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장난이 아니다-63 (후방지구 상황들)
“각하, 2군 사령부 이 주일 장군으로부터 전홥니다.”
부관이 전하는 말에 박 정희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오, 그러지 않아도 궁금했던 참인데…”
이러면서 박 정희는 수화기를 들었다.
“이 장군이오? 나요!”
“아, 각하십니까? 방송 잘 들었습니다.”
“들었소? 그 곳은 어떻게 됐소?”
“네, 대구를 비롯해서 부산, 광주, 논산, 청주 각 후방지구는 예정대로 예정시간에 출동해서 목표지점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요? 아무튼 수고가 많소!”
“아닙니다. 서울은 현재 어떻습니까?”
“대체적으로 혁명과업은 착착 잘 진행 중이나, 사태는 아직 유동적이오.”
“그렇습니까?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조금 전에 각하께서 자리에 안 계시다고 해서 K중령에게 후방지구의 상세한 상황을 알려 주었습니다. K중령을 통해서 알아보시면 되겠습니다.”
“알겠소. 수시로 연락해 주시오.”
“수시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다음, 박 정희는 K중령을 찾았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각 후방방지구의 혁명 상황을 확인했다.
“먼저 대구지굽니다. 대구지구의 혁명지휘자 박 기석 대령의 지휘 아래 출동된 공병 대대는 16일 새벽 3시부터 4시 사이에 대구 시내 주요목표물을 전부 점령했다고 합니다.”
“새벽 3시에? 방송도 나가기 전에?”
“그렇습니다. 이 주일 장군 말씀은 새벽 5시 방송 때까지도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 미리 거사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 좀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알았으면 하는데…”
“네, 우선 A대대는 김 진국 중령의 지휘로 새벽 3시 15분에 행동을 개시해서 3시 40분에는 목표지점인 경북경찰국과 경북도청, 대구경찰서, 대구소방서, 대구우체국, 전신전화국을 차례로 장악했답니다.”
“대구방송국은 어떻게 했지?”
“네, 공병대가 출동했습니다. 새벽 3시 35분에 장 동운 중령의 지휘로 대구방송국을 장악했고, 또 8명으로 된 장교분대를 박 기석 대령에게 인계해서 군 사령관 관사를 포위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구지구 통신대 역시 맡은 바 과업을 제대로 수행했겠지?”
“그렇습니다. 통신참모 박 승규 대령 휘하 새벽 3시 정각, 각각 임무를 수행했으며, 하나도 차질 없이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보곱니다.”
“2군 사령관 최 중장은 관사에 있소?”
“그렇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새벽 4시 40분, 공병참모 박 기식 대령과 작전차장 이 진 득 대령이 사령관 관사를 방문하고 사령관에게 ‘군사혁명을 일으키다’는 사실을 통고하고 또한 설명하였던 바 2군 사령관께서는 ‘혁명은 올 것이 온 것’이라고 혁명에 동조했다고 합니다.
“흠, 잘됐구먼, 그러니까 대구지구는 약속된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앞당겨서 행동을 취했구먼. 부산지구 상황은?”
“네, 이 주일 장군으로부터 D데 이 H 아 워가 16일 오전 3시라는 사전 연락을 받은 군수기지사령부 참모장 김 용순 준장께서는, 관사에서 새벽 5시의 첫 방송을 듣고 곧 본부중대 병력으로 경비를 강화하고 예하 경비중대장에게 ‘전투준비를 갖추고 대기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네, 김 준장은 곧 OO사령관 김 현옥 대령과 OO학교장 이 기동 대령에게 전화로 연락해서 부산방송국과 전신전화국, 유류저장소 등에 병력출동을 지시했고, 통신참모 박 용 규 대령에게는 일체의 통신망을 참모장실로 직결토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군수기지사령관 박 헌수 소장에게 대한보고는 없었소?”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침 7시에 기지사령부 기밀실에서 각급 지휘관들이 모여서 회의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박 소장은 ‘서울에서 군이 쿠데타를 일으킨 모양인데, 아직 상세한 상황을 모르는 상태이니, 첫째, 각 부대는 부대를 정비하고 둘째,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병력과 장비를 갖추도록 하고 셋째, 각 부대는 본관의 지시에 의해서만 행동하고 일체의 단독행동은 금 한다’고 훈시를 했다고 합니다.”
“07시 이후의 상황은 보고가 안 돼 있 구 먼…”
“아닙니다. 7시 30분 현재까지의 상황이 보고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그게 뭐요?”
