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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퇴직 기념 미국 여행기
2008년 8월 말로 38년간의 교직에서 정년퇴직을 하였다.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미국 LA에 살고 있는 딸이 아시아나 항공 비즈니스를 보내와 아내와 함께 한 달간의 미국 여행 일정을 잡았다.
10월 22일 아침 9시 30분 인천행 공항버스에 올라 12시에 인천공항도착, 비지니스 탑승권 좌석을 받고 가방을 부치고 나니 1시, 공항 4층에 새로 지은 아시아나 비즈니스로 가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였다.
4시 반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등석이라 2층이고 의자가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있는데 2. 3. 4단계를 눌러보고 5단계를 누르니 완전 취침자세다. 13시간의 긴 여행을 감내해야한다.
영화를 두 편 보고 5단계 단추를 눌러 취침상태의 의자에서 잠을 청했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잠을 자는 수밖엔 없다. 한잠을 자고 일어나 기창을 여니 날이 밝아온다.
10월 22일 (미국시간)
아침 11시 30분, LA공항에 도착, 수속을 마치고 여행 가방을 찾아 나오니 딸과 사위가 반가이 맞는다. 공항을 나와 회초 밥으로 점심을 먹고 딸네 집으로 가서 간단히 샤워만 하고 곧장 잠으로 빠져들었다. 저녁식사는 한인 타운에 가서 순두부백반을 먹고 집에와 앨범을 보면서 휴식을 취했다.
10월 23일 목요일
피곤 탓인지 사위 출근도 못보고 딸이 아시아나 항공회사로 출근하자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오후 1시쯤 점심을 차려먹고 아내와 외출을 하였다.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사위는 밤샘근무라 내일 아침 퇴근이다. 의사란 직업도 쉬운 일이 아니다. 딸이 퇴근하여 정담을 나누다 잠자리로 들었다.
10월 24일 금요일
오전 내내 휴식을 취한 후 주변을 산책하고 TV를 보다가 사위와 딸이 퇴근, 한인 타운의 서라벌 식당에 가서 불고기로 포식하고 집에와 커피를 마시며 사위가 찍어둔 사진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10월 25일 토요일
사돈어른 묘지 참배를 가기로 하였다. 사돈어른이 금년 6월 4일 숙환으로 별세하셨는데 직장에 매인 몸이라 미국까지 조문을 갈 수 없어 딸 편에 조의금만 전해드렸다. 사부인에게 전화 인사를 하고 묘소근처에 도착, 생화를 사가지고 참배를 한 후 돌아가신 사돈의 이야기를 사위로부터 들었다.
작년 8월 막내아들의 결혼을 보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끄시고 비행기로 한국에 도착. 명암타워 결혼예식장에서 아들의 결혼식을 지켜보며 무척이나 기뻐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참배를 마치고 그리히치 공원 내에 있는 그리히치 천문대를 찾았다. 3층 전망대에서 할리우드가 잘 보이는 곳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노을이 짙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니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위는 장소만 바뀌면 셔터를 눌러댄다.
10월 26일 일요일
딸은 출근, 사위와 예배에 참석하였다. 두개의 교회가 한쪽은 한국어로 또 한쪽은 영어로 예배를 본다. 사위는 영어예배 교회로 나와 아내는 한국어 예배장소인 나성영락교회로 갔다.
특별 찬양으로 서울 영락교회 국악찬양팀이 찬송가를 순수한 우리말 가락으로 연주하는 게 특이했다. 예배를 마치고 사위가 근무하는 USC병원을 가 보았다.
가난한 환자를 위한 병원과 부자를 위한 병원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하며 사위는 15층 병동에서 근무하고 있단다.
부자 병원은 병실 1개가 10평정도로 인터넷까지 깔려 있고 간호사 1명을 배정받는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자(12세)가 USC병원에 왔을 때 사위가 직접 진료를 했단다.
딸이 퇴근하고 오자 사위가 갈비를 굽기에 도와 주렸더니 혼자서 하는 것이 편하단다. 사위는 술과 담배를 일체 하지 않는다. 건강에 해롭단다. 동네를 산책하고 멕시코 여행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무궁한 자원의 나라 멕시코를 찾아서
아침 일찍 딸이 관광회사로 우릴 데려다 주고 아시아나 항공회사로 근무하러 떠났다. 10인승 봉고로 맥시코를 향했다. 6명이 여행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4명이 서부여행 마치고 피곤하다며 불참. 나와 아내 단 둘만의 여행이다.
