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사모님이 될 뻔한 이야기 / 양선례
이건 순전히 둘째 시누이 탓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점집은 물론이고 역술원에도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형님은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슬쩍 다녀온다. 내게도 시킨다. 구례 쪽에 땅을 살까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을 때도,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도 그랬다. 그쪽 방향에 재물 운이 들었는지 물어봐야 한단다. 심지어는 2박 3일간 입원하여 몸 이곳저곳을 정밀검사한 끝에 어쩌면 가을에 수술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그때도 그랬다. “어이, 재수 없으면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네. 그러지 말고 한 번 가 보소. 내 주변의 oo이는 맹장 수술하다가도 죽었다네. 올해 자네 사주가 어쩐지 궁금하네.”
처음에는 웃어넘겼다. 그런데 찜찜한 게 마음에 남아 있었는지 출장이 일찍 끝나서 집으로 오는 길에 그 집 앞을 지나자 퍼뜩 생각이 났다. 아, 맞다. 형님이 저기 한 번 가 보랬는데. 주차하고 안에 들어서자, 안경을 쓴 초로의 아저씨가 앉으라고 권했다. 생시를 묻고는 책을 찾아가며 알 수 없는 꼬부랑글자를 종이에 적었다. 그러더니 한참 후에야 “꼭 수술해야 돼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찬 바람 불기 시작하면 괜찮아지겠는데요.”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대학병원에서 지어준 약 먹고 몸조리 잘하니 몇 년간 통증이 심했던 허리가 신통방통하게도 괜찮아졌다.)
겨울방학이 되자 여수 시내 지도를 날마다 들여다보았다. 과연 어디로 발령받게 될까? 근무 희망지를 섬으로 쓴 걸 후회했다. 남편도 없이 아이 셋만 데리고 의료 시설이 열악한 섬에서 잘 지내고 올 수 있을까?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 기분 좋은 날엔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야. 이참에 자연과 더불어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는 거야. 평생을 그곳에서 터 잡고 사는 사람에 비하면 나는 잠시 머물다 오는 거잖아.’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다녀올 수 있는 게 어디냐고 단단히 마음을 다잡아도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분은 그냥 인자한 동네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왜 왔는지를 듣고 한참 책자를 뒤적이더니 “그런데 꼭 3년을 꼬박 있어야 해요? 2년 만에 나오겠는데. 원래가 성실한 사람이라 학부모들한테 인정도 받고 잘 살다 오겠소.” 요 며칠 냉탕과 온탕을 오가던 마음이 그 한마디에 뻥 뚫린 듯 편안해졌다.
친한 언니가 이번에는 죽도봉 아래 수상을 잘 보는 데가 있다고 함께 가보자고 했다. 올망졸망한 양옥이 연달아 있어서 겉만 보기에는 가정집인데 색색의 헝겊이 긴 대나무 막대기에 꽂혀있는 것이 여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려 주었다. 지그시 얼굴을 쳐다보더니 대뜸 “이런 데 오지 마시오.” 그런다. 콧구멍 양 끝에 밥이 많이 들어서 돈 걱정 안 하고 살겠단다. 넙데데하여 달걀형 미인과는 거리가 한참 먼 사각 턱도 말년 운에 해당하니 걱정 붙들어 매란다. 처음부터 크게 뭘 기대하고 간 것도 아니라서 웃으면서 나왔다.
시작은 둘째 시누이 덕분이었으나 나중에는 궁금한 게 있으면 내 발로 찾아다녔다. 남편이 선배와 동업한다면서 회사를 관둔다고 했을 때가 결혼 9년 차였다. 나는 적게 먹고 가는 똥 싸자는 주의이다. 당신이 사업가였더라면 애초에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그 선배는 믿을 수 있다면서 이미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마땅히 의논할 상대도 없어서 내 발로 ‘인자한 할아버지’를 찾았다.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남편 뜻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대출로 빚만 떠안을 거다. 회사원이 체질이다.)을 전하자, 남편은 그때야 뜻을 접었다.
40대가 되자 숨쉬기 운동만 하던 남편이 밤마다 탁구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 사장은 원래 장의사와 묘 이장하는 일이 본업인데, 병원마다 장례식장이 생기면서 장의사를 더 이상 부르지 않는 데다 화장 문화가 자리 잡자 생계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매장 한쪽을 막아 탁구장으로 바꿨다고 했다. 회원이 많지 않아선지 안주인이 해 주는 저녁을 먹고 오는 날도 있어서 사장과 별나게 친한가 보다고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흘렸다.
그러기를 몇 년, 공달(윤달)이 든 해였다. 정초가 되자 남편이 올해가 가기 전에 산소를 이장해야겠다고 말했다. 그 일 끝나면 꼭 어디로 떠날 사람처럼, 마지막 과업을 완수하는 것처럼 들려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산일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떠올랐다. ‘인자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운명은 알 수 없었는지 평균 수명에도 못 미치는 연세로 돌아가셨기에 이번에는 철학과로 유명한 서울의 모 대학을 졸업하여 제대로 주역을 풀어내는 분이라고 소문난 데를 찾아갔다. 마침 우리 집에서 3분만 걸으면 되는 아파트였다.
