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93년 동안 세상살이 마치고 천국으로 거처를 옮기신 어머님의 마지막 배웅을 마쳤다.
20년 전,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많이도 울었는데 이번엔 손수건을 꺼내지 않았다.
삶과 죽음에 관한 개념이 바뀌었기 때문인가? 두 분 삶의 굴곡이 달랐기 때문인가?
장례 첫날 미사 중에 초등학생인 손주가 독서를 읽었고, 큰 사위가 기타를 치고 가족들이 Gen 성가를 선창했다. 미사에 참석하신 수녀님들 중에 연로하신 한 수녀님께서 무슨 잔칫집 같다고 말씀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안장을 마치고 식장으로 돌아와 병원장 신부님께 인사를 드렸더니 신부님께서 가족들도 그렇고, 손님들도 그렇고 장례식장 분위가 축제 같아서 보기 좋았다고 하셨다.
하늘나라 입장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정(情)의 끈끈함도 감정을 흔들기 때문에 마음속 슬픔을 다스리기도 쉽지만은 않았다.
코로나 시기이고 참석하시는 분들께 폐를 끼치기 싫어서 서울에서 먼 곳이라는 명분을 드리고 싶었고, 장례식장 이용에 도움도 받을 수 있는 곳이라 청주성모병원으로 장소를 결정했는데 우리나라 중앙이어서 오히려 전국에서 찾아주셨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일장을 치르며 본심들이 읽혔다. 가치관이나 오랜 세월 숨겨놓은 생각들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가족에게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 믿어도 되는, 믿어야 하는 분은 하느님뿐이다. 진즉에 알았지만 살아내지 못해서, 또 다짐하게 되었다.
세상은 착하게만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지혜롭지 못하면 오히려 어려움을 줄 수도 있고,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고, 진정한 사랑을 살아낼 기회도 빼앗게 된다는 것도 공부했다.
인간은 모두 천국에 갈 수 있다. 예수께서 이미 정산을 끝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거부하면 천국이 아닌 곳으로 갈 것이다. 예수님 좌우에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좌도와 우도의 결정에서도 배울 수 있고,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계실 때도 예수님의 사랑을 거부했던 사람도 많았다. 천국은 나의 선택이고, 세상 삶 역시 내가 주체가 되어 결정하는 것이다.
이제 나의 순서가 다가오고 있다. 착하게만 살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고 깊게 배운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살아가는 훈련을 시작해야겠다. 사랑이 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 열심히 그리고 깊게 진리를 배워야 한다.
건강도 좋지 않으면서 굳이 찾아주신 분들, 어려움 중에 있으면서도 찾아주신 분들, 사랑하고 존경하는 귀하신 분들, 형제와 자매들의 기도, 참석, 성원……. 우리는 가족이다.
어쩌다 가끔 아들과 며느리를 교회에 빼앗기셨다고 생각하셨을 어머님께서는 이제 교회와 공동체 식구들 기도 때문이라도 천국에 드셨을 것이다.
지면을 빌어 깊게 고개 숙여 보내주신 기도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많이 많이 고맙습니다.
2002년 4월 16일 손 세공 엘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