맥시코는 우리나라와 공통점이 많다. 흰옷을 즐겨 입고 애기를 뒤로 업는 것, 등
오렌지 마을을 지나 딸기 밭이 나오는데 3부작이 가능하고 한 번 파종하면 4개월을 따낸단다. 연중무휴 딸기를 생산하는 셈이다. 그 넓은 밭에 모종은 맥시코인들의 몫이란다.
또 토마토는 한번 심어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 수확을 한다니 기후의 선택을 받은 축복받은 미국이다.
샌디에고를 지나는데 이곳은 해병의 도시로 해병대 때문에 먹고 산다며 한인이 3만 명이 살고 있고 주로 군인가족과 용접공이 많단다.
샌디에고의 시내를 관광한 뒤 태평양 바다를 끼고 달려가는 기분이 너무 좋다.
맥시코 국경을 통과 티화나시의 풍물시장을 관광하고 바하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남으로 달렸다. 맥시코는 우리나라 9배의 크기로 인구가 1억2천명 97%가 천주교 2%가 신교 기타 1%이며 65%가 2개 언어를 사용하고 15%가 인디언 언어를 사용한다.
인종은 60%가 유럽과 인디언 혼혈이고 30%가 순수 인디언족이고 10%가 유럽의 백인으로 스페인족으로 되어있다고 안내자가 설명한다.
남으로 가는 도중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수님상이 서있는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전 재산을 바쳐 세웠단다.
맥시코의 행복지수는 우리나라의 5배이며 석유생산 5위, 은생산 세계1위로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날씨가 건조하여 풀이 연중 자라고 지하수가 풍부하다. 구리는 전 세계의 30%가 생산된다.
2차 대전 후 5대강국이었고 월드컵대회를 두 번이나 치룬 나라인데도 부정부패가 심해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포장마차 문화가 발달되어 먼저 먹고 나서 돈을 지불하는 후불제인데 그냥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단다.
엔세나다에 도착, 여장을 푼 후 정통 멕시코 식사를 하였다. 특히 고추반찬은 별미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고추의 종류가 300가지가 넘는단다. 고추는 원래 멕시코가 원산지로 우리나라 청량고추도 멕시코에서 종자를 수입해온 것이란다.
라푼파도라(바다분수)로 가는 도중 그곳으로 장사하러가는 상인 2명을 태웠다. 70세 가까운 가이드가 맥시코를 12년 동안 약 4.000번 다녀갔다니 이웃집 드나들 듯 다닌 셈이다.
바다 분수에 도착하니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며 분수를 이루는 것이 아주 장관이다. 불황 탓인지 시장이 너무나 한산하다. 우리가 지나가니 “싸요 싸” “싸게 팔아요. 한국말로 우리를 유혹한다.
차를 타고 가면서 마야문명을 DVD로 감상하고 정자나무 그늘에 도착하니 12시, 주위에 각종 어패류들로 조각을 멋지게 해 놓아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다. 식당도 하고 조각품도 판매하는 곳이다.
‘아름다운 정원’ 식당에서 조각을 감상하며 멋스런 정통 멕시코 음식을 먹는데 앞좌석에 미국인 노부부가 다정하게 식사하고 있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가며 봉고차안에 설치된 티비를 통해 영화를 감상하였다.
한국에 홍길동이 있는 것처럼 멕시코에도 홍길동 같은 ‘죠로’가 있단다. 죠로 영화를 보며 출발 장소에 도착하니 딸이 기다리고 있어 차를 타고 집에 도착 찍어온 사진을 TV에 연결 감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10월 29일 수요일
휴식을 취한 후 마을 주위를 산책하였다. 이 나라는 낮에는 사람을 거의 볼 수가 없다. 전부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가끔 할 일없는 노인들이 개를 몰고 산책하는 정도이다.
10월 30일 목요일
사위가 퇴근을 했다. 밤새껏 수술하느라고 피곤한 기색이 얼굴에 역력하다. 한 술 뜨더니 그대로 잠자리로 향한다. 사위가 잠을 푹 잘 수 있도록 산책을 하던 중 운동장에서 남녀 학생들이 어울려 축구하는 모습을 보다가 교정으로 들어가니 교사인 듯 한 흑인이 반가이 맞으며 우리를 안내한다.
