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
(60) 고독사와 꽃상여의 기억
박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호흡곤란과 폐렴 증세로 고생하다 금요일 밤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이분은 독거노인으로 연고자가 없어 구청에서 사회복지사가 모시고 온 분이셨다. 독거노인은 사망하면 조금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구청에서 장례까지 치러주는 것을 보았다.
밤 10시경 구청 당직실에 연락하니 근무자가 자기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내일 아침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토, 일요일은 공휴일인데 연락이 잘 되었던지 토요일 아침 8시에 구청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와서 망자가 편안히 장례식장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가 참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분은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병원에도 한번 오지 못하고 홀로 죽는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농경사회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고독사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의 일본 사회였다. 악취가 나서 이웃집에서 신고하여 확인해 보니 노인이 죽은 후 수개월이나 방치되어 있었다. 사상 초유의 초고령화 사회를 경험하는 일본의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 병원에는 연고가 없는 노령자들이 몇 분 계신다.
김 할아버지는 85세로 작년 7월에 입원하셨다. 연고가 없어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에게 의뢰되었는데 복지사가 컴퓨터를 두들겨보더니 우리 병원에 자리가 있어 온 것이다. 폐암과 전립선암이 있었지만 고령으로 아무런 치료로 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해보니 오래전에 이혼한 이후 가족과는 아예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부두 노동자로 일했고 고철수집, 재활용품 수거 등을 하며 여태까지 지냈다. 아들이 두 명 있었는데 50년 전 아내가 떠난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홀로 돌아가시는 노령자를 보니 어릴 때 농촌마을에서 꽃상여를 앞세운 장례식을 본 적이 기억난다. 노인이 돌아가시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모여 장례를 치렀다.
농경사회에서는 비바람, 서리 같은 날씨나 계절, 파종시기 등 축적된 경험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노인들은 지혜로웠고 존중의 대상이었다. 노인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 같은 큰 상실이었다. 마을의 장례식은 최고의 잔치였다고 기억된다. 며칠간 술과 음식을 동네 사람들에게 베풀었는데 인근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까지 와서 배불리 먹기도 했다.
출상하는 날 마을 청년들이 화려하게 장식한 꽃상여를 메고 집을 나서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뒤를 따랐다. 목청 좋은 선소리꾼이 종을 울리며 외치면 청년들은 꽃상여를 앞뒤로 밀고 당기며 노래를 불렀다. 선소리꾼이 ‘어허넘차~’하고 외치면 상여를 멘 청년들도 따라 ‘어허넘차~’하고 외쳤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하고 외치던 소리가 아직도 기억이 나고, 슬프다는 감정보다 나도 상여 뒤에서 같이 노래하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고 기억된다.
망자가 태어나고 뛰어다니며 자라고 고통과 기쁨 속에서 살았던 장소를 다니며 노제를 지냈다. 국민학교 앞에서도 노제를 지냈는데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시골에서 노제는 아주 훌륭한 볼거리였다. 망자의 손자와 손녀 같은 어린이를 상여의 앞에 태워 또한 애절한 노래를 불렀다. 가족과 친척들이 상여 뒤에 끝없이 이어져 마치 축제 때 가장행렬을 보는 것 같았다. 온갖 화려한 색종이로 치장한 꽃상여를 보면 저 속에 누워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고 평안할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죽음은 무서움이 아니었고 장례는 온 마을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였다.
단군 이래 최근 50년만큼 발전하고 잘 사는 시기는 없었다.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또한 정보화사회로 너무 급속하게 변하는 바람에 잃는 것도 많이 있다. 아파트를 얻었지만 어린이들로 가득한 학교를 잃어버렸고, 자동차를 얻었지만 청년들이 가득한 공장을 잃어버렸다. 휴대폰을 얻었지만 가족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홀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편리한 장례식장을 얻었지만 상여꾼과 꽃상여를 잃어버렸고, 무엇보다 마을공동체를 잃어버린 것이 너무 안타깝다.
낙엽이 떨어지는 이 계절에 이웃집 사람을 보면 미소 지으며 인사를 나누어보자. 힘들 때 서로 위로하고 아프면 서로 도와주며 주민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되길 갈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