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쑥
중부지역 사람들에게는 낯선 잡초다. 쑥이라는 말 때문에 쑥이거니 하겠지만 막상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쑥과는 영 딴판이다. 그렇지만 녀석은 분명히 쑥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나도 이 녀석을 알게 된 것은 어느 집사님 덕이다. 그 집사님 고향에 흔하던 식물이었고,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몇 년 전 서리쑥으로 만든 떡을 처음으로 맛볼 수 있었다. 식감이 좋고 섬유질이 많은 것이 특별했다.
그 후 집사님께 고향에 가는 길에 서리쑥 한 포기만 캐가지고 오기를 부탁했다. 그 후 언젠가 두 포기를 비닐봉투에 담아 가지고 왔다. 나는 바로 옥상 텃밭에 심었다. 하지만 두 포기 모두 비실거렸다. 살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 못했다. 결국 한포기는 고사했고, 한포기만 겨우 살았다. 옥상에 올라갈 때마다 녀석의 상태를 살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기대와는 달리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채 가을날 겨우 꽃대 하나를 올리는 것 같더니만 고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났다. 서리쑥이라는 이름조차 잊은 채 여름을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잔디밭 구석에 서리쑥 한포기가 삐죽 올라와있었다. 무심히 바라보던 잔디밭에 서리쑥 한포기가 자신을 보라는 듯 허리를 세우고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겨우 살았던 한 포기가 다시 한 포기를 세상에 남긴 것이다. 나는 그날부터 매일 녀석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건물 관리소장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잔디를 깎을 때 이 녀석은 절대 지켜야 하니까, 특별이 이 녀석이 있는 곳을 깎을 때는 조심해서 결코 잘리는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당부를 했다. 그날부터 관리소장도 옥상에 오를 때면 신경을 썼다. 혹 나와 마주치는 경우 서리쑥 안부를 내게 전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녀석이 꽃대를 올렸다. 나는 다시 한 번 소장에게 부탁을 했다. 이 꽃대가 부러지는 일이 없어야 하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했다. 시간이 지나 꽃이 지고 씨방이 영글었다. 나는 영그는 대로 씨를 받아 비닐봉투에 담았다. 마지막 꽃이 지고 씨앗이 맺혔을 때 꽃대를 완전히 꺾어서 모두 보관했다. 그리고 한 겨울 잘 보관했다.
그리고 지난 해 봄 씨앗을 모두 뿌렸다. 일부는 바람에 날아갔을 것이다. 씨앗이라야 딱히 알맹이가 만져지지 않는 솜털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대는 컸다. 뿌린 만큼 많은 쑥이 자랄 것이라는. 하지만 겨우 너더댓 포기가 싹을 틔우고 자랐다. 특별한 관심과 관리를 하지 않은 채 두었다. 스스로 꽃을 피우고 지면서 씨앗을 떨구었다. 또 한 해가 지나 금년 봄 다시 몇 포기가 싹을 틔웠다. 올해는 씨앗을 받지 않고 그냥 두었다. 다만 주변에 다른 작물을 심지 않고 무성하게 자라는 풀만 제거했다. 그리고 여름이 지난 요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씨앗을 뿌렸던 곳을 중심으로 서리쑥이 은빛 잎을 펼치면서 텃밭 전체를 장악하고 모습으로 싹을 틔우며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엄밀히 말하면 두 해살이 잡초인 녀석이 이 가을에 싹을 틔운 것이다. 그것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개체들이 경쟁하듯 자라고 있다. 놀라운 현상 앞에서 창조주의 섭리와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겨우 한 포기가 살아남아 종족을 이어갈 수 있도록 생명을 낳았던 것인데, 텃밭 한 쪽을 모두 장했으니 금년 겨울을 나면서 잘 살아준다면 내년 봄날 옥상은 서리쑥밭이 될지도 모른다. 벌써 봄날이 기다려진다. 녀석의 신비한 생명력을 기대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한포기가 겨우 살아남아 잔디밭에서 꽃을 피웠을 때 씨앗을 모았던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텃밭에 뿌려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전부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처음 보는 식물이기에 호기심 때문에 반신반의하면서 뿌렸던 씨앗에서 겨우 몇 포기가 살아났을 뿐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이 스스로 자리를 잡더니 상상할 수 없는 번식력을 보여주었다. 사람에 의한 인공적인 번식보다 자생력이 훨씬 월등함을 보여주는 녀석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생명력의 신비를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에게 잡초라고 괄시를 받으면서도 살아남아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에게는 기쁨을 주는 서리쑥. 그 이름도 낯설다. 떡쑥이라고 하지만 그 이름도 많다. 이참에 녀석에 대해서 알아보니 서국초, 불이초, 솜쑥, 흰떡쑥, 본쑥, 모자초, 비지쑥, 북한에서는 괴쑥이라도 한단다. 모든 생명을 지으신 분이 허락한 특별한 존재, 서리쑥을 접하면서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기대를 생각하게 된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을 오롯이 드러내야 하는 본분이 있으니 말이다.
어진내교회 담임/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