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鳥歌【황조가】-꾀꼬리의 노래-琉璃王【유리왕】
翩翩黃鳥【편편황조】펄펄 나니는 저 꾀꼬리
雌雄相依【자웅상의】암수 서로 정답구나.
念我之獨【염아지독】나의 외로움을 생각하니
誰其與歸【수기여귀】그 누구와 함께 돌아가리.
이 시는 흔히 문헌에 나타난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서정시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시는 고려 유리왕 3년【기원전 17년】에 노래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아울러 아래와 같은 유래가 전한다.
유리왕은 왕비 송씨【松氏】가 죽자 고구려 여자 <화희【禾姬】>와 중국 여자 <치희【雉姬】>라는 두 여인을 맞았는데, 이들은 늘 서로 다투었다. 어느 날 왕이 기산으로 사냥을 나가 궁궐을 비운 틈에, 화희가 치희를 모욕하여 치희가 한나라로 달아나버렸다.
왕이 사냥에서 돌아와 이 말을 듣고 곧 말을 달려 쫓아갔으나 벌써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왕이 탄식하며 나무 밑에서 쉬는데, 짝을 지어 날아다니는 꾀꼬리를 보고 이 노래를 지었다
1구를 보자
翩翩黃鳥【편편황조】펄펄 나니는 저 꾀꼬리
여기서는 봄이라는 화려한 계절과 숲 속이라는 공간이 설정된다. 이는 <黃鳥【꾀꼬리】>라는 단어 하나에 의하여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꾀꼬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활발하게【翩翩】 날고 있는 광경을 묘사함으로써 평화롭고 정감 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봄의 날씨란 덥지도 춥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 밝은 햇빛과 삽상한 바람과 신록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들이 활력을 느끼는 계절이다, 이러한 계절에 숲은 모든 생명들이 숨 쉬는 생명의 심포니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여러 가지 생명이 있었겠지만 시적 자아의 눈에는 꾀꼬리가 눈에 들어온 것이
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아마도 꾀꼬리의 그 화려한 날개 빛과 그 낭랑한 소리 그리고 둥지 주변을 오가며 암수가 어울려 날고 있는 모습은 아마도 열애 중인 남녀의 남을 의식하지 않는 과감한 애정 표시 행위를 연상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 몸집, 날렵한 모양새는 그러한 생각을 하기에 충분할는지도 모른다.
2구를 보자
雌雄相依【자웅상의】암수 서로 정답구나.
여기서 시적 자아는 더 자세한 감정을 느낀다. 어울려 노는 꾀꼬리는 <암수【雌雄】가 서로【相】 어울려【依】 사이좋게 놀고 있다>고 느낀다.
새들이 실제로 그러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똑 같이 새를 보지만 그냥 무심히 <새가 소리 낸다, 새가 운다, 새가 노래한다.>고 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적 자아는 암수가 서로 의지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현재의 감정 상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떠한 감정일까. 작가는 암수가 서로 의지하며 정답게 노는 것이 부러운 상태인 것이다. 즉 <그는 현재 자신이 여자와 이별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죽기보다 싫은 것이다.
3구를 보자
念我之獨【염아지독】나의 외로움을 생각하니
이제 시적 자아는 자신의 균형이 깨어진 감정의 상태를 고백하는 것이다. 아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누구에게 고백하는 것일까. 물론 자신에게 말이다. 그러나 남이 들어도 좋은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我】의【之】 외로움【獨】을 생각한다【念】>고 표현하고 있다. 저 꾀꼬리들이 나의 외로움을 자극한다고 스스럼없이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외롭고 괴로운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4구를 보자
誰其與歸【수기여귀】그 누구와 함께 돌아가리.
이제 그는 여기서 절망적이지만 자신의 속내를 솔직히 하고 있다. 그는 <나는 도대체【其】 누구【誰】와 함께【與】 돌아가야【歸】 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부끄러움도 전혀 없이 말이다. 더구나 그가 한 나라의 근엄한 왕인데도 말이다.
그는 자신을 떠나버린 여인인 치희【雉姬】가 지금 현재로서는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상대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세상에서 치희 말고 어느 누가【誰】 나의 마음을 채울 수 있겠느냐고 말함으로써 그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 시적 자아의 속내가 드러나고 만 것이다. 그가 비록 왕이지만 한 여인의 마음을 자신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혹자는 왕의 절대적 권위에서 생기는< 신화적 숭고미>가 무너졌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이는 또 당시 사회가 임금의 절재적인 신화적 권위가 무너진 사회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물론 이 말도 맞는 말이다.
이 말은 결국 왕도 하나의 인간이며, 인간적 감정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한다. 따라서 이 시는 왕의 자리에 앉은 절대권위자로서의 왕이 아니라, 한 여자 앞에 약할 수 있는 한 평범한 남자로서의 유리왕의 내면을 드러낸 순수한 서정시로 생각된다.
이 시는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진 한 남자가 사랑을 다시 찾고 싶어하는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우리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한문 서정시【詩】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