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불행을 좇아내는 믿음
03/13목(木) 마 15:21-28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마 15:22).
성경은 인간의 불행의 요인이 죄라고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사망은 하나님과 단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단절되면 영육의 어려움이 옵니다. 죄는 인간을 병, 불행, 실패로 인도하며 그 배후에는 사단의 역사가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요일 3:8).
신앙은 주권이 중요합니다. 부모의 신앙이 바를 때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본문의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나와 귀신 들린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합니다.
귀신이 들어온 것은 인간의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고, 오직 기도로, 예수님만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불행을 좇는 믿음입니다.
▣절대 간구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간청하였다.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외치고 있으니 그를 안심시켜서 떠나보내 주십시오”(마 15:23). 딸을 고쳐달라는 여인의 말에 예수님은 반응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상황으로 이방 여인은 소리를 지를 수 없음에도 소리를 지른다는 것은 절대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불행의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오직 주님뿐이라는 신앙입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간절한 기도,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평안이 올 때까지 간구합니다.
▣겸손한 신앙입니다.
예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라고 여인을 개에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여인은 자신은 개와 같은 존재이지만 부스러기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말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마 15:27). 이처럼 은혜를 구하는 자의 태도는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생각만이 참 진리라는 믿음의 고백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는 태도입니다. 겸손할 때 귀신의 역사가 끊어집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주인 된 태도입니다. 교만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입니다.
여인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자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바로 그 시각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마 15:28).” 여인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자 즉시 딸의 병이 낫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믿음을 인정받습니다. 불신자들도 사실은 주님의 은혜로 살고 있는데, 그들이 그것을 모를 뿐입니다.
And....
우리가 영적 열매를 맺는 것은 ‘일하는 것’에 있지 않고 ‘죽는 것’에 있습니다. 일시적인 기쁨을 선택하든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여 영생의 열매를 맺든 그것은 우리의 선택으로 결정됩니다. 십자가의 길을 선택할 때 육안의 눈으로 보면 그 길이 고난의 길인 것 같지만, 주님과 함께 하는 그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한 가지 그분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도구가 된다는 것은 내가 죽고 주님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내가 도구가 될 때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 우리의 영생의 삶을 결정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때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어둠의 길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있는지 Test를 하십니다. 신앙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이 되면 터널을 통과한 듯 분명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동안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느끼지 못할지라도 나를 안타깝게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 자녀를 처음 학교에 보내고 잘 가고 있는지 몰래 뒤따라가는 부모의 심정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짓 자아에 속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주님 안에서 요동하지 않으면 반드시 우리에게 보상을 주십니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기도 응답을 주시든, 아니면 생각지 않는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공로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고 주님을 나타낼 때 주님은 승리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에 승리하면 반드시 전리품을 얻게 됩니다. 내가 죽고 주님으로 살 때 주시는 보상을 생각하면 죽는 것이 즐겁습니다. 우리가 죽기 싫은 것은 내가 죽으면 손해 볼 것 같기 때문이지만 죽었더니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큰 응답이 기다리고 있다면 죽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자아)가 살아 있으면 갈등이 많습니다. 내가 죽으면 갈등이 없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어떤 상황이 내게 올지라도 그 상황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그 갈등은 사라집니다. 진정 죽은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고, 감정도 없고, 자신의 생각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첫 주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 위에 자신이 십자가에 달린 모습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달린 자신의 모습이 보이면 자아 죽음은 쉽게 넘길 수 있습니다. 십자가 죽음 뒤의 진정한 부활의 기쁨으로 불행을 좇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 앞에
https://youtu.be/SEOGOUUOT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