울던 아이가 웃었다
▲ 23일 오후, 김운성 작가가 아이 어머니와 만나 밝게 웃고 있다. ⓒ 윤근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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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모전 '사람 사는 세상'에 전시된 조소 작품을 실수로 깨뜨린 아이는 당일엔 펑펑 울었지만, 이틀 뒤엔 환하게 웃었다. 작가가 500만 원 상당의 작품에 대한 보상금을 청구하는 대신 밤새 깨진 작품을 복원한 뒤 아이를 만나 안심을 시켜줬기 때문이다(첫 보도: 500만원짜리 작품 깨트린 아이... 작가 대응이 '감동' https://omn.kr/240yx ).
"아이 마음 헤아려주심에 감동, 눈물 나와"
전시된 작품을 지난 20일 오전 11시 30분쯤 깨뜨린 아이(6, 어린이집 재원생)를 아들로 둔 어머니는 23일 <오마이뉴스>에 보낸 긴 편지에서 "김운성 작가님께 정말 감사하는 표현을 어떻게든 하고 싶다"면서 "김 작가님은 깨진 작품을 밤새 하나하나 붙이고 미술관에 전시했다. 이런 모습이 큰 가르침이 됐다. 저희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심에 너무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났다"라고 밝혔다.
'평화의 소녀상' 작품으로 세상에 알려진 김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중력을 거스르고'란 제목의 조소 작품 3점을 한 묶음으로 전시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노무현 대통령 사상이 씨앗이 돼 만유인력을 거스르고 온 세상에 새싹으로 돋아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 지난 20일 김운성 작가의 작품 '중력을 거스르는'이 깨진 직후 모습. ⓒ 제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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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아이가 세 작품 가운데 하나를 깨면서 이런 작가의 시도가 사라질 위기에 내몰리는 듯했다. 하지만 김 작가는 "이 작품은 꿈을 가지고 생장하는 씨앗이며 바로 우리 아이들"이라면서 "작품을 깬 아이를 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변상·보상도 생각 안 하셨으면 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이번 전시를 주관한 서울 혜화아트센터 한은정 관장에게 보냈다.
대신 김 작가는 지난 21일 밤샘 작업을 통해 열다섯 조각이 난 작품을 이어 붙였다. 그런 뒤 22일 오후 작품을 깬 아이를 직접 만나 "깨진 것은 다시 붙였다. 이젠 괜찮다"라고 안심시켰다.
그랬더니 이 아이는 "제가 주황색을 정말 좋아해요. 브라키오사우루스(공룡의 일종)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활짝 웃었다고 한다.
이 아이 어머니는 23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작품을 깬 날엔 아들이 미술관을 나오자마자 10분간 오열했다"면서 "그랬던 아들이 복원된 작품을 보더니 밝게 웃었다. 어른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게 갖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김운성 작가 "아이와 나눈 이야기가 있는 작품, 소중하게 간직할 것"
김 작가는 해당 조소 작품에 대해 "아이의 상처를 보듬는 게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다. 아이와 함께 나눈 소중한 이야기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잘 보관하면서 앞으로도 이 작품을 다른 전시회에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듣고 있던 아이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다가, 곧 밝게 웃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모전 ‘사람 사는 세상’ 관람객들이 김운성 작가가 복원한 작품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윤근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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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이 어머니가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편지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기사 내용을 보고 연락 드렸습니다. 김운성 작가님께 너무 감사하다는 표현을 어떻게든 하고 싶어 여러 기사를 접하고 윤근혁 기자님께 메일을 보냅니다.
5월 20일 토요일 11시 반쯤, '노무현 전 대통령님 서거 14년 주기 추모전'이라는 간판을 보고 6살 아들의 손을 잡고 전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에게 "이렇게 훌륭한 분이 있었다"라고 작품들을 보면서 설명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중간에 있던 작품을 보며 아이가 너무 모양이 신기했는지 세 작품 중 두개를 손대어 그 중 하나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는 제가 잡았지만 남은 하나는 미처 잡지 못하여 저도 아이도 너무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더 놀라셨을 아트홀관장님은 "아이가 놀란 것 같으니 아이부터 진정 시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 아이로 인해 작품을 훼손하여 작가님께 죄송하다고 전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꼭 배상을 해드린다는 약속을 하고 나왔습니다.
죄송한 마음을 안고 미술관을 나오자마자 저의 아이는 놀란 마음에 오열을 하며 "다시는 미술관에 가지 않겠다"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저 또한 괜히 미술관에 가서 아이에게 너무 큰 짐을 준 거 같아 미안했습니다.
미술관 앞에서 우는 아이를 겨우 진정시키고 돌아와 그날부터 주말 내내 죄송함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뭔가 빠른 조치를 취하고 싶어, 월요일 아침에 작가님께 어떻게 이 죄송한 마음을 전할까 고민하던 중에 9시 반쯤 아트홀 관장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작가님께서 아이에게 부담과 큰 상처를 남기지 않았음 하며 변상과 배상을 바라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작가님은 "아이를 만나 괜찮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는 뜻도 나타내셨습니다.
너무 감사함과 죄송함, 그리고 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심에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났습니다. 관장님으로부터 "작가님이 1시 반쯤 혜화아트홀로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고, 아이와 함께 부랴부랴 아트홀로 향하면서 작가님의 마음을 아이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와서 보니 김운성 작가님은 깨진 작품을 밤새 하나하나 붙이고 다시 미술관에 전시를 하였습니다.
다시 복원된 작품을 보며 아이가 처음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이니 작가님은 다가오셔서 "깨진 거 다시 잘 붙였으니 이젠 괜찮다"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잘 복원된 작품을 보고 아이 또한 "어떻게 된 거지"하며 신기해하면서도 안도감에 그제야 옅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다시 보며 조심스레 사진도 찍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도 감상하며 복원된 작품을 "공룡의 모습과 닮았다"며 장난석인말로 한참을 웃으며 즐겁게 감상하였습니다. 작가님의 말 한 마디와 밤샘 작업이 아이와 저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로 저의 아이는 작가님을 통해 진정한 어른의 면모를 배웠고 저 또한 부모로서 좀 더 아이의 조심성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와 어른으로서의 자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이가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었던 기억을 작가님의 배려로 다시 행복한 기억과 공감으로 만들어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