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실 성당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 된 성당이자 선교의 요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614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성당과 구 사제관)
가실(佳室) 본당은 경북 지역 초기 본당 중의 하나로 대구대교구 소속이며 설립일은 1895년이다. 초창기의 이름은 가실 본당으로 후에 행정구역명을 따라 낙산(洛山) 본당으로 개명되었다가 다시 가실 본당으로 변경되었다. 주보는 성녀 안나이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끝난 1894년 신나무골에서 경상도 북부 지방 선교를 담당하던 파이야스 신부는 가실(佳室)로 이주하여 성순교가 살던 기와집을 매입하여 가실 성당을 설립했습니다. 당시 파이야스 신부가 담당한 전교 지역은 칠곡을 비롯하여 성주, 선산, 문경, 상주, 함창, 군위, 안동, 예천, 의성, 김천, 거창, 안의 등 경상도 북서부 일대와 충청도 황간, 전라도 무주 등지였으며, 공소는 17개소. 신자수는 777명이었다. 1912년 부임한 투르뇌 신부는 1944년 지병으로 사망하기까지 가실 본당 신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일제 치하의 어려움 속에서도 전교 활동에 노력하여 교세를 크게 확장시켰습니다. 또한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여 1925년 9월 드망즈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교황 사절 지아르디니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했습니다. 투르뇌 신부는 1922-1924년 사이에 현재의 신 로마네스크식 벽돌조 성당을 건립했는데, 설계는 명동 성당과 대구 계산 성당을 지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프와넬 신부가 담당했습니다. 프와넬 신부는 중국 기술자들에게 벽돌을 한 장씩 굽도록 하여 잘 구워진 것은 성당을 짓는데, 중간치는 사제관을 짓는데, 품질이 나쁜 것은 버렸다고 합니다. 당시의 유물과 유산은 현재 유물관(구 사제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도시화와 탈농촌 현상으로 신자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1990년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관을 건립하였고, 성모동굴과 교육관을 마련하여 1995년 100주년을 맞아 봉헌했습니다. 2000년 대희년을 맞아 동양화가 손석희가 그린 십자가의 길 14처와 독일의 유명한 색유리 작가 에기노 바이너트가 제작한 유리화를 2002년에 설치했습니다. 10개의 창문에 설치된 유리화의 주제는 ‘예수님의 삶’입니다.100주년을 맞아 봉헌한 ‘순교자 성순교가문의 신앙유적비’(成舜敎家門 信仰遺蹟碑)가 세워져 있었다. 이는 가실 성당 자리가 본래 경신박해 때 가실을 떠나 상주로 피난 갔다가 체포되어 1861년 상주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던 성순교의 기와집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성순교는 창녕 성씨 집안의 실학자 성성섭의 증손자로 추사 김정희와는 막역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유물관에는 공의회 이전까지 성당 제대 위에서 사용하던 십자가와 감실, 중앙 제대 왼쪽과 오른쪽에 설치돼 있던 성모성심 제대와 예수성심 제대의 감실, 촛대 등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또 본당 설립 초창기 신자들의 교적은 물론 대구교구 초대교구장 드망즈 주교의 친필 공문 제1호 등 교회사의 중요한 사료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본당이 한창 번성하던 1960년대 신자들 교육용으로 사용하던 환등기(전기가 없던 시절 등불을 이용해 그림을 볼 수 있는 독일식 환등기), 밍크본이란 화가가 1930년대에 그린 43장의 성서 그림, 미사주를 채즙하던 포도 착즙기, 성체를 만들던 숯 제빵기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실 성당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략을 받는 아픔을 겪었지만 다행히 병원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훼손되지 않아 옛 유물과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성당 제대 한쪽에 위치한 ‘성녀 안나상’은 본당의 주보성인이기도 하지만 1924년 이전에 프랑스에서 제작되어 수입된 것으로 한국에서는 유일하다. 대구대교구에서 현 계산 주교좌성당에 이은 두 번째이자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건물인 가실 성당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근대 건축사와 교회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옛 사제관과 함께 2003년 4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가실 본당은 설립 당시 ‘아름다운 집’(佳室)이라는 마을 이름을 따 ‘가실 본당’으로 정했지만 대구대교구는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낙산 본당으로 변경된 본당명을 2005년 2월 본래의 가실 본당으로 다시 변경했습니다. 2011년 7월에는 16년이나 늦었지만 충분한 자료를 토대로 “가실(낙산) 성당 100년사”를 출판했습니다.
[출처 : 차기진, 한국가톨릭대사전 제2권 &관련 신문 기사를 중심으로 편집(최종수정 2017년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