영어로 ‘코리안 하이스쿨 랜구이지 티쳐’ 라고 했더니 악수를 청하며 교무실로 안내받아 커피를 대접받고 학교의 이곳저곳을 안내하면서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체했다.
집으로 오니 딸이 직장 회식이 있다기에 사위와 햄버거로 유명한 아일랜드 식당으로 가서 햄버거를 먹고 돌아오다 슈퍼에 들러 과일을 사는데 한국서 못 보던 과일이 많고 값도 무척 싸다.
10월 31일 금요일
사위와 헌팅턴 도서관을 향해 출발했다. 8년 전 제자와 함께 갔었던 곳인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다시 찾았다. 딸은 근무라 함께 가지 못해 마음에 걸렸다. 화원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고 뒤편으로 가니 일본식 집을 둘러싼 배경이 절경이다.
이어서 중국식 집을 돌아보고 온갖 선인장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돌다보니 폐장
시간이 되어 집에 오니 피곤하다. 딸애가 돼지찌게와 육개장을 사와 먹으니 한국 맛 그대로다.
이날이 홀리데이 날인데 집집마다 귀신형상의 모양을 꾸며 놓은 집이 많다.
동네 아이들이 귀신 형상의 옷을 입고 집을 방문하면 과자 등 먹을 것을 준다는데 이 동네는 아이들이 없어 홀리데이 행사를 하지 않는단다.
딸의 결혼식 비디오를 다시 보았다. 사위가 의학박사인데도 검소하고 정직하고 순수한 모습이 사랑스럽다. 딸을 자주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시집을 잘 보냈다는 마음이 든다. 사부인께서도 친딸처럼 대해 주신다니 고맙고 감사하다.
11월 1일 토요일
셋째 시누이 댁에서 저녁식사 초청을 받아 1시에 글로브(THE GLOVE) 시장에 가서 사진을 찍고 형형색색 모양의 분수가 멋스럽다. 새로 형성된 시장인데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하여 새로운 시장으로 성공을 거둔 곳이란다.
빵을 사먹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근처 가게 지붕 아래로 피했다.
소나기가 퍼붓는데 갑자기 어른과 학생들이 즐겁게 비를 맞는 모습이 이상하다. 이곳은 1년에 비가 5~6회 정도만 내려 비가 내리면 모든 시민들이 일부러 비를 맞는다고 한다.
예쁜 꽃을 사서 목적지인 ‘포턴 렌치’로 가는데 계속 비가 내린다. 우릴 반겨주는 환영의 비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다.
며칠 전까지 크게 산불이 나서 인근 친척 집으로 피신했다가 겨우 진화되어 귀가 했다는데 마을 주위의 산들이 모두 검게 그을려 있고 아직까지 그을음 냄새가 진동한다. 마을 입구에서 문에서 전화로 신분을 확인한 후에 문을 열어준다.
시누이 집 앞에 차를 세우니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고 우릴 맞이한다.
사부인과 반가이 상면하고 화분을 건넨 후 집 내부 구경을 하였다. 밖엔 수영장이 있고 한쪽엔 푸른 잔디가 곱게 깔려있다. 식탁으로 안내 받아 진수성찬의 환대를 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하였다. 우릴 위해 딸들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여 흥취를 돋워 주었다.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11월 2일 일요일
오늘부터 썸머타임이 실시된다. ‘나성 영락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을 찾아가 사위와 딸은 월남국수를 시키고 우리 내외는 다른 음식을 시켰다. 식사 후 게티센터(또는 폴 게티 박물관)를 찾았다. 주차료 10$만 내면 모든 관람이 무료이다. 안내 책자가 한국어로도 돼있어 관람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가지각색으로 꾸며놓은 멋진 정원과 미술 작품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이 게티센터는 1983년 J 폴게티트러스트가 산타모니카의 산기슭에 있는 750에이커 부지를 구입, 현대건축 설계의 세계 1인자인 리처드 마이어를 선정했고 마이어는 게티의 과거에 대한 뿌리와 미래에 대한 신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의 독보적인 스타일과 보다 고전적인 재료를 결합 1997년 12월에 개관하였다.
