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노트 36 – 지루할 때는 지루함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 수행 노트는 1996년도부터 미얀마에서 마하시 선원장과 한국인 수행자들의 수행면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참고는 수행자를 돕기 위한 묘원의 글입니다. >
질문 : 수행 중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자꾸 일어납니다. 어떤 생각은 불필요하게 느껴지지만 어떤 생각은 당장 필요한 것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 어떤 생각이든 단지 알아차릴 대상일 뿐이다. 오직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이다. 모든 생각은 모두 마음의 현상일 뿐이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든 모두 알아차려야 한다. 모든 생각에 예외가 없다. 오직 알아차리는 것만이 수행의 단계를 향상시킨다. 형상이 보이거나, 소리가 들리거나, 여러 가지 생각이 나는 것에 끌려 다니면 위빠사나 수행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알아차려서 끝내면 될 일을 알아차리지 못해 끌려 다니면 집중이 되지 않고 혼란만 있다. 모든 것을 알아차림으로 다스려서 집중의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 명상 중에 몸을 움직이는 것도 집중이 되지 않고 마음이 흐트러지는 요인이다.
< 참고 >
생각할 때는 알아차리지 못해 깨어있지 못합니다. 생각할 때는 현재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과거의 일로 후회하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갖거나 여러 가지 망상을 합니다. 과거나 미래는 현재가 아니라서 상상하는 순간입니다. 상상은 관념이라서 실재하는 진실을 알 수 없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이때의 마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수행은 생각을 끊고 마음을 대상에 기울여 고요함을 얻습니다. 생각할 때는 늘 혼란한 상태에서 들떠있지만 생각을 끊고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면 고요해져 지혜를 얻습니다. 생각할 때는 세간이고 생각을 끊고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집중이 되어 지혜가 나면 출세간입니다.
인간이 생각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을 기억해서 실천하고, 바른 가르침을 기억하고, 좋은 계획을 세우는 일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수행을 할 때는 알아차릴 대상이 몸과 마음입니다. 좌선을 할 때는 좌선을 할 때의 알아차림이 필요하고, 경행을 할 때는 경행을 할 때의 알아차림이 필요합니다. 일상의 알아차림이 필요할 때는 일상의 알아차림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을 망상이라고 하는데 이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생각을 끊는다는 의미에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은 필요한 일을 하지 않고 불필요한 일에 마음이 팔려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합니다. 좌선 중에 망상을 하면 먼저 망상하는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망상으로 인해서 생긴 가슴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좌선을 할 때 좋은 계획이 떠오르면 ‘좋은 계획을 하네’ 하고 알아차린 뒤에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럴 때는 좋은 계획은 이따가 세우고 지금은 호흡을 알아차려야 할 때라고 다짐을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나 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무엇을 할 때인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생각이라고 해서 무조건 없애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생각이나 단지 생각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생각도 하나의 법으로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면 오히려 알아차리는 힘이 증장됩니다.
2. 질문 : 좌선을 할 때 이따금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나 생각나는 일들로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답변 : 대상을 알아차릴 때 자기 몸과 마음만 대상으로 알아차려라. 그 외에 다른 것은 대상으로 할 것이 없다. 소리가 들릴 때는 ‘들림’이라고 알아차리고, 생각이 날 때는 ‘생각남’이라고 알아차려라. 무엇인가가 보이면 ‘보임’이라고 알아차리고, 냄새가 날 때는 ‘냄새남’ 이라고 적절한 명칭을 붙여서 알아차려라.
< 참고 >
마사히 수행방법의 특징 중의 하나가 명칭을 붙여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대상에 명칭을 붙이면 막연하던 대상이 개념화되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수행을 시작할 때 초보수행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칭을 붙이면 대상이 분명하게 드러나 알아차리기가 좋습니다. 어떤 대상이 보일 때 보이는 것을 알아차리려고 하면 확연하게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리는 힘은 약하고 마음이 대상에 끌려가는 힘은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보임’이라고 명칭을 붙여서 알아차리면 보이는 것을 하나의 현상으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소리가 들릴 때도 ‘들림’이라고 명칭을 붙이면 소리로 인해서 좋다거나 싫다는 느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좋을 때나 싫을 때도 ‘좋아함’ ‘싫어함’으로 알아차리면 분리가 됩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명칭을 붙이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명칭은 마음을 대상에 강력하게 붙이는 효과가 있지만 잘못하면 대상의 실재를 알아차리지 않고 습관적으로 명칭을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호흡의 ‘일어남’을 알아차릴 때 명칭을 붙이다보면 호흡이 일어남을 알아차리지 않고 단지 명칭을 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호흡이 꺼졌을 때 일어남이라고 할 수 있고, 또 일어났을 때 꺼짐이라고 명칭을 외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대상의 실재를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이 아니고 염불수행이 됩니다. 염불수행은 대상과 하나가 되어서 근본집중을 하는 사마타 수행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대상의 실재를 알아차리는 찰나집중을 해서 지혜를 얻는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집중이 된 상태에서는 명칭을 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을 할 때 반드시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을 구별할 필요 없이 적절하게 혼용해도 좋습니다. 마하시 사야도께서 하신 수행은 사마타 수행이 아닌 순수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하지만 수행자의 근기를 돕기 위해서 사마타 수행의 명칭을 도입하여 혼용하셨습니다. 이러한 마하시 사야도의 선택은 탁월한 방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초기에 집중이 되지 않으면 명칭을 붙여서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집중이 되면 명칭을 붙이지 않고 알아차리는 수행도 해야 합니다.
