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2
류인혜
* 비 오는 날의 고속도로
2003년 10월 20일(월) 이곳에서는 가장 위층인 듯한 A 층으로 올라가서 아침 식사를 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주 선생님을 만나 함께 올라가서 무조건 제일 큰문을 열어보니 식당이다. 일 층이 식당이던 다른 호텔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우리가 첫 번째 손님이다.
여러 종류의 과일주스가 있어서 조금씩 맛을 보았다.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평소의 습관에선지 국을 먹지 못하니 몸이 건조해진 기분이다. 그래서 무엇이나 물기가 많은 음식만 눈에 들어왔다. 아침 식사에 여러 종류의 빵이 나온다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게 음식을 먹을 때, 가장 실감이 된다.
식당에 실내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서 별일도 다 있구나, 했는데, 그런 차림의 사람이 자주 눈에 띄어 생각해 보니 이곳이 온천지대라서 그렇다는 결론이다.
아침을 먹은 후 다시 가방을 끌고 나왔다. 무거운 것을 계속 끌고 다녀서인지 오른쪽 팔이 묵직하며 아프다. 밤새 비가 내렸다는데 곤히 자느라고 알지 못했다. 가방을 다시 풀어서 베네치아에서 샀던 우산을 꺼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우산은 현지조달로 결정했기에 짐을 줄였다.
이탈리아 남부지방에 산다는 운전사 아저씨는 마음이 좋게 생겼다. 가이드가 가르쳐준 이탈리아식의 아침 인사를 잊어버려서 “안녕하세요”라고 우리말로 인사를 했다. 베네치아에서 피렌체까지는 270km이다. 3시간 30분이 걸린다.
8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하면서 우산을 쓰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길가에 보이는 풍경들에 눈이 간다. 집들의 정원에 우물 같은 구조물이 있어 그곳에 꽃꽂이를 해두었다. 이곳은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린다. 그래서 기온이 많이 내려가지 않는다. 담장의 울타리에는 빨간 열매가 달려 있다. 측백나무가 높이 자라난 광경이 자주 눈에 뜨인다.
가이드는 이탈리아의 여러 가지를 알려주고 싶은 모양이다. 앞으로 방문할 곳에 대해서 말한다. 이곳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는 성격이기에 별다른 캠페인은 없는데, 휴가철에는 개를 버리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인다. 잘 기르다가도 휴가철에 집을 나설 때는 개를 버려둬 버리기에 집을 잃은 개들이 돌아다니는데 폼페이 유적지에 특별히 개가 많단다. 관광객들이 주는 먹이 때문이라고 한다. 앞으로 가볼 곳에 개들이 돌아다니는 광경을 생각해 보니 너무 싫다. 덤벼들면 어쩌나 걱정이다.
건물의 창에 덧문을 대는 것은 추위를 피함이 아니라 강렬한 햇볕을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나가는 길옆의 주택에는 집터가 넓어서 주변에 텃밭이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시속 100km를 넘지 못하는데 길에서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계가 달려서 나중에 그것으로 확인을 한다. 이탈리아의 고속도로는 남북으로 뻗어있는데 피렌체의 남서부를 거쳐 각지로 연결이 된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를 만들 때 참조했던 곳이기에 흡사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이드도 그 점을 강조했다.
강이 보여서 무조건 ‘포’강이라고 생각했다. 흐르는 물 위에 비안개가 끼었다. 비 오는 날에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모두 감상적으로 된다. 느닷없이 패티 김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흥에 겨운 이숙 선생님은 마이크를 켜서 따라 부르니 노래가 사라져버려서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산을 넘어간다. ‘아펜니노’ 산맥이다. 안개가 끼어서 풍경이 자주 가려졌지만, 집들이 높은 곳에도 들어서 있다. 생각해 보니 넓은 평지에 세워진 도시도 지나쳐 가지만 산에도 훌륭한 건물들이 많이 지어져 있었다. 수도원이라든가 성, 그리고 일반 가옥까지 산등성이나 산마루에 상관없이 지어져 있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려 어제 이동할 때 배운 대로 화장실을 쓰고 입맛에 꼭 맞는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버스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하면서 가이드는 유명한 메디치 집안에 관해서 설명을 많이 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이 그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귀찮아서 적지 않았더니 나중에는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헛갈린다. 또 이곳은 포도주가 유명하다. 흉작이 된 해의 포도로 담은 포도주가 제일 맛이 있다고 한다.
12시가 되기 전에 피렌체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도 도시입장료(200유로 정도)를 낸다. 버스가 잠시 머물 동안 내려서 다리 운동을 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서 면세점에 들렸다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면세점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와 있다. 손님이 들어가면 한 사람이 모아서 안내한다. 우리나라 말로 하니 재미있다. 표를 하나씩 주고 계산할 때 내라고 했다.
명품이 많다고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눈에 들어오는 상품이 명품이 된다. 구두를 사고 싶어서 구두 판매대에 갔는데 마음에 드는 것은 발에 맞는 크기가 없다. 물건이 많지 않다. 재고품을 정리하는 곳인가 보다. 다들 무엇인가 사 들고 버스에 오른다.
시내로 가서 버스에서 내려 걸었다. 길이 좁으니 걸어 다녀야 한다.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걸어 들어가서 점심을 먹었다. 건물에는 아래층에 작은 가게들이 있는데, 화구상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았다. 일행을 잃어버릴까 염려가 되는지 어서 가자고 재촉이 심하다. 음식점 앞에 가게들이 있다. 김병권 선생 사모와 어서 먹고 나와서 쇼핑을 하자는 약속을 했다. 테이블마다 커다란 포도주병과 물병이 놓였다. 빵과 스파게티를 먼저 준다.
서빙을 하는 아저씨께 많이 달라고 하는 사람과 조금만 달라는 내가 비교된다. 고기와 시든 채소가 나온 후 배를 후식으로 준다. 이번 식당에서 주는 돼지고기는 맛이 있다. 손을 닦는다고 물티슈를 준비해 가서는 가방에 넣어두고 사용해야 할 때는 잊어버리곤 한다. 빵을 뜯어 먹을 수가 없다.
음식점 앞에 있는 가죽제품 가게로 들어가서 김병권 선생의 사모가 립스틱 넣는 작은 소품을 네 개 샀다. 그분이 준비해온 달러는 받지 않는다고 해서 20유로를 빌려주었더니 한국 돈으로 계산해서 준다. 가죽이 부드러워서 가방을 하나 사고 싶었지만 참았다.
첫댓글 이탈리아 고속도로를 달리려면 시속 100km를 넘어서는 안되는군요. 비 오는 날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도 모두 감상적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