“네, 작전참모 이 우신 대령, 김 형옥 대령, 이기동 대령, 진 종 채 중령, 그리고 경비중대장 손 영길 대위, 본부사령 신 정수 중령, 작전차장 신 용관 중령, 이상 장교들이 중심이 되어 사태를 방관하고 있는 다른 참모들과 대립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흠, 박 소장은 사령부에 있다고 하던가?”
박 정희의 표정은 매우 굳어져 있었다. 부산지구의 상황이 염려스러운 것 같았다.
“지휘관회의가 끝나자 김 현옥 대령과 이기동 대령이 박 사령관에게 혁명에 협조 해 줄 것을 호소하고 설득했으나, 그대로 미 고문단을 찾았다 고 합니다. 7시 30분 현재 부산지구는, 사령관이 없는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장교들이 중앙의 사태를 관망만 하고 있는 실정이란 것입니다.
“흠, 이 장군(이 주일)한테 다시 연락이 오면, 특히 부산지구의 관한 그 후의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라고 이르시오. 그리고 9시를 기해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사실도 아울러 부산지구에 알리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다음은 대전과 논산지구에 관한 보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거긴 어떻게 됐소?”
“네, 논산의 제2훈련소 한 대령은, 새벽 5시 첫 방송을 듣고, 훈련소장 최 소장에게 보고한 다음, 비상소집을 하달했습니다.”
“병력은 얼마를 동원했다는 보고는 없었소?”
“네, 630명의 병력을 완전무장 시킨 다음, 최 소장이 휘하 장병들에게 혁명의 목적과 의의를 설명한 후에 16대의 차량을 동원하여 대전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의 상항은?”
“네, 제2훈련소 병력이 대전 시내로 진입하기 전에 대구의 이 주일 장군께서 훈련소장 최 소장에게 ‘대전은 김 계원 소장에게 맡기고 제2훈련소 출동병력은 즉시 논산으로 돌아가라고 한 모양입니다.”
“그래? 제3군 관구사령관이 그걸 이 주일 장군에게 요청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대전의 관구사령관 김 계원 소장이 후방 지휘부의 이 주일 장군에게 ‘일부러 논산에서 군대를 대전으로 투입할 필요가 없으며 대전은 나에게 맡겨 주시오’하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흠, 그럼 대전시는 김 계원 장군에 의해서 혁명과업이 수행되고 있게 구 먼?”
“그렇게 보고가 돼 있습니다.”
“좋소, 다음은 어디요?”
“광주, 전주지굽니다.”
“최 주종 장군이 잘해 주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새벽 5시에 첫 방송과 함께 이 주일 장군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사단장 최 준장께서는 즉시 사단에 비상을 걸고 전 부대에 무장을 갖춘 다음, 집합시켰다고 합니다. 또 전 장병에게 혁명 사실을 설명하고 사전계획에 따라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것을 예하부대에 시달했다고 합니다.”
“전남도청, 도 경찰국, 광주방송국, 경찰서, 체신청, 이런 기관들은 순조롭게 장악되었소?”
“네, 아침 6시 30분, 명령에 따라 장교 16명, 사병 70명의 병력이 각각 목표물을 완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는 보곱니다.”
“그리고 전주에서는?”
“새벽 5시의 첫 방송이 있는 후, X관구사령관 김 익 렬 소장께서 ‘전주 시내 주요 시설에 병력을 배치하고 경비에 임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명령에 따라 T사장단 이 존 일 장군께서 병력을 집합시켜 즉각 목표물을 장악하기 위한 제반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보곱니다.”
“물론 이 존 일 준장이 책임지고 해 내겠지!”
“다음은 청주 지굽니다.”
“오, 청주지구도 보고가 돼 있소?”
“그렇습니다. 청주지구 F사단장 김 휘 준장께서 징병검사 진행상황을 순시하느라 출타하셨다가 오늘 새벽 5시 30분에 사단으로 돌아와서 즉시 이 주일 장군과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김 장군이 그 동안 F사단 참모들을 혁명동지로 포섭해 놨을 테데?”
“그렇습니다. 작전참모 김 성배 중령, 인사참모 김 승우 중령, 군수참모 이 창용 소령, 그리고 충북 X사령관 김 영진 중령이 각각 김 장군의 의해서 혁명동지로 포섭되었기 때문에 병력출동과 목표물 장악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고 합니다.”
“알았소. 아무튼 수고했소. 나머지 후방지구의 소식이나 상황은 그때그때 지체 없이 보고 하시오!”
“알겠습니다.”
출처 : 도 큐 멘 타 리 제3공화국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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