“구덩이를 보면 남편은 죽어요.” “예? 그럼, 남편은 차에서 기다리고 제가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라는 말씀인가요?” 어이가 없는지 한참 동안 내 얼굴을 쳐다본다. 선심이라도 쓰는 듯 한마디를 툭 던진다. “그 일을 하면 남편이 죽는단 말이오, 죽어요.” 그러면서 덧붙인다. “어른들이 지금 있는 곳이 너무너무 편하다는데 왜 옮기려 하는 거요? 그대로 두시오.” 그 말을 그대로 전했더니 쇠고집 남편이 비로소 꺾였다. 그리고는 공원묘지 사용권을 연장(15년이 만기, 한 번에 한하여 연장이 가능하다.)했다.
나는 절에 가면 신발 벗고 대웅전 들러 부처님께 절한다. 물론 불전함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친구가 목사로 있는 교회에 가면 찬송가도 부르고, 눈 감고 기도도 한다. 아프리카 선교 여행에 열흘간 따라간 적도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세상사다. 연약한 인간이 만든 게 종교라는데 나는 종교가 없다. 대신 궁금한 게 생기면 간간이 철학관엘 간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다녀오면 마음이 편하다. 조심하라는 건 기억하고 (왕(王)자를 그리거나 부적을 붙이지는 않는다.) 이럴까 저럴까 헷갈리던 마음이 안정이 된다. 그걸 절대적으로 신봉하거나 기억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흘려들은 건 어쩔 수 없는 내 운명이거니 여긴다.
오래전에 셋째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내게 '인자한 할아버지'가 그랬다. “이 아이 밑으로 한 명만 더 낳으면 걔는 정주영이 빰치는 부자가 될 것이오.” 어디 보자. 그 할아버지 말을 들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재벌 집 사모님? 으이구, 꿈 깨셔.
첫댓글 아이고, 아깝네요. 재벌 집 사모님이랑 친구 할 뻔했는데.
그러게요. 이제 와 생각하니 눈꼽만큼 아쉬움이 드는군요. 그때는 단 0.0000001%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하하.
아이고, 저도 며칠 전 조카가 그랬어요.
"이모, 순천 죽도봉 아래 용한 점집이 있다는데 가볼까요?" 했답니다. 저는 가지 않았네요. 오래전 한번 갔었는데. 말년에는 떵떵거리고 산다 했는데 그러지도 않아 그 후론 절대로 안 간답니다. 듣고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건 사실인데요.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그 이후로 점집에는 가지 않습니다. 내 동생 아플 때 엄마 따라서 딱 한 번 갔었지요.
선생님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저도 철학관을 찾아갔어요 지금은 그렇게 절박한 일들이 없으니 잊고 살지만 타고난 운명이 있다고 믿는 답니다. 미신과 역학은 다른 개념 이라고 생각 합니다.
저도 몇 년에 한 번씩, 마음 내키면 다녀 옵니다. 어디든 다녀와서 내 맘 편하면 장땡 아닐까요?
글이 재미있습니다. 나는 점집을 가본적은 없지만 젊었을 때,아아추어(?) 가 보는 사주풀이를
받어 본적이 있는데 그때는 거의 믿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고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아요.
지나고 나면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저도 많았습니다. 예전 글에서 썼듯이 "큰며느리 노릇하고 살겠다."하여 그때는 코웃음쳤는데 이제 보니 정확하게 맞는 말이었어요.
하하하, 선생니임, 전 선생님의 글 한자도 안들어와요. 오로지 그곳에 가고 싶어요. 선생님 다니시는 곳 한 번 데려가줘요. 저는 깃발꽂아진 곳은 지나가기도 무섭던데요. 만만한 챗 GTP가 부담 없나봐요. 사실 꼭 가서 들어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글 읽고 나니 마음이 시원하네요. 호호
아이고 교회 다니시는 분이 왜 이러실까요? 하하하. 저도 예전에는 무서웠는데 이제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이팝나무 어머, 아니에요.저 친양대원처럼 보이지요?
강진 무위사에 적을 둔 보살이랍니다.
법명은 진불심이고요.흐흐.관세음.
나와 같은 이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생각하며 글 읽었네요. 하마터면 다정한 양 교장샘을 못 볼 뻔 했네. 하하하.
아이고 선배님! 우리 둘의 공통점으로 한꺼번에 묶어서 매도할까 겁이 납니다. 선배님 글 읽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글에서 많이 배웁니다. 이번에는 글이 재밌어서 또 배웁니다.
저도 매번 재미있게 쓰는 게 목표인데, 잘 안됩니다. 이번에는 그랬다니 고맙습니다.
넷째를 낳을 걸 그랬네요. 나도 덕 좀 볼 것인데. 아니 우리가 만나지도 못했겠구만.
선생님은 굳건한 신념으로 사실 분 같은데요. 그렇지 않다니 왠지 선생님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하하.
셋째까지 보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아쉽네요!
오마나. 이미 셋 있는데 넷째를 낳으라고 한걸요.
@이팝나무 긍께요, 넷까지 봤으면....
여수와 순천에서 용한 곳을 다녀오셨네요. 선생님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