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매계약 부제소 특약 매매대금청구
어떠한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당사자 간 타협을 하며, ‘향후 민·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부제소특약’ 혹은 ‘부제소합의’ 라고 합니다.
만약 당사자 중 1인이 부제소특약에 위반하여 소를 제기한 경우, 상대방이 부제소특약의 존재를 주장하면, 법원은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소 각하하게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특정한 권리나 법률관계에 관하여 분쟁이 있어도 제소하지 아니하기로 합의(이하 ‘부제소 합의’라고 한다)한 경우 이에 위배되어 제기된 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고, 또한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신의성실의 원칙(민사소송법 제1조 제2항)에도 어긋나는 것이므로, 소가 부제소 합의에 위배되어 제기된 경우 법원은 직권으로 소의 적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80449 판결 참조).
민사소송행위는 ‘민사소송법’이라는 법률에 의하여 그 요건과 효과가 규율되므로, 당사자가 소송법 상 효과를 임의로 약정하였다고 하여 합의한 그대로 소송법 상 법률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재소특약이 있는 경우, 당사자 간 합리적 의사결정에 의한 합의가 이루어진 이상 동일한 분쟁을 법원에 소로써 청구하는 것은 소의 이익이 없으므로 법원은 소각하판결을 하게된다는 것이 위 대법원 판례의 취지입니다. 한편, 부제소특약이 유효하려면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로, 특약 자체가 불공정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서는 아니 되며, 합의 시에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예컨대 매매계약 자체가 현저하게 불공정한 법률행위로 무효인 경우, 그 계약서에 기재된 부제소특약 역시 무효로 본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대법원 2010. 7. 15. 선고 2009다50308 판결)
둘째로, 당사자가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권리관계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고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합의’의 경우, 피해자의 ‘고소권’은 형사소송법 상 부여된 권리로,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므로, 위 합의는 무효입니다.
셋째로, 특정 권리관계에 관한 것이어야 하므로, 포괄적인 부제소특약 조항은 무효가 됩니다.
부제소 합의는 소송당사자에게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의 포기와 같은 중대한 소송법상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으로서 그합의 시에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이어야 유효하고, 그 효력의 유무나 범위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을 수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해석한 후 이를 판단하여야 한다. 법원이 직권으로 부제소 합의에 위배되었다는 이유로 소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법률적 관점에 대하여 당사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하고, 부제소 합의를 하게 된 동기 및 경위, 그 합의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에 관하여도 충분히 심리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80449 판결 참조).
부동산 매매대금과 관련한 ‘부제소특약’의 효력이 소송 상 문제된 사례가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A는 2018. 4. B에게 청주시 흥덕구 소재 토지 및 신축중인 지상 건물을 매도하는 부동산매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다음의 내용을 담은 두 차례의 ‘확인서’(이행각서)를 작성합니다.
2019. 1. 1. 확인서 (이행각서)의 내용 중 발췌
“...(중략)... 부동산 매매금액에 대하여 피고에게 향후 어떠한 이의제기나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을 것으로 확인하고 각서한다.”
2019. 6. 29. 확인서 (이행각서)의 내용 중 발췌
“...(중략)...매매계약에 기한 일체의 채권채무관계는 정산되었음을 확인하고 각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B 간 실제 매매대금 액수에 대한 다툼이 발생하였고, A는 B를 상대로 매매계약의 잔여 매매대금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B는 본안전항변으로 특정한 권리나 법률관계에 관하여 분쟁이 있어도 제소하지 아니하기로 합의한 경우에 이를 위반하여 제기한 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으므로, A의 소는 부적법함을 주장하였습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이 사건 ‘확인서’ 작성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는 “A와 B 사이에 매매계약과 관련한 분쟁이 있어도 제소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합의” 라고 판단하며, “A가 매매대금의 지급을 소로써 청구하는 것은 위 부제소합의에 반하여 부적법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A는 ‘부제소합의는 합의 시에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이어야 유효하다’ 면서, 위 확인서를 작성할 당시 A는 현재 상황에 관하여 예상할 수 없었으므로 무효임을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여러 가지 증거를 종합한 결과 A의 주장을 배척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특정한 권리나 법률관계에 관하여 분쟁이 있어도 제소하지 아니하기로 합의한 경우 이에 위반하여 제기한 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여 A가 제기한 소를 각하하였습니다.
계약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합치가 존재하느냐 여부가 매매계약의 효력을 결정짓는 관건입니다. 부동산 매매계약 상 매매대금과 관련된 분쟁상황에서, 한 대법원 판례는 ‘부제소합의’가 무효라고 보았고 (대법원 2010. 7. 15. 선고 2009다50308 판결), 이번 사안에서는 ‘부제소합의’가 유효하므로 원고 청구는 소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위 두 판결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매매계약이 체결된 경위, 계약 내용 및 당사자 관계 등을 고려할 때 구체적 사안에서 ‘부제소합의’의 효력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 것입니다. 따라서 매매계약 체결 시 부제소합의 조항이 포함된다면, 향후 당사자 간 매매대금 및 매매계약과 관련된 분쟁을 소송으로 청구할 경우 소 각하 판결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