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려실기술 제9권 / 중종조 고사본말(中宗朝故事本末) / 중종조의 명신(名臣)
어득강(魚得江)
어득강은, 자는 자유(子游)이며, 호는 관포(灌圃) 또는 혼돈산인(渾沌山人)이요, 본관은 함종(咸從)이다. 임자년에 진사가 되고 연산조 병진년에 문과에 뽑혀 벼슬이 대사간에 이르렀다. 우스개 소리를 잘하고 문장에 능하였다. 저술로는 《동주집(東洲集)》이 있다.
○ 어득강은 영남 진주에 살았는데, 문학과 아담한 운치가 있었다. 과거에 오른 후로 여러 번 외직을 청하고, 성품이 담백하여 물러가기를 좋아 하였다. 벼슬하는 데 뜻이 없어서 조정에서 좋은 벼슬로 불러도 모두 나가지 않았다. 조그만 집을 산수 사이에 지었는데 가족들과 함께 거처하지 않고, 아이 종 하나만을 데리고 대략 조석으로 밥을 지어 먹었으니, 담담하기가 중의 살림살이와 같았으며 남과 말할 적에 우스개 소리를 섞어썼다.어느날 사람들과 더불어 마주 앉아 있는데, 사람이 와서 전하기를,
“도사(都事) 정만중(鄭萬重)이 갈려서 문학(文學 벼슬이름. 정5품세자시강원문학)이 되어갔다.” 하니, 어득강이 문득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문학이 되었는데 어찌 정씨가 한다 하는가.” 하였다.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물으니 어득강이 말하기를, “《논어》에 ‘문학은 자유(子游)와 자하(子夏)이다.’ 하지 않았는가.” 하여, 듣는 자들이 허리를 잡고 웃었다. 《사재척언》
○ 성품이 진실하고 솔직하며 겉 모양을 꾸미지 않고, 담백하게 거처하는 것이 승방보다 심했다. 중종조에 대사간이 되었다가,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돌아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병정록》 《적암집(適菴集)》
주세붕(周世鵬)
주세붕은, 자는 경유(景游)이며, 호는 신재(愼齋)요,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을묘년에 태어나서 임오년에 생원이 되고 문과에 뽑혀 호당(湖堂)에 들어가고, 부제학을 거쳐 호조 참판에 이르렀다. 갑인년에 죽었는데 합천에 서원이 있다.
○ 공의 어머니가 위독하자 향을 피우고 하늘에 빌었다. 이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흰실 여덟 량[八兩]을 주면서 병이 나으리라 하였는데, 그 후 80일이 되어 죽었다. 이때 비로소 여덟 량이 80일을 늦추는 징조임을 알았다. 〈행장〉
○ 아버지의 상사를 당하여 묘 앞에 여막을 짓고 살았는데, 3일에 한 번씩 와서 어머니를 뵙고 자기 방에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기르는 개가 그가 출입할 때 늘 따라 다녔는데 고기를 주어도 먹지 않으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효성에 감동되어 그렇다” 하였다. 〈행장〉
○ 나이 7세 때 어머니가 오래 병 중에 있어 빗질을 못하자 공이 자신의 머리를 빗어서 어머니의 머리털에 대어 이[風]가 건너 오게 하니, 사람들이 기특히 여겼다. 〈행장〉
○ 풍기 군수(豊基郡守)가 되어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세웠다. 〈전고(典故)〉
○ 일찍이 홍문관에 있을 때 직제학이 바르지 못한 의논을 하자, 공이 면전에서 공박하기를, “공은 직제학(直提學)이 아니라 곡제학(曲提學)이로군.” 하니, 그 사람이 부끄러워하였다. 《병정록(丙丁錄)》