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변한다지만 / 최종호
퇴직 이후 함께 지내는 친구 넷의 놀이터는 탁구장이다. 우연히 아파트 복지관에서 몇 번 같이 친 것이 인연이 되어 시작했다. 다닌 지 벌써 1년 가까이 된다.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 가지만 그들은 거의 빠지지 않는다. 글쓰기와 동화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주일 내내 출근 도장을 찍을 것이다. 휴일에도 개중에 한 사람이 신호를 보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만날 때가 많다.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열쇠를 놓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그들과 만나면 ‘탁구장이 문을 닫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화제로 얘기를 나눌 때가 많다. 회원이 늘기는커녕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래 다니다 보면 레슨을 받는 사람, 탁구장만 이용하는 회원, 월 임대료 등 묻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점이 많다. 회원 한 사람이 내는 회비야 뻔하다. 월세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아무리 계산해도 월 회비만으로는 관장의 인건비는커녕 임대료 내는 것도 부족해 보인다.
거의 날마다 나오는 회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레슨을 받으러 오거나 가끔 나오는 회원도 열 명 안팎이다. 오다가다 이용하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 돈을 벌려고 하는지, 사회봉사 차원에서 하는지 의문이 든다. 대학에 다니는 자식이 있으니 심심풀이 땅콩으로만 하지는 않은 터인데 말이다. 회원 수를 늘리려고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는다. 물려받은 유산이 많아서, 그의 아내가 버는 돈이 충분하기에 등등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탁구장은 상가 건물 4층에 있다. 면적이 100평에 이른다. 지난여름이 좀 무더웠나? 냉방기를 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전기료만 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취미로 탁구를 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넓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쾌적하다. 그만큼 관리에 신경을 쓴다는 말이다. 다른 회원의 말에 따르면 인근에도 탁구장이 있지만 환경 면에서 이만만 곳이 없다고 한다. 또, 어느 시간대나 자유롭게 칠 수 있다. 파이팅 넘치게 게임을 해도 눈치 받지 않아 좋다. 놀이터로는 최고인 셈이다.
오래 다닌 회원의 말에 따르면, 한때는 이곳도 수강생이 많아 별도의 코치를 두었단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이용자가 급격하게 줄어 이제는 관장 혼자서 가르친다. 하지만 그는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없기에 홍보나 기술 전수 면에서 회원을 늘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속단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전의 잘 되던 시절이 다시 오기는 어려울 듯싶다. 잘 치는 사람이 많아야 모여드는데 실력이 고만고만하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하여 퇴직한 친구 네 명은 열성 회원에 속한다. 약속이 있거나 사정이 생겼을 때를 제외하고 빠지는 날이 거의 없다. 보통 저녁 일곱 시 전후에 모인다. 엊그제 탁구장을 나서는데 한 친구가 “특별하게 하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그 시각이 너무 기다려진다.”라고 했다. 오후 네 시쯤 되면 몸이 근질근질 거린다는 것이다. 옆에 있던 친구도 공감했다. 운동과 놀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서다.
주변의 많은 지인이 골프를 친다. 서서하는 놀이 중에 제일 재미있는 일이라며 여려 번 권했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친한 사람들과 경치 좋은 곳에서 운동하고, 그 지역의 관광지를 둘러보면서 특별한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골프장 하나를 만들려면 많은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 잔디를 키우려면 농약은 또 얼마나 많이 하는가? 더군다나 살림도 넉넉하지 않는 형편이라 처음부터 내 몸에 맞는 옷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골프채를 잡아 보지 않은 나 같은 친구 넷이서 탁구를 즐긴다. 취미로 삼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단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라켓과 신발만 사면 목돈이 드는 일은 거의 없다. 다른 스포츠처럼 과시하려고 유명 브랜드의 비싼 옷을 철따라 입을 필요도 없다. 사시사철 반바지와 반 팔 티셔츠 두세 벌이면 충분하다. 게다가 추운 겨울에도 땀을 흘릴 만큼 운동량이 많다. 비와 눈이 와도, 태풍이 불어도 할 수 있다. 부상의 위험도 적다. 어디 그뿐이랴. 주로 편을 갈라서 하는 게임을 하는지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운동하고 나서 가끔 친구들과 어울려 마시는 맥주 맛은 또 어떤가?
이렇게 좋은 놀이터에서 친구들이 언제까지 즐겁게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관장의 처지에서 계속 손해를 보면서 탁구장을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예상이 빗나가기를 바란다. 손님이 북적거리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폐업을 고민하는 정도만 아니어도 좋겠다. 예전에는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직장인이나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시대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한다지만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첫댓글 골프 안 치시는 것 칭찬합니다. 하하!
저도 직장 다닐적에 점심시간마다 탁구치느라 정신 없었어요. 실력이 나은 사람과 치면 금방 늘던데 지금은 잊힌 추억이네요.
와우, 그래도 실력은 남아 있겠네요. 탁구 잘 치신다니 부럽습니다.
언제 한 수 가르쳐 주시길 청하나이다. 하하!
저희 둘째가 탁구 치는 걸 좋아해요. 제가 상대가 못 되어주니 형 오기만을 기다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거기 탁구장이 어디인지 계속 궁금해 하면서 읽게 되네요. 저도 같은 이유로 골프는 못 배웠습니다.
어디서 선배님 같은 열성 회원들이 한꺼번에 밀려들기를 기원할게요. 땀 흘릴 수 있어 재미나겠어요.
가까우면 저도 가서 합류할 텐데요. 하하하
제가 이래 봬도 왕년(초등학교)에 잠깐 탁구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답니다.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