방문객을 위한 ‘트램(tram)은 3960ft 길이로 미국에서 가장 길고 세계에서 3번째로 긴 트램이다. 너무나 볼거리가 많아 욕심을 내어 돌아다니다보니 다리가 아프다.
11월 3일 월요일
동부 여행 계획을 세웠다. 마음이 무척 설렌다. 서부여행만 세 번 했지 동부 여행은 처음이다. 날씨가 1년 내내 건조하여 샤워를 자주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다.
11월 4일 화요일
동네 산책후 빈대떡을 부쳐 먹으며 딸에게 전화하니 조퇴를 하고 왔다. 빈대떡으로 점심겸 저녁을 먹은 셈이다. 오후엔 TV와 사진을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꿈에 그리던 미동부여행
4박5일의 일정으로 미동부 여행길에 나섰다. 사위와 딸이 공항까지 가서 체크인 해 주어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LA에서 뉴욕까지 5시간의 긴 여행 후 뉴욕공항에 도착 기창으로 보니 2시 반인데 어둠이 깔려 불빛이 비취고 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보니 LA와 뉴욕의 시차가 3시간 그러니까 뉴욕시간으론 5시 반이니 어두울 수밖에…….
시계를 5시 30분으로 돌려놓고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가이드가 반가이 맞는다. 해장국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직행했다.
오늘 부부 한 팀이 합류하였다. 한국인인데 브라질로 이민가서 살고 있고 맨해튼에서 사업을 하는 딸이 여행을 시켜주는 거란다.
트렌톤, 필라델피아, 월밍턴을 지나고 볼티모어를 경유하여 4시간 반에 걸쳐 워싱톤에 도착. 스미소니언박물관, 국회의사당, 제퍼슨 기념관, 링컨 기념관, 한국전 참전용사비. 자연사박물관, 식물원을 보고 백악관을 찾았을 때는 일몰이 되어 있어 백악관의 야경을 셔터에 담았다.
백악관 앞뜰에는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취임식장을 만들고 있었고 뒤편에선 퇴임하는 부시대통령 이삿짐 나를 박스를 만들고 있었다. 뜨는 해와 지는 해의 역사적 숙명을 보았다. 오늘 자매 2명이 합류하여 6명이다. 워싱톤에서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7시간 30분이 걸린다.
헤이거스타운, 브리즈우드, 그린스버그, 피츠버그, 버팔로 등을 달려가며 가로수와 단풍이 내장산의 단풍보다 더붉고 아름다웠다.
캐나다 국경을 통과, 염소섬, 월풀에서 나이아가라하류의 폭포수가 한 바퀴 돌아나가는 지점을 케이블카를 타고 본 다음 이어 테라핀 포인트,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를 보니 너무 적어 4명만 들어갈 수 있다.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한다음 방명록에 이름을 적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나이아가라폭포로 향했다. 스카이론 타워에 올라가 야경을 보고 나이아가라를 배경으로한 I-MAX 영화를 보았다. 조명시설을 해 놓아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나이아가라를 바라보니 보슬비가 내리는 듯이 피어오르는 폭포수의 하얀 물보라는 자연의 신비스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아침 일찍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했다. 아메리카폭포와 캐나다폭포로 나누어지는데. 아메리카폭포는 높이 56미터 폭 320미터로 직선적인 경관을 이루고 있었고. 캐나다폭포는 높이 54미터 폭 675미터로 중앙부가 많은 수량에 의해 말굽처럼 패어지고 침식당해 반달모양을 이루고 있다.
폭포의 낙수가 물안개와 어우러져 아름다움의 경이 자체다.
5대호의 하나인 이리호에서 흘러나와 온타리오 호로 들어가는 중간에 있는 나이아가라 강의 대폭포이다. 미국에서 보다 캐나다에서 보아야지만 폭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여름엔 유람선을 타는데 겨울이라 우의를 입고 씨닉터널에 가서 5미터 앞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웅장한 소리는 7만 6천개의 트럼펫을 동시에 불어대는 소리와 맞먹고 1시간 동안 쏟아내는 물의 양이 서울 시민이 하루 동안 사용하는 물의 양보다 더 많단다.
어마어마한 물보라 세례를 받으며 폭포 바로 앞까지 접근하여 ‘나이야~ 가라’ 하고 나이를 반 잘라 폭포에 던지고 왔다.
