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너 스스로 너 자신을 알라”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하였다. 이는 단지 당신한테서 당신을 개별화하는 특성들을 식별하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있는 인간성의 이 모델을 알라는 것이며, 이는 주어져 있는 것보다는 하나의 요청 혹은 하나의 부름(un appel)으로서의 인간성을 말하는 것이다. 당신이 경청해야 할 것은 당신의 고유한 목소리가 아니라, 당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에서 들려오는 아폴론(Apollon)의 목소리인 것이다.」 - 루이 라벨의 『가치론』 중에서-
소크라테스가 말한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은 사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은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신탁을 받았다고 하는 신전의 정문에 쓰여 있는 문구인데, 후대 사람들에게 소크라테스의 명언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삶과 사상에 비추어보면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고 해도 사실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가 당시 아테네 사람들에게 요청한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에 따르자면 소크라테스가 획득하고자 노력했던 것은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critère)였던 것이다. 다만 플라톤은 이 척도를 이데아(Idéa)라고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덕(Vertu)이라고 보았다. 사람들이 서로 담론을 하면서 모두가 동일하게 일치하는 어떤 척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척도가 없다면 사람들은 좀처럼 어떤 일치나 합의를 보지 못하고 계속하여 논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어떤 척도를 가지고 모든 이가 동의를 하게 되는 지점에서 사람들은 견해(l'opinion)를 넘어 학문(la science)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에 따르면 학문은 보편적으로(일반적으로) 일치하는 이성적인 사유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는 학문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이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가끔 사람들은 이성이 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성이 명령하는 것을 실행할 수도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윤리 도덕적인 범주에서 우리는 이를 분명히 체험할 수가 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덕(areté)’이라는 개념을 추가 시킨다. 이 덕은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것을 의미하는데, 특히 윤리적 삶에 있어서 요청되는 다양한 기질상의 탁월성을 말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습관은 제2의 천성”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아무리 우리의 이성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을 명한다 해도, 또 경우에 따라서는 자비와 희생을 명한다고 해도 ― 이는 실천이성을 말하는 양심의 명령이다―, 인간은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어떤 한계를 느끼면서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다른 무엇인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바로 이 무엇이 매일 매일 되풀이 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형성하게 되는 ‘덕’이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에 ‘덕’을 제2의 천성처럼 지니고 있는 사람은 이성의 명령에 매우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그 명령이 부담스럽지가 않는 것이다. 즉 인간의 실천이성(양심)은 자주 사람들에게 그의 경험적인 존재(être empirique)를 넘어서 하나의 이상적인 존재(être idéal)를 향해 나아가라고 명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내면의 덕을 전제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도덕적 삶’이란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것은 오직 경험적 존재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본성상 이상적인 존재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며, 또 남들이 그렇게 살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답지 않은 자”를 비판하는 모든 경우에 우리는 그가 ‘이상적인 존재’로 살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우선적으로 이성적인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공통되는 ‘인간성’의 차원에서의 어떤 소명,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양심의 명령’을 따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곧 인간성의 차원에서 '그렇게 되어져야 할 인간' 혹은 ‘이상적인 인간’이 되도록 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현실에 이상적인 인간이 존재할리 없겠지만, 매일 그곳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데서 인간적 삶의 숭고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상적인 인간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이 소명과 명령을 깊이 경청하고 자신의 그릇에 맞게 무엇인가를 행하고자 한다. 반면 다른 어떤 사람들은 이 같은 명령을 매우 불편한 것으로 여기고 외면하고 마침내 이런 명령은 잘못된 명령 혹은 허상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루이 라벨은 이 같은 내면의 명령을 곧 ‘아폴론의 명령’ 즉 ‘신의 명령’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파스칼도 “신 없는 인간의 비참과 신이 있는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로뎅 : 생각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