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님들 중에는 정말로 뛰어난 국왕이 계셨는데,
그 분의 함자는 춘추이고 시호는 태종무열이라는 분이 있다.
이나라 그 모든 황제들이 사후 오직 2자의 시호추존을 받았지만,
이분은 그 공적이 너무도 뛰어나서 태종과 무열이라는 4자의 추존, 즉, 태종무열황제로 추존받으셨다.
나중에 짱깨들이 이나라에 침략하여 이씨조선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우고,
자기들[짱개들]의 황제인 당태종의 아들들이
위 태종무열황제와 그의 아들들 동해해룡 문무대황제 그리고 문무,신문황제등에게
다시는 천손의 나라를 넘보지 않겠다며 군신의 예로 무릅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4배의 예를 올린
그 치욕을 갚기 위해, 신라(고려) 그 모든 왕릉의 비문을 갈아서 저자거리에 뿌리고[분서갱유],
거기에 더하여, 그 황궁터인 월성에 얼음저장고인 석빙고를 설치하여
병사로 하여금 이를 감시하고 매년 여름 삼복에 진상케 하였다.
이것은 그 얼음이라는 차가운 기운을 이용하여
신라황통의 맥을 얼려서 끊어 버리겠다는 극악하고 지독, 사악한 주술적 발상에서 였다.
진상이라는 단어가 바로 여기서 나왔다.
또한 그 짱개들은
황제의 나라를 중국의 속국을 차처하여 스스로 황제에서 왕으로 강등되어 불렀고,
역사에 그 찬란한 공적을 쌓으신 나의 아버님들의 존칭에 모욕을 가하였다.
또, 태종무열황제, 문무황제 문무대황제 태조[왕건]황제등등등
위대한 대고려족의 황제에 대한 존칭을 왕으로 강등하는 수모를 안기었다.
우리는 이를 되찾아야 하고 이것이 민족과 나라의 정통성을 세우는 길이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결코 멈추지 않아서,
그 오랑캐 지나 짱개 한민족(한족, 조선족)의 왕조, 이씨조선과 그 연장에 있는 대한민국은
이제 그 국운이 다하여 말기적 증상을 보이며 서서히 몰락해 가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내가 위 위대하신 나의 아버님들의 위업을 이어 받아
짱개조선과 그 연장에 있는 대한민국을 폐하고 그 문에 빗장을 걸 것이며,
그들이 수탈한 이강산의 수목으로 조성한 경복궁 근정전의 4기둥을 뽑아서
새 나라 내 아버님들의 나라, 단군성조로 부터 이어 온 그 유구한 나라 대고려국
그 The Great Korea, 즉 대고려국의 문을 다시 열 것이며 이것이 역사의 순리다.
아래 글은 그래서 위대하신 내 아버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기사가 있어
마땅히 널리 보급하여 내 아버님들의 애국, 애민정신이 얼마나 지극하였는지를 알리고자 한다.
그래서 단군 성조로 부터 이어 온 그 정통성 있는 진정한 이나라의 황제들께선
결코 이나라 그 시민들을 착취하지 않았고, 다만 나라의 대표로 군림을 하여
환란때에는 그 군왕 스스로 살을 뜯어 백성의 굶주림을 달래셨고,
그 군왕 스스로의 피를 뽑아서 뭇백성들의 갈증을 달래셨다.
그리고 마침내 승하하시어서도 이나라 어린백성들을 돌보시기 위해
친히 동해의 용, 해룡이 되시어 왜구로 부터 이나라 금수강산과 백성의 생명을 지키셨다.
이것이 전란이나 변고가 발생하여 도망만 다니던 짱개 이씨조선 가짜왕, 가짜대통령들과 다른점이다.
이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수많은 왕부들이 그 백성들로 부터 착취를 일삼던 것과 다른 점이다.
나는 내 아버님들중 그 바보 같은 나의 부황제,
동해 해룡 문무황제의 소박한 이야기를 담은 기사가 있어 스크랩하여 여기에 소개한다.
................... 아래 그 이야기가 있다....................................
1959년 10월 30일 금요일. 경주 감은사지 발굴이 시작됐다.
광복 후 처음 실시하는 절터 발굴이었기에 김재원 국립박물관장을 비롯한 조사단원은 모두 긴장했다.
특히 훗날 '발굴왕'의 명성을 얻는 김정기 학예관도 이 발굴을 위해 특채된 신예였다.
※ 감은사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외함), 보물 366호, 높이 21.6㎝, 국립중앙박물관.
조사원들이 주목한 것은 금당 터였다.
신라 문무왕의 화신인 용이 들어와 머물 수 있도록 금당 섬돌 아래에 구멍을 뚫어놓았다는
삼국유사의 신이한 기록을 확인해 볼 참이었다.
발굴 5일째.
편평한 석재와 돌기둥을 조립해 만든 시설이 전모를 드러냈다.
건물 바닥에 공간을 두기 위해 마련한 특별한 구조였기에 조사단원 모두는 환호했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이 구조물을 방공호로 사용하는 바람에 일부 훼손된 점이 아쉬웠다.
이어 12월 12일까지 중문, 강당, 회랑 등 사찰의 평면 구조를 확인한 다음 발굴 조사를 종료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문교부는 같은 해 성탄절부터 보존 상태가 나빴던 감은사지 서쪽 석탑에 대한 해체 공사를 시작했고
감은사지 발굴을 진행한 국립박물관에 감독을 맡겼다.
탑 부재를 해체하던 중 12월 31일에 이르러 3층 탑신에서 창건 당시의 사리장엄구를 발견했다.
예기치 못한 일이었고 보존과학자가 없던 시절이라 고고학자들이 직접 유물을 수습했다.
훗날 1996년에 동쪽 석탑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에 비해 보존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불법(佛法)의 수호신 사천왕,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 조각과 함께
유려한 문양이 다양하게 표현돼 있어
7세기 후반 신라 공예 문화의 빼어난 수준을 유감없
이 보여주었다.
인생의 황금기를 전장에서 보내며 나라를 지켰고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도 "내가 죽으면 반드시 동해에 장사 지내라.
죽어서라도 호국의 용이 되어 왜구의 침입을 막을 것"이라 유언한
'신라 바보' 문무왕,
불법이란 큰 그릇에 부왕의 호국 의지와 자신의 효심을 담아낸 신문왕.
감은사지 발굴은 이 두 신라 왕을 전설의 숲에서 역사의 무대로 옮겨주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8/2017112803732.html
가자~!
위대한 대고려국의 재림을 위하여......
The Great Korea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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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려국 의성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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