폭포의 우렁참을 생생히 간직하고 다시 캐나다 국경을 넘어 코닝유리박물관을 견학 유리조각 작품들을 보며 인간이 만든 예술 작품에 감탄하고 맨해튼의 야경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보았다.
뉴욕 시내 관광. 32가의 한인 타운, 그리니치빌리지, 소호, 차이나타운에 이어 유람선을 타고 뉴욕항 어퍼 만 리버티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공식 이름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을 보았다.
미국과 프랑스간 친목 기념으로 세워진 것으로 전체 높이가 92m 오른손에 횃불,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이라는 날짜가 새겨져 있는 자유의 선언을 상징하는 서판을 들고 있다.
이어 엠파이어 빌딩을 올라가는데 일요일이라 1시간 반을 줄서 기다리다가 정상까지 뛰다시피 올라가 시간에 쫓겨 10분만 보고 아쉬운 마음으로 내려왔다.
이어서 우리나라의 반기문 총장이 있는 유엔본부, 할렘, 세계에서 제일 큰 성요한성당, 5번가, 롤펠러센터 등을 보고나니 5시, 일요일이라 교통이 혼잡하여 서둘러 공항에 도착, 가이드와 작별하고 아메리카 비행기에 탑승 4박5일간 가슴 부푼 여행이었기에 행복한 마음 가득히 안고 딸과 사위가 기다리는 LA로 향했다.
11월 10일 월요일
여행의 피곤으로 늦게 일어나니 사위와 딸은 이미 출근했다. 아침겸 점심을 먹고 또 깊은 잠으로 빠져 들었다.
11월 11일 화요일
veterans Day. 전쟁 참전용사들을 위한 날이다.
Knott's Park. 전쟁참전용사와 그 가족 1명까진 무료입장이다.
딸은 출근 사위와 함께 바이킹, 기차횡단, 배횡단 등을 타며 하루해를 보내고 집에 오니 5시. 아일랜드 식당에 가서 햄버거로 저녁을 먹었다.
11월 12일 수요일
여행의 피로가 몰려온다. 동네를 산책하고 돌아와 계속 휴식이다.
11월 13일 목요일
TV를 보니 수능일이다. 수험생들이 시험을 잘 치르길 빈다. 둘째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둘째딸 예은이 돌잔치가 15일인데 참석치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잘 진행이 되는지 물어보니 아무 염려마시란다. 너무 더워 밤인데도 30도를 오르내린다. 한국은 지금 추위가 시작된다는데…….
11월 14일 금요일
사위와 딸이 휴가를 내어 할리우드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향했다. 8년 전 제자 내외와 같이 갔는데 오늘의 동행자는 또 다르니 새로운 여행의 맛이 난다.
평일이라 혼잡하지 않아 다행이다. 입장료는 1인당 55$ 프로그램 책자를 보며 귀신의 집, 터미네이터, 동물쇼, 심슨라이드, 스튜디오 투어, 워터월드,쥬라기공원, 미이라 등을 보았다. 점심은 간단히 통닭과 햄버거로 먹고 하나라도 더 보려고 동분서주 했다. 쥬라기공원을 마지막으로 보고 집으로 향했다.
11월 15일 토요일
오전 내내 쉬다가. 점심 후 딸과 함께 포스코 슈퍼에 들러 필요한 물품을 산 후 시가지를 구경하다 며칠 전에 약속이 된 아내 고등학교 동창생이자 내 초등학교 동창의 동생네 집으로 향했다
아내 친구는 미국에 온지가 30년이 된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상봉을 하고 준비해간 선물을 주고 대화를 하면서 TV를 보니 온톤 화재이야기다.
LA근교에서 산불이 발생하여 13일부터 계속 화재가 번져 수십 채의 집들이 탔다. 미국은 높은 곳에 위치한 집일수록 비싸다. 화마가 계속 번져 재난지역으로 선포하였다.
밤인데도 그을음이 날아온다. 아방궁 같은 집들이 한줌의 재로 날리는 것을 보면서 부귀영화도 일장춘몽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곳은 화재 보험에 100% 가입을 하고 있어 화재가 발생하여도 그리 겁을 내지 않는단다.