특히 미세한 대상인 마음을 알아차리거나 느낌을 알아차릴 때는 명칭이 가로막기 때문에 명칭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느낌과 마음은 미세한 대상이지만 명칭은 거친 대상이라서 섬세함이 없습니다. 미세한 대상을 알아차릴 때는 마음을 고요하게 해서 대상에 기울여야 합니다.
3. 질문 : 좌선을 할 때 지루한 생각이 들어서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자꾸 시계를 쳐다보고 좌선 시간이 끝나기만 바랍니다.
답변 : 지루할 때는 ‘지루함, 지루함’ 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야 지루하지 않은 마음이 일어난다. 어린아이는 자기가 하는 일이 지루하지 않다. 그 대신 이익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수행자는 지루함을 알아차려서 이익을 얻는다. 지루함을 알아차리지 않고서는 지루하지 않은 단계가 오지 않는다. 지루함, 싫어함, 미워함, 불편함 등등 나타난 모든 것을 알아차리지 않으면 이것들이 극복될 수 없다.
< 참고 >
지루함은 극복해야할 대상이 아니고 알아차릴 대상이라서 법입니다. 법은 와서 보라고 나타난 것이지 없애야할 대상이 아닙니다. 나타난 것은 어떤 것이 되었거나 전부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수행은 좋은 것이나 나쁜 것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지루함의 원인은 밖에 있지 않고 자신의 마음가짐에 있습니다.
대상에 흥미를 잃으면 지루해집니다. 하지만 지루함을 알아차려서 극복하면 수행이 발전합니다. 수행은 반드시 어려움 속에서 성장합니다. 마음은 매순간 변합니다. 지루할 때는 먼저 지루한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지루한 마음을 알아차리면 나중에 생긴 마음이 먼저 일어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루한 마음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지루한 마음을 알아차린 새로운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지루한 마음이 완전하게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지루한 것이 순간적으로 사라졌어도 마음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하게 사라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루한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가슴에서 지루한 마음으로 인해서 생긴 느낌이나 호흡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지루한 기억이 지워지고 알아차림이 있는 새로운 마음이 자리를 잡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상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때 지루하게 느낍니다. 호흡을 알아차릴 때 호흡이 매번 같은 호흡이라고 여기면 단순함에 흥미를 잃을 수 있습니다. 이런 때는 호흡의 변화를 주목해야 합니다. 호흡의 일어남 꺼짐은 바람의 요소로 일어날 때와 꺼질 때의 바람의 강약이 다릅니다. 일어날 때의 팽창과 꺼질 때의 수축을 느끼면 호흡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흡에는 부풀고 꺼짐이, 길고 짧음과,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밀고 당김이 매번 다르게 나타납니다. 코의 호흡에서는 들숨과 날숨의 차이가 있으며, 바람이 들어갈 때는 차갑고 나올 때는 따뜻합니다. 이런 변화를 알아차리면 흥미를 잃지 않아서 알아차림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호흡을 알아차리다 보면 호흡과 호흡 사이에 작은 정지된 순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이 있은 뒤에 다시 일어나기 전에 짧은 순간의 멈춤이 있습니다. 수행을 해서 집중이 되면 호흡의 멈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것도 호흡에서 새로운 발견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다 보면 다음에는 일어남과 꺼짐 사이에 있는 짧은 멈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단계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호흡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주의할 것은 호흡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자는 현상에 개입해서 어떤 목적을 성취하려고 알아차려서는 안 됩니다. 단지 대상과 아는 마음을 분리해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 대상이 가진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최종 목표는 존재의 성품인 무상, 고, 무아를 아는 것입니다. 세 가지 법을 알아차릴 때까지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무상, 고, 무아를 알았다고 해서 완전하게 안 것이 아닙니다. 아라한의 무상, 고, 무아를 알 때가 비로소 법의 완성입니다.
수행 중에 지루함을 느껴서 수행이 하기 싫을 때는 앞서 밝힌 것처럼 지루해 하는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가슴의 느낌과 호흡을 알아차리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좌선을 시작할 때의 방법을 다시 순서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서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좌선을 시작할 때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리에 편안하게 앉아서 몸의 긴장을 풉니다. 턱을 당기고 가볍게 눈을 감습니다.
둘째,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수행을 시작할 때 시작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눈꺼풀이 닿아있는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눈으로 보지 말고 눈꺼풀이 닿아있는 느낌을 느낍니다. 따뜻함, 진동, 빛 등등 어떤 느낌이나 약 1분정도 알아차립니다.
넷째, 입술이 닿아있는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따뜻함, 진동, 확장되는 느낌 등등의 느낌을 약 1분정도 알아차립니다.
다섯째, 손이 닿아있는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손이 무릎에 닿아있거나 손이 포개졌을 때의 따뜻함, 무거움, 진동 등등의 느낌을 약 1분정도 알아차립니다.
여섯째, 엉덩이가 바닥에 닿아있는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무거움, 딱딱함, 진동 등등의 느낌을 약 1분정도 알아차립니다.
일곱째, 앉아있는 몸 전체를 알아차립니다. 지금까지는 몸의 일정부분을 알아차렸지만 이제는 앉아있는 몸 전체를 크게 알아차립니다.
여덟째, 몸의 어느 부분에서 두르러지게 나타나는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코, 가슴, 배, 몸의 일부, 전면 중 어느 곳에서나 움직임이 커서 알아차리기 좋은 위치를 선택하여 그곳에서 호흡의 일어남 꺼짐을 알아차립니다.
이상은 신수심법을 모두 실천하는 위빠사나 수행방법입니다. 처음에 좌선을 시작하고 이 단계까지 무난하게 이르면 집중력이 향상되어 지루한 느낌이 사라지고 새롭게 수행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한 시간 좌선 중에 지루하거나 수행이 하기 싫어질 때마다 이 프로그람으로 수행을 다시 시작하면 수행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