식당에 도착 갈비로 식사를 하며 정담을 나누다 딸이 차를 몰고 와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오는데 산불로 인해 재가 비 오듯 쏟아져 내린다. 속히 산불이 진화되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했다.
11월 16일 일요일
나성영락교회로 향했다, 사위와 딸은 영어예배를 하는 교회로 우리는 한국어로 예배하는 교회로 나뉘어 갔다.
설교 내용이 테니스의 꽃이라 불리는 애거시가 왜 진작 봉사단체를 일찍 만들지 못했나? 후회했다는 이야기와 미국 아이들에게 가치관 설문조사를 했는데 1위는 부모가 돈을 많이 벌어오는 것(23%) 2위는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11%)으로 통계가 나왔단다.
사위가 솜씨를 발휘 LA갈비, 고구마, 빵으로 푸짐한 점심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1시간을 달려 팥빙수로 유명한 상점에 가서 맛있게 먹고 왔다.
11월 17일 월요일
제자인 명희를 만났다. 현재 애리조나 주에 살고 있는데 우리를 만날 겸 일도 볼겸 친구와 함께 14시간차를 몰고 왔단다.
명희와 같이 온 친구 우리 내외와 딸 다섯이 점심을 먹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고려홍삼정을 선물로 주었더니 무척 고마워한다.
샌디에고에 어머님이 혼자 살고 계시는데 이틀 후 같이 방문하기로 하고 헤어져 슈퍼에서 김밥자료를 사와 넷이 합작으로 김밥을 말면서 먹었다. 사위가 김밥을 무척 좋아하여 밥통을 통째로 비웠다.
11월 18일 화요일
오늘은 딸과 함께 ‘아울렛’을 갔다. 약 2시간을 달려 도착하니 100여개가 넘는 상점들이 있는데 이런 매장이 다른 곳에 2-3개가 더 있단다.
사위 운동화 내 운동화와 셔츠, 청바지, 손녀옷, 가방 등을 샀는데 상당히 가격이 싸다. 몇 가지만 사러 왔다가 가격이 싸니 더 많은 물건을 살 수밖에……. 많이 피곤하다.
11월19일 수요일
반가운 고등학교 때 가르친 제자 명희를 만나 점심을 함께 먹고 제자 차를 타고 샌디에고를 향해 가던 중 제자를 어려서부터 돌봐준 분을 만났다.
귀하신 선생님이 오셨는데 대접을 해 드려야 한다며 중국식당으로 안내 비싼 음식을 시켰으나 배가 부른 탓이라 반을 남겼다. 작별 인사를 하고 3시간 정도를 달려 어둠이 짙어갈 무렵 (이곳은 4시 40분이면 해가 짐) 제자 어머님 댁에 도착하니 무척 반기신다. 홍삼을 드리니 무척이나 좋아하신다. 밤늦도록 이야기 하다가 하룻밤을 보냈다. 2층에 방만 6개다. 이 큰 저택에 혼자 살고 계시니 얼마나 외롭고 적적하실까?
11월 20일 목요일
아침에 동네 주위를 산책하고 주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어머님을 제자 집으로 모신다기에 함께 LA로 향했다. 제자와 함께 의류가게로 가서 우리 세 손녀들 옷을 한보따리 사준다. 다시 Cospos(코스포스) 슈퍼에 들러 필요한 각종 의약품들을 사준다. 너무 고마운 제자다.
기약 없는 작별을 하고 집에 오니 감기 기운이 있어 감기약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11월 21일 금요일
미국에서 마지막 날이다. 벌서 한 달, 세월의 빠름을 실감한다. 아침부터 차곡차곡 짐을 쌌다. 자꾸만 열이 오르고 기침이 나고 두통이 온다. 한 달 동안 무리한 여행을 한 듯싶다. 사부인을 초대해서 일식집에서 이별 만찬.
11월 22일 토요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출발했다. 12시 30분 발 아메리칸 비행기다. 한 달간의 세월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든다. 사위와 딸의 전송을 받으며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 그리운 내나라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딸과의 만남은 또 언젠가 될 지 미지수를 남겨 놓은 채, 무심한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을 날고 있다.
첫댓글 미국 여행의 여정에 따른 관광의 모습이 눈에 보이듯 합니다. 제가 같은 곳을 여행하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미동부 한번 다녀오세요. 물론 서부도 좋지만요. 건강할때 다녀야 할 듯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